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근육에서 중력을 뿜어낸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와 브랜드는 우연히 블랙홀 근처를 지나간다. 처한 상황에 비해 '우연히'라는 단어는 다소 밋밋해 보인다. 그들은 명백히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다. 생존에 있어서는 절대 '악'처럼 치부되는 블랙홀을 지나며 그들은 말한다.
"순식간에 지구 시간으로 51년이 지났어요."
"120살 노인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네요!"
이게 무슨 소리람. 그들은 블랙홀 근처를 떠돈 것은 고작 몇 분이었다. 하지만 대사처럼 지구에서는 수십 년이 지나버렸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할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블랙홀은 중력이 극도로 강하다. 블랙홀 근처에서 10초가 흐르는 동안 지구에서는 수천 년이 흐를 수 있다는 말이다. 블랙홀 근처에서 10초면 우사인 볼트는 100m를 질주하고도 남지만, 지구에서는 우사인 볼트든 장수 거북이든 모두 고인이 되었을 만큼 시간이 지난다. 강한 중력은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만든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블랙홀 같은 인간이 한 명 있다. 헬스장 PT선생님이다. 그의 옆에서는 시간이 영 다르게 흐른다. 그의 크고 우람한 근육이 강한 중력을 뿜어내는 게 틀림없다. 특히 내게 하체 운동을 시키는 날이면 더 그렇다. 그는 스쿼트 횟수를 세며 10초를 100초로 만든다. 우사인 볼트가 100m 달리는데 쓰인 시간이 마라톤처럼 길어진다. 기분 탓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3세트만 하시죠, 라는 말도 영 믿을게 못된다. 기진맥진 정신을 놓은 사이 3세트는 5세트가 된다. 마법의 다섯 세트를 마치고 나면 제야의 종소리처럼 선생님의 말소리는 귓등을 때린다. "한 세트 더!"
운동을 하다 보면 종종 의문이 든다. 세상에 스쿼트를 하다가 죽은 사람은 정말 없는 것일까? 거대하고 사악한 피트니스 협회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노래지고, 3보 1배로 걷게 하는 스쿼트의 저주에 희생당한 인류가 어째서 없는 것일까.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PT 선생님은 늘 문 앞에 서있다. 그리곤 패잔병처럼 걸어 나가는 내게 밝은 미소로 인사한다. 그러면 '재등록하지 말아야지'했던 얼음장 같은 마음에 또 햇살이 든다. 망했다.
다음 주에도 나는 블랙홀 선생님 옆을 공전할 것이다. 그의 근처에서 시간은 더디 흐를 것이고. 허벅지는, 역시나 부서질 것이다. 시간만 좀 원래대로 가도 참을 만할 텐데. 상대성 이론이 미워지는 밤이다.
아 참, <인터스텔라>의 결론은 꽤 로맨틱하다.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은 쿠퍼는 사랑하는 브랜드를 구하기 위해 다시 우주에 뛰어든다. 그들 사이엔 여전히 블랙홀이 존재한다. 그래도 다시 우주복을 고쳐 입는다. 블랙홀을 넘어선 그들의 사랑은 아마 이루어질 것이다.
블랙홀 선생님을 넘어서면 나의 허벅지도 탄탄해질까? 물론,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