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면 맥주를 한 캔 먹을 수 있으니까.

by 조승현

오늘은 또 어떤 맘으로 괜히 변덕을 부릴지 모른다. 태양은 뜨겁고 밤은 창창하니까. 고요한 하루에도 마음은 요동치니까. 고마운 친구에게 짜증이 날 때도 있고, 지독히 미웠던 상사에게 정이 가기도 한다. 어떤 순간, 전혀 다른 감각 위에서 그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동감으로 혹은 동정으로.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었다. ‘정말 뛰기 싫다’고 되뇌면서도 러닝화를 신었다. 도망가려는 마음을 신발끈으로 꽉 묶었다. 아릴 만큼 발등이 옥죄였다.
숨을 헥헥대며 달린 강변은 상쾌하지 않았다. 어느새 여름밤이었다. 공기가 끈적했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정수리부터 땀이 쏟아졌다. 찝찝했다.

1킬로쯤 가서는 욕이 나왔다. 아침의 나는 왜 밤에 뛰려고 했을까. 그냥 돼지 막창을 입에 넣고 맥주를 털어 넣으면 행복했잖아. 그런다고 재벌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마라토너가 될 몸뚱이도 아닌데, 왜 나는 뛰려고 했을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다. ‘너 자신을 알라’ 고 말했던 소크라테스의 말과 달리 나는 나를 잘 안다. 언제 가장 약한지, 어느 날 부쩍 게으른지, 어느 순간에 가장 비겁한지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진실로 자신 있는 것은 뭔지, 잘하는 척하는 것은 무엇인지도 빠삭하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유약함’을 안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나를 가장 잘 안다.


“조대장님은 언제 불행하세요?”
“제가 비겁하다고 느낄 때요.”
‘언제 비겁한데요?”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을 때 그래요. 그럴수록 더 가엾더라고요.”

더 나은 사람. 더 나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겪어 보지 않아서 알 수 없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우지 않고 남겨 놓으면 좋은 사람일까. 더 많이 지면 훌륭한 사람일까.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하면 나은 사람이 될까? 그렇게 말하면서 막창을 상온에 녹였다. 다시 러닝화를 꺾어 신었다.

강변을 뛰었다. 뛰기로 했으니까. 부지런히 계획을 세운 아침의 나에게 지쳐버린 밤의 내가 지기는 싫으니까. 다 뛰고 나면 냉동실에 넣어 놓은 맥주를 한 캔 먹을 수 있으니까.


강변을 뛰지 않으면 더 말짱한 정신으로 돼지 곱창을 즐길 수 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맥주를 제약 없이 먹어도 된다. 책을 읽지 않으면 유튜브를 보며 하루의 고단함을 맑은 웃음소리로 덮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민이다. 어떤 게 진짜 괜찮은 나일까. 부지런했던 ‘아침의 나’일까, 고단한 하루를 살아낸 ‘밤의 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