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장은 분주했다. 관광은 못해도 아메리칸 공기를 마시는 게 어디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 공기를 마시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열흘 내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일만 했다.
꿍이가 보고 싶었다. 꿍이는 그녀와 함께 입양한 얄미운 회색 고양이다. 흐르는 물을 내놓으라고 포효하고, 고양이 주제에 집주인 행세를 하는 오만한 고양이. 열흘이나 떨어져 지냈다고 귀찮기만 했던 꿍이의 장난질이 그리웠다.
나는 아주 형편없는 집사였지만, 다행히 함께 사는 룸메이트가 있었다. 대체로 나는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고, 그는 화장실을 비우거나 밥을 챙기는 생명 보존의 역할을 했다. 집사의 능력으로만 보자면 나는 그의 발바닥에도 비빌 수 없었다.
“꿍이 좀 괜찮아?”
“네, 소변을 못 봐서 병원을 좀 다녀왔는데 나아질 것 같아요”
“다행이네, 걔는 왜 나 나와 있을 때 아프고 그러냐”
“그러게요”
의사는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꿍이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라하며 쉬를 싸지 못한 이유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들어서라고 했다. 흐르는 물을 주지 않았거나, 화장실이 마음에 안 들었거나, 사료가 맛이 없었거나. 이런 복에 겨운 고양이를 봤나. 나는 미국에 와있으니 그 까탈스러운 요구들은 모두 룸메이트의 몫이었다. 모두가 행복한 추석, 그는 고향 집에도 내려가지 못하고 신발 두 짝만 한 고양이의 병수발을 들었다.
그리고 일요일. 그는 차가운 어조로 한 글자를 남겼다. 형. 나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그는 펑펑 울며 전화를 받았다.
"형, 죄송해요"
그는 한마디 이후 얼마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금방 깨달았다. “꿍이 죽었어?”. 내가 떠나 있는 사이 꿍이의 최후를 본 룸메이트는 홍수가 난 듯 울며 그렇다고 말했다. 꿍이가 세상을 떠난 게 제 탓이라도 되는 양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꿍이의 마지막을 혼자 보게 한 것이 미안한데, 그는 내가 없는 사이 꿍이를 떠나보내 미안해했다. 얼마나 멍청하면 가장 훌륭하게 고양이를 떠받들었으면서도 미안해할까.
꿍이가 우걱우걱 밥을 먹고 있으면 우리는 습관처럼 말했다. "어이구, 이 덩치가 산만한 고양이님아. 길거리에 살았으면 배를 곪며 쓰레기를 뒤지셨어야 합니다". 제 목을 긁으라며 목덜미를 들이댈 때도 말했다. "길바닥에 살았으면 개한테 안 물리려고 사방을 뛰어다녔을 텐데 목덜미를 내어놓다니".
그런 꿍이가 죽었다. 세 살 먹은 거만하고 꼰대 같은 고양이가 죽었다. 늦은 밤 집에 들어서면, 심드렁히 올려다보며 등이나 긁으라는 듯 울어대는 러시안 블루가 죽었다. 여태껏 먹여주고 재워준 은혜도 모르는 녀석이, 내 얼굴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떠나버렸다.
하염없이 우는 그녀와 룸메이트에게 말했다. “괜찮아. 좋은 데로 갔을 거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게 이기적인 놈이면 좋은 데로 갔을 테니까. 이상한 고양이 지옥 같은 데서 헤맬리 없으니까.
꿍이는 화장을 할 것이다. 그리곤 쫄아서 나가지도 못하던 창문 밖 도로에 재로 남겨질 것이다. 바람은 꿍이를 조각해 천국으로 데려갈 것이고, 나는 못돼 먹은 고양이 녀석에게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니 행복할 것이다. 나도 꿍이도 행복할 것이다. 꿍이 없이도,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