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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Feb 19. 2020

우주를 지키는 방법


 아이들에게 종종 천체 사진을 선물하는데, 가끔은 아이들이 먼저 사진을 찾기도 한다.     


“선생님, 오늘 관측한 별 사진은 없어요?”

“아쉽게도 없네”

“너무 예뻐서 사진으로도 꼭 갖고 싶었는데...”

“대신 다음 달에 한 번 더 보여줄게!”     

 아이는 짧게 "네" 하고 돌아섰지만 실망한 기색은 길게 남아 강의실을 채웠다.


 교육 준비실에 들어섰다. 수업때 쓴 교보재들을 정리하던 중 사진 보관함 구석에 아이가 말한 천체 사진이 수어장 박혀있는게 보였다. 여러 사진과 뒤섞여 미처 발견하지 못했나보다. 조금 더 꼼꼼히 눈여겨보았다면 줄 수 있었을 텐데... 실망하며 돌아간 아이의 표정이 눈썹 사이에 턱 하고 걸쳤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강사는 학생의 열망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강사다. 덜렁대서 그렇고, 세심하지 못해서 그렇다. 사진이야 고작 100원쯤 하지만 가치는 가격대로 매겨지지 않는다.    

 

 한기가 도는 교육 준비실에 서서 상상했다. 혹시 타이밍에 맞게 사진을 줬더라면, 원하던 사진을 제때 받았더라면, 아이는 사진 속 천체를 평생 자신의 우주처럼 여기지 않았을까. 60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도 핸드폰 배경화면은 그 천체이지 않을까. 설을 맞아 놀러 온 손자가 우연히 배경화면을 보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지 않았을까. “할아버지 마음속의 가장 빛나는 별이란다”. 어쩌면 손자에게 널어놓았을 아이의 우주를 내가 없앤 것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상상도 좀 적당히 하자’ 싶다가도 ‘또 그러면 안되지’ 싶다.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다시 누군가의 미래에 훼방 놓아서는 안된다. 주변을 몇 번 더 둘러보는 것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딱 그 정도만으로도 누군가의 우주를 지킬 수 있다면, 꽤 남는 장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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