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 중독자다. 깃털을 쫒는 고양이처럼 눈치를 살피다 일 년에도 대여섯 번씩 달려 나간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거만하게 누워 칵테일을 물처럼 들이켜는 휴양도 좋고, 노오란 불빛을 장엄하게 쏟아내는 콜로세움 앞을 거니는 여행도 좋아한다. 제주 앞바다에 넋 놓고 앉아 딱새우를 무한 리필로 먹는 것도 환상적이고 말고.
여행은 틈이다. 허리끈처럼 졸라매진 일상에 틈을 준다. 일에서 한 발짝 떨어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죽도록 사랑하는 연애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마당에 일이야 말해 무엇하랴. 아주 광활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가끔은 일의 연장선 위에 있는 여행도 있다. 천문대에 일하면서, 별을 보기 위해 떠날 때 그렇다. 반쯤은 필요로, 반쯤은 낭만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 더 많은 것을 보아야 더 많은 이 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천문대 강사로 살아가는 업보니까. 덕분에(?) 일 년에 한두 번은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떠난다.
문제는 이거다. 100%의 관측지를 만나는 건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다. 몽골처럼 도시와 동떨어진 초원과 어둠을 만났다 싶으면 시설이 열악했다. 드넓은 초원을 드넓은 화장실로 써야 했고 씻는 것도 불편했다. 이틀이 지나자 수염은 거뭇해졌다. 번들한 기름은 이마에 정착했다. 몽골인이 몽골어로 대화를 걸었을 정도의 몰골이었으니 짐작이 가시나요?
오로라를 보러 떠난 캐나다의 북부지방은 영하 40도를 웃돌았고, 낮은 북극성을 보겠다며 떠난 적도 근처에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사막 위에서 별을 보기 위해 예약한 일본의 돗토리현에는 승용차를 던질 만큼 험악한 태풍이 덮쳤다.
별을 보겠다며 많은 곳을 찾았지만 도무지 100퍼센트의 관측지를 찾을 수 없었다. 따뜻하고 안락하며 교통이 편하고 안전한 관측지는 왜 없을까. 왜 그런 곳에서는 별이 잘 보이지 않을까. 안타까웠다.
‘어쩌면 100%의 관측지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카카오 초콜릿도 56%은 달고 99%은 쓰지 않은가. 72%쯤에서 적당히 만족하는 게 자연이 내린 초코 열매와 달콤함에 목마른 인류의 적절한 타협일 게다. 그러니 자연을 바라보고자 하는 나의 열망도 72% 정도의 관측지로 만족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날 밤도 별다른 기대는 없었다. 미 서부의 그랜드 캐년에 도착한 날이었다. 국립공원 안에 위치한 작은 숙소에 도착했다. 깔끔한 화장실에 푹신한 침대가 있는 숙소였다. 짐을 내려놓자 마자 밖으로 나왔다. 하루 종일 아담한 차에 찌그러져 있던 어깨를 좀 풀어야 했다.
어깨를 돌리며 걸었다. 그곳에 28년쯤 거주하는 주민 행색이었다. 그러다 문득 별이 보일까 싶어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뿌옜다. 하필 구름이라니, 지지리 운도 없지. 아무 잘못 없는 스스로에게 작은 한탄과 실망이 배달됐다. 그때 함께 나온 동료가 말했다.
“저건... 구름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뭐지?”
“그러게요, 숙소 바로 앞이라 너무 밝아서 잘 안 보이네요”
“조금 더 어두운 쪽으로 걸어가 볼까?”
‘택시 회사에서 멤버십을 운영했다면 넌 VVIP일 거야’ 소릴 들을 정도로 나는 택시 애용가였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별을 보러 나가는 길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100미터쯤 더 갔다가 돌아올 생각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귀찮음을 담았다. 3분쯤 걸었을까. 나는 마라톤을 마친 기색으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까의 희뿌연 구름은 더 진해져 있었다. 저것은 구름이 아니었다. 구름이 저렇게 길고 흩뿌려놓은 진주알처럼 생겼을 리 없다. 내가 아는 한 검고 푸른빛을 동시에 내는 구름은 없었다. 은하수가 확실했다. 우리는 귀신에 홀린 듯 멈추지 않고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더 진하고 황홀한 은하수가 튀어나왔다. 우리는 우주로 걷고 있었다.
영어가 통하고 시설이 깔끔하며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구름은 없었다. 불빛도 없었다. 교통은 편했고, 별은 쏟아졌다. 마음만 먹으면 30초면 숙소에 뛰어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밤하늘이 말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도 돌아갈 마음이 든다고?”. 밤하늘에게 멱살을 잡힌 우리는 밤새 별빛을 충전했다. 채워도 채워도 모자랐던 별빛 보관함이 은하수로 가득 찼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 말한다. 100%의 관측지는 세상 어디엔가 분명히 존재한다. 만약 당신이 춥고, 더럽고, 불편함으로 가득한 관측지에서 실망하더라도 100%의 관측지 어디선가 당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별을 보는 당신이 멋지다. 그런 당신에게도 언젠가 100%의 관측지가 선물처럼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