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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Dec 11. 2019

별은 집에서도 볼 수 있잖아?

 원래는 천체 관측 동아리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동아리를 고를 때였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별은 집에서도 볼 수 있잖아?'

  그래서 밴드부에 들어갔다. 누이가 "밴드부 오빠들 인기 진짜 많아"라고 말했던 것이 좌뇌 전반을 차지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연애가, 아니 연주가 하고 싶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같은 취급을 받는 게 싫었다. 나는 천문학자가 될 사람인데, 벌써 3년 동안이나 혼자 별을 봤는데, 이제 막 별에 입문한 친구들과 별을 본다고?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중2병이 한참 도진 사춘기 소년에게는 그랬다. 



1년 뒤, 학교 축제가 열렸을 때도 나는 밴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틀리면 어떡하나, 망치면 어떡하나. 피아노 건반처럼 마음이 도톨 도톨 불안했다. 그때 천체 관측 동아리 친구가 말했다.


"축제날 밤에 우리도 관측회가 있어, 별 좋아한다며? 너도 구경하러 와". 


 별을 보러 오라고? 천문학자가 꿈인 나에게, 별을 보러 오라니. 역할이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지 않은가. 기우뚱한 위치는 기울어진 생각을 불러왔다. '별은 집에서도 볼 수 있잖아?'

 그래도 뚜벅뚜벅 찾아갔다. 달도 뜨지 않은 어두운 밤이었다. 저 멀리 망원경을 깔고 열심히 별자리를 설명해주는 친구들이 보였다. 나에겐 없던 달빛 같은 열정이 보였다. 한참 넋을 놓고 있을 때 지구 과학 선생님이 다가왔다.


"승현이도 왔네. 승현이는 천문학자가 꿈이랬지?"

"네"

"별도 자주 보니?"

"네. 12인치 돕소니안 망원경도 있어요!"

"우와~ 멋진데? 그걸로 보면 안드로메다 은하나 ET성단도 엄청 잘 보이겠구나"

"그... 그럼요"

"애들이 맞춰놓은 것도 있으니까 비교해봐"

"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안드로메다 은하를 친구들이 맞췄다고? 교실 불빛이 가득한 학교 운동장에서, 저 망원경으로? 물론 나는 그런 걸 맞출 능력이 없었다. 사실 별자리도 모양만 알았지 언제 어떻게 뜨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내 친구들이, 같은 취급을 받기 싫어서 관측 동아리도 등지게 만들었던 그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별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땅을 쳐다보았다. 내가 가진 것은 딱 두 개뿐이었다. 아무 노력 없이 아버지가 사준 12인치 돕소니언과, 천문학자라는 꿈. 명확하게 표현하자면 나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 입만 산 고등학생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나는 기억한다. 부끄러웠던 밤하늘 아래서의 대화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능력이 쌓이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서 '사랑하니까'라는 주문을 외워봤자 배만 고프다. 그랬다. 그냥 배만 고팠다. 나는 머리를 탁 쳤다. 그리고 꾀죄죄한 스스로에게 말했다. 제발 집에서라도 별 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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