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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현 Nov 26. 2019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달에서 말이죠.

 만약 당신이 달에 착륙한 우주인이고, 지구로 돌아오는 엔진 스위치가 부러진 것을 발견했다면?  맷돌 손잡이를 가장 인상 깊게 설명했던 영화 <베테랑>의 대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어이가 없네?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그것도 닐 암스트롱에게 말이죠.


 1969년 7월 20일, 우주복을 갖춰 입은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찍었다. 어릴 적 덜 마른 시멘트에 발자국을 찍다가 엉덩이를 호되게 맞아본 경험자로써, 그 감동과 짜릿함에 경외감이 든다. 역시 뭘 해도 역대급으로 해야 훈계 대신 훈장을 받는다.


 두 사람은 달 표면에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지친 몸으로 달 착륙선인 이글호로 돌아왔다. 이제 한숨 자고 지구로 돌아오면 완벽한 영웅의 귀환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륙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계기판이 평소와 다른 것을 느꼈다. 이륙에 필요한 엔진 상승 스위치가 부러져있었다.

 상승 스위치가 작동되지 못하면 이글호는 꼼짝없이 달에 갇힐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우주 미아가 돼버리는 것이다. 휴스턴 관제센터는 초비상이었다. 두 사람이 귀환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닉슨 대통령의 연설 원고가 급히 작성되었다.


 평화적 탐사를 위해 달에 갔던 두 사람은 결국 달에 영원히 남을 운명이었습니다. 우리의 용감한 두 사람,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살아서 지구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는 것도 압니다. (...)어느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인류는 영원할 것입니다.

_미국 국가기록 보존처 닉슨 기록관


다행히 이 연설은 쓰이지 않았다. 휴스턴 관제 센터에서 들려온 한마디 덕분이었다.

 "빈 볼펜대를 부러진 스위치 핀에 꽂아"


 첨단 과학의 시대에서, 4차 산업 혁명의 흐름을 살아낸다. 그위에 마주친 위기들은 의외로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되곤 한다. 볼보가 최악으로 치닫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의 외면을 고작 컵홀더를 넣는 것으로 극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긴, 생과 사를 가르는 문제도 종종 볼펜대 정도로 해결된다.

 그러니 절체절명의 순간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대신 주변을 돌아봐야겠다. 볼펜대 같은 것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 어이가 없어 돌릴 수 없던 맷돌도 그르륵 돌아간다. 우리 삶에도 다시 스위치가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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