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자마자 냉동실 문을 열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냉동실 안에는 녹차 아이스크림이 동상처럼 서있었다. 위대하고 늠름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 순 없었다. 젊어서 사진 하나는 남겨야 하지 않겠냐며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숨을 한 번 쉬고 아이스크림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다른 아이스크림이, 그 뒤엔 또 다른 아이스크림이 줄지어 있는 환상이 스쳤다. 그러나 눈 앞의 현실은 창백한 닭가슴살이었다.
닭가슴살을 하나 꺼내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윙, 닭 비린내를 풍기며 언 닭이 부활했다. 살짝 찢어 놓은 봉지 사이로 뜨거운 김이 샜다. 가로로 주욱, 봉지를 찢고 내용물을 입에 넣었다. 닭가슴살이 입안에 퍼석퍼석하게 뭉개졌다. 맹맹하고 우울한 맛이었다. 몸을 만들겠다며 먹는 단백질이 도리어 입은 부수고 있었다.
이렇게 평생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따위 음식이 하루에 딱 세 번쯤 있는 허기를 따뜻하게 채워줄 리 없었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혀와 잇몸이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설탕을 내놓으라며 파업이라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망원동 글쓰기 모임에서 A가 자신의 글을 읽었다. 스스로에게 쓰는 유서였다.
그래도 삶이 아쉽진 않아.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젤라또 맛집을 가봤으니까...
"삶이 아쉽지 않은 이유가 젤라또 집에 가서라고요?"
"네. 제가 뭘 좋아하나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유서라는 게 그렇게 만들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제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쁠 때나, 짜증이 날 때나 변함없이 좋아하는 건 하나더라고요. 젤라또요. 그래서 지금 죽어도 아쉽지 않은 점이 있다면, 아낌없이 먹은 젤라또예요. "
누군가의 유서를 들으며 젤라또 집을 상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실연을 당한 채로 젤라또를 먹는 A, 시험에 망친채로 젤라또를 주문하는 A, 술에 취해 젤라또를 끌어안는 A. 삶의 마지막에 떠오른 젤라또는 달콤하다.
인생의 낙이란 때로는 가벼운 단맛으로 채워지는 걸지도 모른다. 약간은 허무할 정도로 얇은 혀끝의 감각. 그러니까 결국, 나도 아이스크림을 먹었어야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