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이 죽어서 행복합니까?

by 조승현

런던의 택시비는 너무 비싸다. 아무리 개구리처럼 귀엽게 생긴 택시라 해도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차로 십분 거리에 꽃등심 값을 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영국을 여행할 때는 택시 대신 우버를 불렀다. 우버는 중동 출신의 기사가 많은 민간 택시다.
단언컨대 전 세계의 택시 기사는 비밀리에 한 곳에서 훈련받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런던과 서울의 택시 기사가 이렇게 똑같을 수는 없다. "허허 서울에서 오셨다고요~? 저는 파키스탄에서 왔답니다. <지구 택시 기본 과정> 들으러 오셨죠? 저도요. " 하면서 말이다. 런던 시내에서 잡아탄 우버는 언어만 영어였지 군자역 8번 출구 앞에서 잡아탄 택시와 다를 바 없었다. 기사는 눈치를 몇 번 살피더니 친절한 미소 어려운 얘기를 동시에 날렸다.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에서요”
“북한? 남한?”
“다행히! 남한에서 왔어요”
“와우, 김정은 손아귀에 있지는 않네요!”
“당연하죠”
“아버지 김정일이 죽었을 때, 무척 행복하셨겠어요?”
“음.. 그게...”

기사는 김정일이 죽어서 좋냐고 물었다. 덧붙여 그의 아들은 좀 났냐고 물었다. 이게 런던의 고풍스러운 대영 박물관을 지나며 할 얘기라니. 화장실이 어디냐는 말도 섹시하게 들리는 런던 거리를 폭스바겐으로 지나며 나누는 얘기가 김정일의 죽음이라니, 억울하다. 별로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엔 매일같이 ‘김정일 죽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매일 아침 따끈하게 완성된 밥에 성호를 긋는 어머니도 김정은의 죽음 대신 가족의 건강 정도를 빌었다. 전직 직업군인이자 시골 대표 보수를 자처하는 아버지 역시 그의 죽음보다는 우리 군의 강병을 빌었다. 내가 알기로 김정일이 죽기를 손 모아 기도했던 사람은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태극기를 무기 삼아 휘날리는 지금의 노인들이 전부다. 다행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간절히 원하며 살지 않아도 되어서.



“북한과 남한의 사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나요?”

“그럼요. 대통령끼리도 몇 번 만났잖아요”
“그러네요. 김정은이 한국 대통령의 손을 맞잡고 사진을 찍었을 때는 영국에 사는 저도 기분이 좋더라니까요”
“그렇죠. 참 영화 같은 장면이었죠?”


내 나라의 안녕을 외국인이 묻자 나는 낯설었다. 우리나라와 상관없이 나는 런던을 여행하며 꾸준히 안녕했다. 커피가 맛없었지만 맥주를 마시며 안녕했다. 영어를 잘 못했지만 바디랭귀지로 안녕했고, 테니스는 못 쳤지만 러닝을 하며 안녕했다. 그는 다된 나의 안녕에 김정은을 뿌리고 있었다.

런던으로 넘어와 30년째 살고 있는 파키스탄 출신의 우버 드라이버가 말했다. 김정은이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대한민국에서 온 서른한 살의 군필자는 생각했다. ‘김정은이라니, 정말 오래간만에 떠올리는 이름이잖아’.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의 악수가 EU를 막 탈퇴한 섬나라의 사는 파키스탄 기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평화일까, 인류애일까. 사랑일까. 알 수 없다.

김정일이 저 세상으로 떠난 날, 그는 칠면조를 구우며 행복을 익혔을지도 모른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과 악수를 한 날엔 샴페인을 터드렸을 수도 있고. 아무 연고도 없는 지구 반대편의 두 청, 장년은 다른 시간을 살며 한 사건을 바라본다. 우버 기사가 나보다 한 모금 더 한국을 걱정하는 것 같다. 조금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