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은 제 직업을 숨길래요
똑똑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똑똑하고 싶어!’라며 몸부림치는 사람처럼 보이긴 싫었다. 자연스레 지식을 습득한 멋진 지식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못했다. 우주에 관한 것이라면 더욱 그랬다. 천문학을 전공하고 별에 대한 것을 모르면 지식인은커녕 본전도 못 찾은 거잖아요. 심지어 천문학과에서는 별자리 같은 건 개미 더듬이만큼이나 조금 배운다고요. 어쨌든 아는 척했던 건 사실입니다. 사죄합니다.
고백하자면, 우주 영화를 백프로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 인터스텔라를 볼 때는 졸았다. 장엄해서 잠들었고, 어려워서 코를 골았다. 영화 속 상대성 이론은 <인터스텔라>를 해설한 책을 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렴풋이.
천문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인터스텔라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을 때 나는 귀를 후비며 답했다. “이게 좀 어려워서, 설명하자면 좀 길고 복잡한데...”
이 말은 ‘어려워서 나도 몰라. 하지만 네가 원한다면 좀 길고 복잡하게 설명해서 아는 것처럼 보일 순 있어’라는 뜻이다. 잘 아는 사람은 어려운 개념도 간단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와중에도 열정 넘치는 천문학도인 척은 더럽게 했다. 친구들에게 버릇처럼 말했다. “어머, 나는 천문학 영화만 나오면 영화관에 달려가 혼자서 우주를 만끽해”. 하나 나는 아직도 영화 <그래비티> 못 봤다.
“별을 보다 보면 지구의 작은 고민들은 아주 싱겁지” 하고 말하면서 속으론 ‘빌려간 만원은 도대체 언제 주는 거야?’하고 되뇌었다. 작은 고민들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가요?
영화 <굿윌 헌팅>의 주인공 윌 헌팅은 천재다. MIT 수학자들도 못 푸는 문제를 청소 중에 재미로 풀어버렸다. 그러나 어린 시절 부친의 학대로 망가져버렸고, 비상한 머리 대신 거칠게 몸을 쓰며 빈민가의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었다.
법원의 명령으로 심리치료를 받게 된 윌 헌팅에게 심리 상담사인 로빈 윌리엄스는 말했다. ‘It's not your fault’. 덥수룩한 수염에 색이 바랜 초록 스웨터를 걸치고 아홉 번 더 말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전율을 느꼈다. 그래, 이거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윌 헌팅이 아니라 윌리엄스지. 천재가 아니라 멋진 사람.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 작은 문제들을 초월하고 많은 걱정들이 사소해진 사람.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진 못하지만, 사람을 이해할 순 있는 사람. 나는 지식인 보단 어른이 되고 싶은 것 같다.
어른은 적당한 높이에 늘어진 버드나무 줄기 같다. 점프를 뛰면 쉽게 닿을 것 같은데 도통 닿지 않는다. 어른이 곧 될 것 같은데 되지 않는다. 여전히 사소한 고민에 무너진다. 작은 불안에도 스러진다. 누군가의 불행을 외면하고 나의 안녕에만 집중한다.
어머니는 내가 여덟 달 만에 나와 산 게 기적이라고 했다. 누이는 내가 일찍 별을 좋아하게 된 게 기적이라고 했다. 두 개의 기적 덕분에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 걸까. 어른의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구요.
SF영화를 모두 이해한다고 어른이 되지 않는다. 별자리에 해박하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똑똑해 보인다고 어른은 아니다. 서른이 넘어서도 어떡해야 어른이 되는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많이 안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기적인 사람은 멋진 어른이 아니다. 그렇게 되지는 말자며 오늘도 마음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