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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Jan 17. 2020

전투의 최전선은 아름답다

 또 싸웠단다. A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했다.


"내일도 아마 예쁘게 차려입고 나올걸?"

"무슨 말이야?"

"전투복을 입는 것처럼 꼭 이쁘게 꾸미고 나와서 싸우더라니까?"

A는 3년쯤 사귄 여자 친구와 싸우고 있었다. 평소엔 화장도 잘 안 하는 여자 친구가 꼭 싸울 때만 꾸민다며 하소연을 했다. 나는 무릎을 쳤다.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한 작전 아닌가. A에게 통할 작전이라면 역시 미인계가 최고다. 내가 물었다.


"결과는?"

"뻔하지. 그렇게 꾸미고 나오면 도저히 화를 못 내겠더라고. 왜 그렇지?"

"예쁘니까?"

"그치? 내 여자 친구가 예쁘긴 하지?"

"입 다물어"


   A도 언제부턴가 싸우면 멋지게 차려입는다고 했다. 자신도 미모를 챙겨야 정당한 싸움이 될 것 같다며 미용실도 들르고, 안 입던 슈트도 챙겨 입는단다. 험악한 표정의 커플이 쫙 빼입고 카페에 앉아 언성을 높이는 장면이라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전투가 또 있을까?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싸움은 우주에서 펼쳐진다. 100km 상공쯤에 나타나는 오로라다. 알고 보면 오로라는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다.

 오로라의 원료는 대부분 태양에서 온다. 따뜻한 햇살은 고맙지만, 태양에 있던 입자는 인간의 몸에 매우 해롭다. 무려 암이나 백혈병을 유발한다. 게다가 이 입자들은 태양에서 부는 바람을 타고 끊임없이 지구로 날아온다.

 다행인 것은 지구에게는 자기장이라는 든든한 보호막이 있다. 하지만 자기장의 빈틈을 파고들어 지구로 흘러들기도 한다. 이때 태양의 입자들이 대기와 부딪치면서 빛이 나는 현상이 오로라다. 오로라는 태양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려는 전투의 최전선인 것이다. 초록과 붉은 선혈이 낭자한 전투. 우리는 그 아래서 언제나 황홀하다.


 "효과가 있어?"

곱게 차려입고 싸우러 간다는 A에게 물었다.

"당연하지. 우리 싸움은 1시간 안에 끝나. 싸우다가도 서로가 너무 괜찮거든."

"입 좀 다물어"


 전투의 최전선은 혹독하다. 오로라를 만나는 순간은 추위에 닿아있고, 연인과 싸우는 날은 한기가 돈다. 그 전장에서도 우리는 황홀하다. 현실에서 추위를 느낄 건인가 황홀함을 느낄 것인가는 감정에 달렸다. 이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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