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전은 어려워

환전 꿀팁 공개[정신 승리 편]

by 조승현

해외여행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역시 환전이다. 여행지는 초행길인 경우가 많다. 가본 적이 없으니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팁 문화는 어떤지, 여행 경비는 얼마나 필요한지 알기 어렵다.
게다가 여행하는 스타일에 따라 소비되는 지출도 천차만별이다. 여행 가이드북에는 ‘이 정도 금액이면 충분합니다’라고 쓰여있지만 막상 가보면 ‘뭐야? 박물관은 고사하고 생존이 불가능한 금액이잖아?’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별로 믿을게 못된다.
여행 경비를 가늠하더라도 또 다른 고민이 남아있다. ‘언제 환전해야 가장 이득인가’. 환전할 때는 많은 것이 고민된다. 은행에서 하는 것이 나을지, 인천 공항에서 수령하는 것이 나을지, 내일 환전하는 것이 좋을지 가기 직전에 하는 것이 좋을지.


한 번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친구가 모은 돈을 환전하기로 했다. 친구는 일주일 내내 환율 그래프를 드라마 보듯 열심히 쳐다봤다. 시청을 마친 친구가 일주일 뒤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환율 보고 있을 시간에 알바를 했으면 여행비를 벌었을 거야.”


인터넷 세상에는 환전 꿀팁이 치킨집처럼 널려있다. 하지만 사실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 글 몇 줄로 정리하기에 환전 문제는 너무 복잡하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에 지지 않을 정도로 까다롭다. 다만 개인적으로 생각한 최고의 방법은 이거다. 눈을 질끈 감고 ‘에잇 몰라, 오늘 해버리자!’ 하고 곧장 환전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환율을 보지 않아야 한다.
환전은 마치 주식 같아서 내가 환전하면 기필코 다음날 손해를 보게 되어있다. 오늘 환전하면 내일은 더 좋은 환율이 기다리고 있고, 좀 미리 환전했다 싶으면 여행 전 ‘원화 가치 급등’이라는 뉴스를 보게 된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것은 환전과 동시에 눈과 귀를 막는 것이다. “나 잘했어” 하고 말하며 정신 승리하는 게 건강에 좋다. 적어도 배가 아플 일은 없다.


여행을 하며 환율을 따져보는 것 역시 그리 좋은 습관이 아닌 것 같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를 여행하며 나는 매번 충격을 먹었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물가였다. “뭐야, 소시지 한 덩이와 계란 몇 개 구운 게 2만 5천 원이라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속으로 한국 돈으론 얼마인지 계산했다. 고개를 저었다. 값비싼 비행기에 올라 12시간이나 구겨져 있었다. 구겨진 박스 꼴이 된 대가가 터무니없는 물가라니. 그 금액이라면 한국에서 레일 위에서 춤추는 초밥을 만날 수 있었다. 호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매일 요리를 했다. 장을 봐서 직접 요리를 해 먹었다. 프라이팬이 분주할수록 지갑은 덜 얇아질 테니까. 나는 좋은 식재료를 싼 값에 사는 합리적인 소비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보름 동안 열심히 프라이팬을 튕겼다. 그 결과 나는 많은 돈을 아꼈다. 메뉴판을 보며 망설이는 시간도 적었다. 지갑은 꽤나 오랫동안 생존했다. 하지만 여행 동안 내가 먹은 음식이라곤 스크램블과 베이컨, 닭가슴살 몇 덩이가 다였다. 스위스 토속 음식은 고사하고 치즈 퐁듀도 맛보지 못했다.
세상에는 날씨가 여행의 반이라는 사람도 있고, 먹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에 비추워 보자면 나는 아주 멍청한 여행을 했다. 유제품과 질 좋은 고기가 끝내주는 나라에서 계란만 박살 냈다. 그러니 한국돈으로 얼마인지 계산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 1000프랑이 있으니 20프랑 음식 정도는 먹을 수 있지, 하고 무심하게 결정하는 게 여행의 질을 높이는 것 같다.
사실 여행을 하고 10만 원쯤 남아봤지 우리 삶에 도움되지 않는다. 환율이 좋을 때 환전했다며 만원쯤 이득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그 돈으로 대출금은 갚을 수 없다. 다음 여행의 종잣돈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 여행자로 살 때는 조금 더 대범해도 좋다. 그러면 적어도 스위스 퐁듀를 먹어 보겠다며 비행기표를 다시 구매하는데 100만 원을 쓸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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