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세계가 충돌은 했습니다만...

성격이 다른 사람과 살면서 허세부리기

by 조승현

그는 천상 살림꾼이었다. 어차피 씻을 거라며 샤워 전 쓰레기통을 비우는 사람. 몸에 물을 묻힌 김에 화장실 청소를 하는 사람. 걸어 다니는 김에 청소기를 돌리는 사람. 자다 깨서 처음으로 향하는 곳이 화장실이 아니라 싱크대 앞인 사람. 나의 20대를 함께 보낸 오랜 룸메이트, 기보람 씨다. 이름 때문에 여자로 오해를 사지만 남자다.

어느 날 보람이가 청소를 하다 말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형, 저는 어디 호스텔에서 일해야 할까 봐요"

"그러게, 너는 그쪽 적성인 것 같아”

“맞아요. 청소하고, 빨래한 후에 깨끗한 모습을 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나중에 형이 호스텔 하나 차릴 테니까, 같이 일하자!"

"저야 무조건 땡큐죠!"


나는 어느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청소기를 들었다. 큰 맘먹고 산 바다 건너온 무선 청소기를 들고 이리저리 누볐다. 한참 후에 돌아보니 바닥에 먼지가 그대로였다. 고양이가 뿜어 놓은 털도 그대로다. 저들은 100만 원에 가까운 청소기의 폭풍 흡입에도 어찌 저리 굳건할 걸까. 이런 식이라면 호스텔을 운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청소기 하나 제대로 돌릴 줄 모르는 사람에게 그런 사업은 무리다. 호스텔은 보람이가 차려야 한다.


같이 살기로 한 후 처음 나의 집에 온 보람이는 기겁했다. 호프집에서나 봤을 법한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돌 하르방처럼 신발장 앞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쓰레기통을 비울 필요 없이 무한히 넣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보람인 쓰레기를 왜 수집하냐며 눈 크기로 경악을 표현했다. 심지어 진한 주황색 종량제 봉투였다. 선인장도 말라비틀어져 죽는 우리 집에도 그 봉투만큼은 건재했다. 화사한 거대 비닐을 보며 보람이가 말했다. "세상에 이런 집도 있네요"

그 집에서 5년을 보람이와 살았다. 살면서 알게 되었지만,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성향이 달랐다. 그는 청소를 좋아했고, 나는 매일 택배 상자를 풀어헤쳐놓기 바빴다. 나는 나무젓가락의 빳빳하고 마른 느낌을 좋아했는데 그는 일회용 젓가락을 이상하리만치 싫어했다.

게다가 내 샤워는 3분이면 끝났다. 하지만 그의 샤워는 드라마가 반쯤 지나도 계속됐다. 화장실이 하나인 집은 그 정도로도 충분한 재앙이 된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 화장실이 너무 급했다. 하필 보람이가 한창 샤워 중이었다. 그 영원 같던 10분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방광이 터져 죽은 전설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의 심정이 화살처럼 꽂혔다. 보람이와 나의 삶이 거대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깝고 번듯한(?) 외부 은하는 '안드로메다 은하'다. 빛의 속도로 250만 년 정도만 달리면 만날 수 있다. 인간의 동네에서 이 정도면 다른 세상 얘기지만, 우주의 규모에서 이 정도면 주차장에 주차되어있는 옆 차 수준이다. 게다가 우리 은하가 평범한 승용차 정도 크기라면 안드로메다 은하는 5톤 트럭쯤 되는 훨씬 커다란 은하다. 커다란 은하가 가까이 있는 덕에 인간의 천문학은 조금 더 순조롭게 발달했다. 행운이다.

불운이라면 두 은하가 결국 충돌한다는 것이다. 우리 은하에는 태양과 비슷한 별들이 3000억 개쯤 있다. 안드로메다에는 더 많은 약 7000억 개의 별들이 있다. 각 은하에 딸린 식구와 상관없이 그 둘은 지체 없이 달려와 총알의 100배에 달하는 속도로 서로를 들이박는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냐고? 글쎄, 별일 안 일어난다. 특히 지구에게는 더더욱.



안드로메다 은하와 우리 은하가 충돌하는 과정 상상도 (c)NASA


두 은하의 충돌은 약 1조 개의 별이 뒤엉키지만, 별끼리 직접 부딪힐 확률을 거의 0%에 가깝다. 사진으로 보기에 은하에는 별이 빽빽하게 차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구 만한 공간에 모래알이 몇 개 있는 정도로 별은 은하에 듬성듬성 박혀있다.

상상해보자. 야구장 양 끝에 친구와 마주 보고 선다. 서로를 향해 힘껏 야구공을 던진다. 야구공이 공중에서 서로 부딪칠 확률은 어떨까. 기회가 1번이라면 야구공을 잡아본 적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의 성공률은 1%도 채 안될 것이다. 조금 더 사이즈를 키워보자. 만약 서울 양 끝에 서서 사거리가 충분한 총을 발사한다면, 총알이 공중에서 부딪치는 확률은? 계산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은하와 은하끼리 충돌할 때 그 안에 별들이 충돌할 확률은, 지구 양 끝에서 모래 알갱이 몇 개를 던지는 과 같다. [지구] 양 끝에서 던진 [모래 알갱이]가 부딪칠 확률이라니. 사진으로 볼 때 은하에 별이 빽빽하게 차있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두 은하는 충돌하지만 부딪치지는 않는, 꽤 멋진 만남을 하게 된다. 이게 다 은하가 가진 빈 공간 때문이다. 별과 별 사이의 먼 거리, 그 공백은 서로를 아무렇지 않게 통과시킬 정도로 광활하다. 덕분에 지구는 안드로메다 은하가 다가서도 안녕할 계획이다. 아 참, 두 은하가 충돌하려면 40억 년 정도 남았으니 참고하시라.


살아보니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또한 거대한 두 세계가 충돌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보람이와 나는 5년 동안 단 한 번의 싸움도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성향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내 공백에 상대의 장점을 채워 넣는 과정이었다. 쇼핑을 좋아하는 나는 청소를 좋아하는 그에게 아낌없이 청소 용품을 제공했다. 청소를 편하게 하자며 다이슨을 샀다. 빨래 너는 수고를 줄이자며 건조기를 주문했다. 그러면 그는 최신식 총을 보급받은 조선의 군인처럼 신이 나서 휘둘렀다. 그의 청소 실력이 집 곳곳에 묻었다. 무엇이 떨어지면 나는 부리나케 주문했고, 그는 그것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우리는 완벽한 짝꿍이었다.

만약 나와 똑같은 사람과 살았다면? 어휴. 아마 몇 밤을 지내곤 진저리를 치면서 도망칠 것이다. 깊게 이해할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포기할 것이다. 똑같은 마음은 같은 부분에서 양보하기가 힘들다. 같은 순간에 같은 배려를 원한다. 같은 순간에 같은 원망을 퍼붓는다. “네가 좀 하지” 하면서.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 사는 게 좋았다. 치킨 한 조각을 집어 들 때 자연스레 그는 가슴살을, 나는 다리를 집어 드는 순간은 환상적이다. 떡볶이를 먹을 때 나는 어묵을 그는 떡을 생각 없이 집어 드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같은 집에서 다른 성격을 집어 들고 살았나 보다. 서로의 공백을 감사하게 느끼면서. 세상에, 어떻게 퍽퍽 살이 더 좋을 수 있냐고 감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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