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고 싶지 않은 배틀이 있다.

by 조승현

정답이 있는 질문이 있다. “오빠, 나 오늘 못생겼지?”란 말에 “그러게, 오늘은 좀 별로네”란 대답은 안된다. 그랬다간 오늘만 별로인 사람을 평생 못 볼 수도 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라는 말에 “뭐 이런 데다 회의장을 만들었나요?”라고 말하면 그날 회의는 불 보듯 뻔하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창의적인 대답으로 유머러스 훈남이 되기란 여간 쉽지 않다. 교과서 같은 대답이 역시 가성비 넘친다.
“요즘 일 잘돼?”란 말에도 답이 있다. “에휴, 말도 마세요. 죽겠어요”. 한숨도 한두 번 쉬어주면 효과가 좋다. 겸손은 아니다. 나도 힘들다는 어필을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이만큼 불행하니 질투하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어느 날 친구가 “너는 좋아하는 일 하니까 행복하지?” 하고 물었다. 친구에게 까지 예의를 차릴 필요가 있나 싶어 솔직하게 말했다. “응, 진짜 좋아. 행복해!”. 나는 그 순간 친구의 눈에서 이상한 배신감을 읽었다.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대화는 “그래, 너라도 행복해서 다행이다” 로 끝났지만 묘한 침묵이 카페를 감쌌다. 불편해 죽을 뻔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뒤로는 어떤 힘든 점을 이야기해도 차가운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행복하다며, 나보단 훨씬 낫지 뭐”. 나는 그에게 공감을 바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감히 ‘행복’을 입에 올린 대가였다. 괜한 말을 했구나 싶어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앓는 소리나 할걸 그랬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나는 살이 안 쪄서 고민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고통을 얘기해도 복 받은 줄 알라며 훈계를 듣는다. 삼겹살을 고민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분명 행운이지만, 먹어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 앙상함은 고민이다. 괴상하게 튀어나온 갈비뼈가 매력적일 리도 없고.
그러니 ‘좋아하는 일을 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대신 불행 배틀에 뛰어드는 게 훨씬 편하다. 사회 물을 먹으며 나도 셋 이상이 모이면 열리는 불행 배틀에 열혈 참가자가 되었다. 대화가 뻔하다. 나는 이만큼 힘들다며 경쟁한다. 한 겨울밤에 별을 보는 추위에 관해, 밤에 일하는 외로움에 대해, 산속에 박혀 일하는 고립에 대해 토로한다.

그러고 나면 늘 그쪽에서 불행으로 반박한다. 후배가 얼마나 일을 못하는지, 회사가 얼마나 한심한지, 나는 어느 정도의 손해를 보면서 일을 하고 있는지. ‘우리 부대가 전국에서 제일 힘들다니까!’라고 말하는 이등병이 되는 것이다. 불행 배틀은 하소연으로 홍수가 난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암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뱉은 말들이 씨앗이 되어 불행 밭이 되면 어떡하지. 말은 고작 한마디로도 행복을 파괴할 만큼 강한 힘을 갖는 것 같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사랑을 막 시작한 연인들은 쏟아지는 깨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오빠 사랑해”
“오빠가 두 배 더 사랑해”
“아니야 내가 다섯 배 더 사랑해”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사랑 배틀은 연애의 챕터 1 아니던가.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랑은 말한 만큼 더 확실해지고 그러면서 더 커진다는 것을. 배틀은 아무래도 불행 배틀보단 행복 배틀이 나은 것 같다. 눈치 보지 않고 “나 요즘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다. 이런 배틀이라면 피하지 않을 거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