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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Dec 17. 2019

낭만이 흐르는 별 데이트

 계획이 또 말라버렸다. 데이트 계획 말이다. 연애 초,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샘 같던 데이트 코스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사태를 방관했다간 서릿장 같은 질문을 받을게 뻔했다. "오빠, 이제 나랑 하고 싶은 게 없어?"

  무엇을 해야 할까, 초조함을 들고 인터넷을 부유했다. 하지만 IQ가 고만고만한 인류는 데이트 코스도 고만고만했다. 한 두해 전 이색 데이트 코스라며 올라온 것들이 이제는 너무 평범했다. 방 탈출도, 좋은 좌석의 영화관도 진부한 데이트가 되어버렸다. 낙담을 하고 있던 때 마지막 멘트가 눈에 띄었다.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이색 데이트입니다. 여성은 남성의 일하는 모습에 섹시함을 느낍니다."


그랬다. 나는 별을 보여줘야 했다. 잊고 있었다, 내 직업이 꽤나 낭만적이었다는 것을. 추운 겨울이었다 . 겨울엔 밝고 아름다운 별들이 더 많았다. 밤하늘 아래서 오직 둘만의 데이트라니. 레이저를 휘날리며 섹시함을 풍길 기회였다. 별을 보러 가자는 말에 그녀는 단답으로 말했다.


"좋아"


 별을 보는 것은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퍽퍽한 사회생활과 돈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잠시 떨어지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별보기는 영화를 볼 때 보다 더욱 서정적이고, 그 순간도 고요하다.

 그렇다. 서정적이고 고요하다. '재미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데이트 코스로는 도저히 써먹을 수가 없다. 수더분하게 다가오는 별빛을 맞으며 빙긋 웃는 데이트를 생각하겠지만, 별을 보는 데이트는 생각보다 어색하다. 웃을 거리가 없다. 게다가 원래 별에 딱히 관심이 없으면 더 할 말도 없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가만히 서서 별을 보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나는 방심했다. 내 전문 분야라고 아무 준비도 없이 그녀를 밤하늘 아래 세운 것이다. 역시 일과 사랑은 다른 분야인 것 같다.


 천문대 데이트를 하던 우리의 모습은, 추위에 덜덜 떨며 직업 체험을 하는 남녀에 가까웠다. 낭만은 무슨, 콧물만 낭자했다. 그녀의 반응을 듣지는 못했지만 뻔했다. 추웠고, 고요했으며, 또 별을 보자는 말이 없던 것으로 알 만 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별을 보는 것으로 마음을 사겠다고 해도 나는 말릴 생각이 없다. 소중한 사람에게 진중하게 다가서고 싶다는 의미니까. 한 사람을 위한 계획은 늘 따뜻하다. 물론, 계획을 세웠다고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나는 실패했었다. 당신은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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