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러 갈꺼야?

by 조승현

“별 보러 갈 거야?”.


친구가 물었다. 제주도로 떠나기 직전이었다. 천체 사진 촬영이 취미였던 친구는 날씨가 괜찮으려나, 하고 혼자 걱정했다. 그리곤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비 맞는 눈사람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굳이?, 거기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구는 천문대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쉬러 가는 곳에서까지 별을 보고 싶어 할까. 그건 일종에 병이 아닐까.


내가 말했다.
“별 보고 싶어?”

친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니, 안 볼 거면 카메라 두고 가게. 무거워 죽겠어”
역시 우리는 친구다.

여행을 떠나면 밤하늘을 바라본다. ‘봐야지’ 하고 보는 것은 아니다. 메뉴를 짜는 영양사가 외부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음, 이 메뉴 괜찮네’ 하고 떠올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의지보단 습관에 가깝다. 서글프게 들어선 직업병이랄까.
그래도 그 별보기와 저 별보기는 다르다. 천문대의 강사로서 올려다보는 별과 여행객으로서 관람하는 별은 완전히 다르다. 직업으로 별을 보며 지친 나를 온전히 나로서 바라보는 별이 위로하니까. 어떤 책임감이나 목적의식도 없이 고개만 들면 되니까. 별을 그저 보기만 해도 되니까.

별은 밥을 먹여주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배가 부를 일이 없다. 천문대 강사로 일하며, 그것만 있어도 행복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나는 별을 바라보며 느끼는 배부름보다 곱창을 입에 넣을 때 느끼는 행복이 더 크다. 망원경을 선물로 받을 때 보다 아이패드를 선물로 받을 때가 더 설렌다. 그러니 내 모든 행복의 원천이 별이나 우주라고 말한다면 그 역시 거짓말이다.
그러나 행복에도 씨앗이 필요하다. 그것이 뿌려져야 비로소 토양에서 건강한 새싹이 자란다. 새싹은 여리고 작은데 기품 있다. 가능성이 느껴진다. 미래를 아우르는 어떤 정서가 있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씨앗을 심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씨앗이 많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별을 좋아하는 조금 늙은 청년은, 일을 할 때도 조금은 행복하고, 퇴근 후 홀로 앉아 천문학 다큐를 보며 막걸리를 마셔도 좋다. 강변을 뛸 때도 즐겁다. 그 와중에 기울게 뜬 달도 낭만적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인간이다. 별을 ‘보는 것’과, ‘행복하게 사는 것’은 내게 뗄 수 없는 관계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언제나 다행이라고 느낀다. 직업이 지겹지 않아서 다행이다. 별이 괴롭지 않아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