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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an 13. 2020

고향 집에 착륙했다

“금방 왔네?”


 고향 집에 도착하자 누이가 나를 맞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였다. 가족도 이제 적응했나 보다. 도착이 새벽 한 시 정도면 일 마치고 부지런히 출발했겠네, 하고.


 편의점에서 집어온 닭다리 살을 식탁에 꺼내놓았다. 줄 마음도 없었는데 누이가 말했다. “나는 오늘 너무 많이 먹었어”.  그러더니 털썩 부엌에 앉아 말동무를 시작했다. 이게 얼마만인지. 문득 누이와 둘이 자취하던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기억나? 나 스무 살 때 누나 학교 자취방에서 같이 살았잖아”


 누이는 나와 비슷한 좁쌀 같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가 같이 살았었다고? ".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수가 있나. 고작 한 달이래도 장대비 보다 더 억수로 싸웠던 시간을 잊다니. 한참을 설명한 뒤에야 누이의 끊어진 기억이 이어졌다.

 추억의 미끄럼틀에 오른 우리에게 10년 전 이야기가 쏟아졌다. 생에 첫 알바비를 수표로 받아온 바람에 수표 결제가 되는 편의점을 찾아 동네를 떠돌았던 이야기, 웬만한 산쯤은 비웃어 버리는 상명대 오르막길을 오르며 프로 등산러가 된 이야기, 전세로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 부리나케 이사를 했던 이야기, 이래나 저래나 서로 청소 하나는 더럽게 못했다는 이야기. 추억은 10년 동안 캄캄한 우주를 맴돌다가 어느 새벽, 고향 집 부엌에 착륙했다.


 따뜻한 마음으로 거실 소파에 누웠다. 널찍한 거실 창 너머로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보였다. 다른 별들은 다 고요한데 혼자만 축제였다.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시리우스 별이었다.

  시리우스는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10년쯤 걸리는 곳에 있다. 오늘 지구에 도착한 시리우스 별빛도 10년 전에 출발한 빛이다. 그러니 지금 보는 시리우스는 사실 10년 전의 모습인 것이다. 아득히 먼 과거의 빛이 들자 왠지 평안했다. 별빛은 10년 동안 캄캄한 우주를 거쳐 어느 새벽, 고향 집 소파 머리맡에 착륙했다.


 십 년 동안 열심히 우주 공간을 달려왔을 별빛이 감사했다. 십 년의 시간을 거쳐 닿은 누이와의 추억도 고마웠다. 추억은 별빛처럼 고요한 우주 공간을 가만히 온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에게 도착해 마음에 닿는다. 지금 행복한 추억이 없대도 걱정하지 마시라. 닿지 않았다면 그저 조금 멀리 있을 뿐, 언젠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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