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을 맞추러 테일러 샵에 들렀다. 테일러 샵에 들르기 전까지는 양복을 수제로 맞춰주는 곳을 그렇게 부르는 줄도 몰랐다. 신사복점, 양장점 정도가 품격 있는 양복집의 지칭어였으니까. 결혼식 때에도 검은 면바지에 코트를 입는 천문대 강사는 서른 하나가 되어서야 단어 하나를 배웠다.
“너무 깔끔해. 친절하고, 멋있어”. 테일러 샵을 나오며 나는 감탄했다. 이곳은 소가 핥은 듯 깔끔하게 포머드를 한 사장님과 배는 나왔지만 흰 셔츠를 멋들어지게 입은 직원들이 상주하는 곳이었다. 노란 불빛과 고급스러운 실내도 마음에 쏙 들었다. 비즈니스 석에 앉은 느낌이랄까. 여기는 친절의 최전선이 분명했다.
“어떤 색상이 좋으세요?”
“음.. 글쎄요.. 남색.. 회색.. 브라운 다 좋은데...”
“조끼도 맞추실 건가요?”
“음..”
“자켓은 더블 자켓과 싱글 자켓이 있고, 여기 보이는 체크무늬 같은 경우에는...”
나는 테일러 샵이 인원수만 말하면 뚝딱 한 상이 차려지는 기사식당 같은 곳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전채 요리와, 메인, 후식 그리고 스테이크의 굽기까지 정해야 하는 레스토랑에 가까웠다. 선택할 것이 엄청나게 많았다. 싱글 자켓과 더블 재킷도 잘 몰랐던 내가 원단을 골라야 했다. 조끼를 입는 게 좋을지, 셔츠의 카라의 길이와 각도를 어떻게 할지도 선택해야 했다. 친절한 말투 속에서 전달되는 폭풍 선택지들을 듣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순간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올랐다. 어느 날 그는 좋은 기회로 훌륭한 여객기를 타게 되었는데 승무원이 매우 친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 시간도 채 못가 그는 지치고 말았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기내 방송과 서비스가 도리어 불편했던 것이다. 어느 순간 그는 생각했다. ‘하늘을 나는 카펫 같은 무뚝뚝한 몽골 항공이 그리워’. 그의 표현이 어찌나 재밌던지 한참을 웃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게다가 상담 실장님은 버릇처럼 말했다.
- 이 원단은 최고급이세요
- 옷은 한 달 정도면 나오실 거세요.,
뭔가 이상하다. 천 따위가 훌륭하시다니 왠지 자존심이 상한다. 고귀하신 원단을 내가 모시는 느낌이다. 물건에 존댓말을 쓰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그런 말들은 아주 흔하다. 서비스가 중요한 곳에서는 쉽게 들을 수 있다. 항공사에서도, 명품샵에서도, 심지어는 카페에서도 들린다. “커피 한 잔 나오셨어요.”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쉽게 탓할 수도 없다. 서비스는 과해야 인정받으니까. 땅콩 봉지를 까서 주지 않으면 비행기를 돌려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갑질을 당하고도 무릎 꿇지 않으면 고소장이 날아오니까. 아무래도 고소장보다는 천 따위에 존댓말을 쓰는 게 나은 것 같다.
우월주의에 빠진 손님이 과도한 친절을 만들고, 그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또다시 갑질을 장착한다. 그러면 갑질을 당하지 않기 위해 또 무리한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악순환에는 정도가 없다.
게다가 나는 테일러 샵에 한 푼도 지불하지 않았다. 가성비가 좋다는 말에 한 번 상담을 받은 차였다. 그는 자신에게 수익을 줄지 안 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홍수 같은 친절을 느끼며 도리어 복잡해졌다. 이런 서비스를 받고도 구매하지 않으면 갑질일까? 그럴 리 없다. 하지만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다시 그 테일러샵에 방문할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친절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 하니까.
덜 친절한 사회가 되어서 덜 지불하게 되면 좋겠다. 그럼 그들은 손님에게 아낀 친절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것이고, 조금 더 사랑받은 사람은 더 힘을 내서 자신의 과일 과게에서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나는 친절을 덜 산비용으로 과일을 한 봉지 더 사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친절이 꼭 좋은 것일까? 글쎄다. 적어도 과도하진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