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카페 이름이 그냥그냥 인가요?

by 조승현

집 앞에는 '그냥그냥' 이라는 카페가 있다. 어머니 또래쯤 돼 보이는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시는 곳이다. 한옥과 미술관의 중간 콘셉트쯤으로 꾸며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색을 하고 있는 동상 몇 개가 카페 곳곳에 서있어 깜짝 놀랄 때도 있지만 고소한 커피 맛과 사장님의 따스한 미소에 반해 나는 그냥그냥 카페의 단골이 되었다.

카페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어쩌다 카페 이름을 그냥그냥으로 지었을까 궁금했다. 무엇을 할까 고르다 그냥 카페를 하게 되셨을까. 이름을 지으려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시다가 그냥 대충 짓기로 한 걸까. 아니면 카페 경력만 30년의 베테랑 이지만 어느 날 진상 손님에 환멸을 느껴 그냥그냥 바람처럼 살기 위해 성북구 산자락에 카페를 여신 건 아닐까.


카페란 단어를 막연이 떠올리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교도소의 범죄자들 조차도 모카 포트로 커피를 마신다는 이탈리아다. 내가 처음 해외에서 커피를 시킨 것도 이탈리아였다. 무려 10년 전 일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이탈리아에 여행을 다녀오면 더 멋진 사람이 된다고 믿었다. 비웃지 마시라. 베네치아의 풍류를 알고, 로마의 정취를 이해하며 이탈리안의 열정을 아는 남자가 어디 흔하던가. 이른 아침, 버터향이 가득한 크로와상을 건네는 바리스타에게 찡긋 웃으며 "그라찌에"를 외치고 진한 커피로 하루를 여는, 재력은 없어도 체력과 여유를 가진 그런 신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 떠돌던 당시의 나는 아직 커피에 눈을 뜨지 못했다. 아메리카노는 고사하고 밀크 커피에도 설탕을 더 넣어서 마셨다. 그런 나에게 이탈리아 카페의 메뉴판은 가혹하기 짝이 없었다. 커피에 고장에 왔으니 에스프레소는 무리더라도 아메리카노쯤으로 타협을 할 생각이 었던 나는 메뉴판을 보고 경악했다. '아메리카노가 없다고?'

커피 맛에 자부심을 가진 대부분의 이탈리아의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았다. 어디서 주워들으니 ‘물탄 맥주를 팔 수 없는 것처럼, 물탄 커피를 팔 수 없다’는 자긍심이라고 했다. 그걸 알 턱이 없는 나는 메뉴판이 휘두르는 주먹에 맞으며 가까스로 주문을 시작했다.

문제는 주문도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카페에서 필요한 언어가 그렇게나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아메리카노는 왜 없나요? 에스프레소에 얼음을 넣어줄 수 있나요? 덜 쓴 에스프레소는 없나요? 더 큰 잔에다가 주시면 안 될까요? 영어도 아닌 이탈리아어로 그런 말들을 정확히 구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는 체념하고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바리스타는 찡긋 웃으며 쥐콩만 한 잔에 한약 같은 액체를 넣어줬다. 나는 흑마늘 즙을 삼키듯이 에스프레소를 삼켰다. 바리스타는 정확히 '어때? 커피 맛 죽이지? '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문자 그대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결국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나는 커피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나면 되어있을 줄 알았던 멋쟁이 신사도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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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침대 밑에 블랙홀이라도 있는 것처럼 몸이 침대 아래로 한없이 빨려 들었다. 몇 주 내내 주말도 없이 일하며 몸을 혹사시켰더니 견디다 지친 몸이 파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점심 전에 깨면 죽게 되는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허리가 ‘나 이제 끊어질 것 같아’ 하고 신호를 주고 나서야 스멀스멀 침대에서 기어 내려왔다.

피곤함이 머리 위를 빙빙 돌자 진한 커피 한잔이 생각났다. 카페 그냥그냥에 갈 타이밍이었다. 잠자는 동안 머리에 지어진 새집을 가리기 위해 후드티를 걸쳐 입었다. 검은색 러닝 반바지도 찾아 입었다. 가지고 있는 신발 중 가장 비싼 러닝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방금 일어났지만 막 운동을 마친 성실한 스포츠맨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준비운동을 하듯이 얕은 허공을 괜히 툭툭 차며 기운차게 카페에 들어섰다. 나는 내 모습이 대충 배우 정해인처럼 땀의 성실함과 커피의 풍류를 아는 신사의 모습일 거라 기대했지만, 거울 속에는 성실하게 땀을 흘린 노숙자 같은 사람이 서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커피 한잔과 스콘을 시켰다. 맑은 가을바람이 커피 향과 함께 다가왔다.

나는 가을바람에 취해 처음으로 사장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사장님 근데요, 왜 카페 이름을 그냥그냥이라고 지으셨어요?"

사장님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성의 없어 보이죠?"

"아니요. 제가 좋아하는 곳이라 조금 더 알고 싶어서요."

사장님은 내게 받은 카드를 포스기에 긁으며 수줍게 말했다.


"사실은 아들이 지었어요. 뭐든 너무 의미를 두거나 집착하지 말고 살자는 의미예요. 별거 없죠?"


무엇이든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말자는 사장님의 말과 미소가 진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런 곳에서 카페 이름의 의미에 너무 집착한 건 아닌 가 싶어 살짝 부끄러웠다. 고소한 아메리카노의 향이 가을의 향만큼 좋았다. 돌고 돌았지만 늦게라도 커피를 즐기게 되어서 좋았다. 이제 커피를 즐기게 되었으니 다시 이탈리아에 가면 나는 풍류를 아는 신사가 될 수 있을까. 카페의 의미를 알았으니 나는 이 카페를 더 사랑하게 된 걸까? 글쎄다.

잘은 모르겠지만 궁극의 행복이 케이크 한 상자라면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잔 하는 지금 이 순간이 한 조각쯤은 되는 것 같았다. 그냥 그냥 커피를 마시면서 가을을 마시는 지금 이 순간이 무척 의미 있게 느껴졌다. 그것도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말자는 '그냥그냥'카페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