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운
신용운은 마법을 부리는 인간으로서, 늘 이해할 수 없는 기술을 선보이곤 한다. 동물 농장 아저씨처럼 모든 동물을 순종하게 하는 기술, 음침한 곳을 운치 있게 사진 찍는 기술,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5시간 연속 운전을 해버리는 기술까지. 그는 내 인생의 유일한 간달프다.
어느 가을, 붉게 물든 산의 기운을 받자며 천문대 근처로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는 “그래도 가을 여행인데, 소고기 먹어야지!” 호기롭게 외치고는 귀하게 모셔온 미국산 소고기를 꺼냈다. 마법은 그때부터였다.
소고기의 국적이 변하고 있었다. 아메리칸 카우가 한우로 변하고 있었다. 분명 고기를 고를 때만 해도 '이 소는 몸짱이었나 봐' 싶을 정도로 근육질이었다. 한데 입속에 들어온 것은 사르르 녹는 한우였다. 그가 숯불 위에서 수어 번 뒤집고 탁탁 털어내자 마블링과 육즙이 슬슬 걸어 나온 것이다. 그것은 마법이었다! 육즙을 드래곤볼처럼 혼신을 다해 모으는 그에게 물었다.
"용운아, 너는 고기 굽는 거 안 힘들어?"
"지금 삼두박근이 찢어질 것 같은데?"
"내가 구울까?"
"목살 같은 소고기 먹고 싶지 않으면 가만있어"
"알겠어"
고기를 굽는 게 즐거워서가 아니라,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였단 걸 그제야 알았다.
신용운은 경기도 수지의 천문대에 일하고 있는 나의 10년 지기 친구다. 대학 시절의 싱그러움과 일터의 쉰(?)그러움을 온전히 나누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의 마법 중 빛나는 기술 또 하나는 공감이다. 머리카락은 별로 없지만 인정은 많다. 어떤 순간에도 마음을 따스하게 쓸 줄 안다.
우리 집 고양이가 갑작스레 병으로 죽었을 때였다. 꿍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난데없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나도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데, 그가 나라 잃은 것처럼 눈물을 쏟았다. 나는 그 반응이 고맙고도 웃겨서 말했다. "야 그런데, 넌 도대체 왜 울어?", "음?... 그냥 네가 슬퍼하니까".
슬픔은 그런 웃음 한방에도 쉬이 흩어졌다. 우리는 마저 고기를 구웠다. 불판 위에서 헝가리산 돼지는 역시나 한돈이 되어버렸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꿍이의 슬픔도 잠깐이 되어버렸다.
오랜 친구를 가진 기쁨 중의 하나는 과거의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떠올리며 수십 년 동안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 30년이 흐른 뒤에도 우리는 꿍이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얘 그때 펑펑 울었잖아, 도대체 왜 울었냐고! 나도 안 우는데!". 그러면 신용운은 발끈해서 얘기 말할 것이다. "삼겹살 식감을 닭가슴살로 만들어 줘?" 그러면 나는 바로 입을 닫을 것이다. 말과는 다르게 불판 위의 삼겹살은 황금 비율로 육즙을 쌓아갈 것이고. 긴 장편 같은 삶에도 단편의 에피소드는 달콤한 비타민이 된다. 우리는 그 장면을 먹고 또 웃고 또 즐기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