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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an 05. 2020

나는 매일 밤 지옥으로 떨어졌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의 사명감으로 나는 여러 전자제품을 구매했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겠다며 가벼운 노트북을 샀다. 글을 써야 한다며 아이패드도 샀다. "난 비싼 시계에 관심이 없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닌 주제에 수십만 원짜리 스마트 워치를 차고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과 핸드폰, 보조 배터리는 나의 분신이 되었다. 내 몸에 지닌 인류의 과학적 진보는 아이언맨에 근접했다. 나는 그 대단한 업적을 껴안고 매일 밤 떨어졌다. 충전 지옥으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밥을 먹이는 것이다.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어려운 일은 세끼를 챙기는 일이고, 직장에서 점심 메뉴를 선택하는 데도 오전 일과만큼의 에너지가 소비된다. 밥을 먹는 게 간단한 일이라면 방송 '삼시 세 끼'는 방영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루 내내 밥만 지어도 시간은 지나간다. 

 그런 삼시 세끼의 지옥을 아기도, 반려동물도 아닌 전자 제품을 통해 느끼고 있다. 값비산 인류 진보의 증거들도 배터리 없이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무겁고 쓸모없었다. 작고 훌륭한 최첨단 아가들은 전기로 토닥토닥 어르고 달래야 역할을 해냈다. 자유롭자고 선택이 것들이 충전 선으로 나의 목을 휘감았다. 


 몇 해 전 영화배우 신현준은 금연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는 울부짖듯 말했다. "담배를 끊으려고 금연껌을 시작했잖아. 그런데 금연껌은 도대체 뭘로 끊어! 6년째 씹고 있다고!". 나를 보니 딱 그 꼴이었다. 도대체 충전은 어떻게 끊나요? 전자기기를 끊어야 하나요?


국제 우주 정거장에 머무는 우주인과 떠있는 마이크, 칫솔 (c)Canadian Space Agency


 우주에 머물다 지구로 돌아온 우주인들은 예상치 못한 직업병에 빠지곤 한다. 핸드폰이나 값비싼 만년필들을 자꾸 바닥에 떨궈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중력 탓이다.

 우주에서는 무엇이든 잠시 내려놓고 싶을 때, 그저 공중에 두면 된다. 무중력 상태라 볼펜이든 칫솔이든 둥둥 떠있기 때문이다. 서랍이나 책상 위에 올려 둘 필요 없이 허공에 두면 그만이다. 물론 자신이 본 변들이 둥둥 떠다니는 끔찍한 상황도 마주하지만, 중력의 부재에 장렬히 적응한다.

 문제는 우주 생활에 익숙해진 우주인들이 지구로 돌아온 후다. 지구의 중력을 잊은 채 물건들을 공중에 띄우는 것이다. 덕분에 값비싼 물건들은 정성을 다해 지구와 박치기를 한다.

 중력. 꼭 필요하다고 여겼지만, 결국은 적응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의존은 언제든 또 다른 의존으로 대체된다. 삶은 언제나 비워진 곳을 채우기 마련이다. 부재는 선택이고, 선택은 다시 의존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삶에 꼭 필요한 것인가, 는 의심해 봐야 할 문제다. 나는 오늘도 충전 지옥을 서성이며 지난 선택에 전기밥을 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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