뗄렐렐렐레-

기가 막힌 감

by 조승현

그럴 때 있잖아요. 아주 늦은 새벽, 잠들지 못하고 혼자 출출한 배를 채울 때. 티비에는 언젠가 봤던 누아르 영화가 틀어져 있고, 혼자 들이키는 술잔이 외로울 무렵 울리는 벨소리. 뗄렐렐렐레. 그 순간 스치는 생각. ‘누구지? 이 시간에 연락할 사람이 없는데, 혹시..?’ 그리고 집어 든 전화기엔 여지없이 그 이름이 떠있을 때.

느낌이란 것은 신기해요. 무당도 아니면서 귀신같을 때가 있어요. 그런 감은 시험을 볼 때나, 상사의 중요한 물음에 갈피를 못 잡을 때는 나타나지 않아요. 삶에 꼭 필요한 순간에는 ‘감’이란 것이 쏙 숨어버리죠. 그다지 필요 없을만한 상황에만 꼭 들어맞아요. 치킨을 배달하는 아저씨가 10초 안에 문을 열 것 같다거나, 오늘 회사의 점심이 왠지 제육볶음일 것 같은 순간이요. 틀린 것 보다야 낫지만, 맞다고 기가 막힌 행운이 오는 건 아닐 때만 맞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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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의 전화를 받았어요. 간만에 나를 찾아준 친구의 목소리가 반가워요. 우리는 대충 세 달 만이지만, 어제 전화한 것처럼 대화를 나누죠. 사실 세 달 동안 내게 있었던 변화야 뻔하잖아요. 일은 늘 똑같고, 먹고사는 일은 늘 팍팍하죠.

친구는 명상 이야기를 했어요. 요즘 명상을 배우는데, 도중에 울음이 났다고 했어요. 깊이 존재하는 자신과 만난 것 같다며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났다고 했죠. 작게 고개를 돌리다 이내 허리를 돌리며 몸을 크게 움직였대요. 그러다가는 바닥에 널브러지듯 점점 큰 원을 그리며 명상을 했다고 했어요. 이게 뭔가 싶어 웃음이 나다가도 정신을 차리니 깊게 들어가고 있었대요. 그리곤 알 수 없는 울음이 터지며 쉴 새 없이 눈물이 났다는 거죠.

경험한 적 없는 세상을 누군가의 입으로 들을 때는 늘 신선해요. 그게 오랜 친구의 새로운 장면일 땐 흥미롭기도 해요. 그 친구의 모든 걸 속속들이 아는 것 같다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곤 꿈처럼 다시 귓속이 울려요. 뗄렐렐렐레.


딱딱한 하루에, 미래를 고민하며 한 잔 한 후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타요. 허전한 마음은 꽉 찬 달빛으로도 채워지지 않아요. 의미 없이 뉴스를 뒤적거리다, 내가 생각이 났대요. 그리곤 전화를 걸었을 거예요. "별 일 없지?"

나는 그 전화를 좋아해요. 아쉬움이 가득한 순간 나를 떠올렸잖아요. 조금 취기가 오른 목소리를 하고, 꽤 늦은 밤 전화여도 좋아요. 팍팍한 삶의 순간에 내가 힘이 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전화를 끊고 멍하니 잠깐 앉아요. 나도 명상을 해볼까? 에이, 됐다. 그러다 쟤처럼 울면 뭔 창피야. 그래도 한 번? 의미 없는 고민을 두어 번 하고는 가만히 누워 이불을 덮어요. 오늘은 쉽게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랜 친구의 목소리를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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