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잃어버리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칠칠맞은 사람들을 위한 변명

by 조승현

나는 정말이지 칠칠맞다. 무엇이든 잘 잃어버린다. 지갑을 챙기면 차키가 없고, 차키를 챙기면 핸드폰이 없다. 술에 취하거나 한참 바쁠 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나른한 주말 친구와 따뜻한 커피를 한 잔 하며 여유를 뿜을 때도 잃어버린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이미 서른을 넘겼다. 중후한 검은색 승용차를 타며,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가식적인 웃음을 너털 너털 흘리는데 모든 사회성을 쏟는 청년이 되었다. 단점을 자랑하며 혼기에 가까워진 나를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흠을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리석은 것 같다.
조금은 어리석은 사람이니까(?) 잠깐 털어놓아 보자면, 선물 꾸러미처럼 분실도 꾸러미로 한 적이 있다. 한 번에 다 잃어버리진 않았다. 산타 할아버지의 꾸러미에서 물건이 하나하나 나오듯 차곡차곡 잃어버렸다.
스물세 살 때였다. 여름방학을 맞아 혼자 긴 자전거 여행을 했다. 자전거용 가방 두 개를 뒷바퀴 양쪽에 짊어 메고 유럽으로 떠났다. 첫 해외여행이었기에 신경이 곤두섰다. 곤두섰다는 표현과는 반대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체크카드를 잃어버렸다.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기 부담스러워 중간중간 인출해 쓰려고 했는데, 도착하고 삼일 만에 카드를 잃어버렸다. 주머니를 뒤졌다. 이틀 정도 버틸 돈이 처량하게 굴러 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다른 사람의 카드를 빌려 간신히 돈을 뽑았다. 두 달 동안 사용할 경비를 몽땅 인출했다. 거액을 복대에 둘러맨 스물세 살의 대학생은 광활한 유럽에서 쫄보가 되었다. 어깨를 토닥여도 배를 감싸 쥐는 괴상한 모습이 되었다.
한 달 뒤에는 카메라를 잃어버렸다. 열정을 사진으로 남기겠다며 중고나라에서 10만 원을 주고 산 똑딱이 카메라였다. 그 안에는 한 달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메모리칩도 들어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보니 남은 사진이라곤 달랑 8장이었다. 자전거복과 외투, 자전거 수리 키트는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있었다. 훗날 여권과 일주일 된 아이패드를 통째로 잃어버린 기억은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잃어버리는 것이 내 탓은 아니다. 핏속 어딘가에 흐르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사냥을 하던 원시 인류는 창과 칼을 발명하고는 쾌재를 불렀다. 둔탁하고 무거운 나무 몽둥이를 들고뛸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까. 쓱 하고 베면 일주일은 거뜬히 먹을 먹잇감이 픽 하고 쓰러졌으니까. 게다가 손도끼를 쓸 때보다 훨씬 멀리서 공격할 수 있다. 더 안전하고 더 강력한 무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창과 칼 두 개를 동시에 들기는 힘들다. 무겁다. 제어하기도 힘들다. 양 손에 하나씩 든다고 공격력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덩치가 큰 코끼리라면 창을, 가까이서 싸워야 하는 늑대라면 칼을 들고 싸우는 게 효과적이다. 그러니 두 개를 동시에 들고 움직이다가도 사냥감을 발견하면 재빨리 판단해 하나를 버리고 지체 없이 달려들어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버려야 사냥을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인류는 그러게 생명을 이어갔다.
그러니 음식점에서 나설 때 지갑을 챙기고 차키를 두고 나오거나, 급히 가야 한다며 차키를 챙기고 핸드폰을 두고 나온 것은 순전히 인류의 생존 본능 때문이다. 어느 면에서 나는 피해자가 분명하다.
물론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칼과 창을 다 잃어버리고 터덜 터덜 풀뿌리를 캤을 거다. 오늘은 무얼 먹여야 하나, 고민하며 피라미라도 잡고자 차가운 강물을 헤쳤을 것이다. 그러니 현재에 사는 나는 이것저것 잃어버리며 불편하고 아까워도 할 말이 없다. 적어도 배는 곯지 않으니까. 원시인 마누라의 앙칼진 눈초리를 풀뿌리로 막지 않아도 되니까.

이 정도 정성스러운 핑계라면 좀 잃어버려도 적당히 봐주지 않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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