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자전거로 오른 알프스 '최악의 호스텔'

by 조승현

스위스다. 살인적인 물가의 나라. 평범한 밥 한 끼에 이만 원을 써야 하는 나라. 하지만 누구도 후회하지 않는 자연의 나라.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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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경로로 보자면, 스위스는 내 여행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스위스 정 중앙을 가로지르는 경로로 보름 가까운 시간을 스위스에서 보내야 한다. 천의 자연환경. 세상의 평화로움을 모은듯한 스위스의 풍경에 페달을 밟는 내 허벅지만 빼고는 모든 게 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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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자전거란, 위와 같은 윈도우 배경화면들 사이에 난 도로를 시원한 바람과 함께 지난다고 생각하면 쉽다. 아직은 높은 태양의 아래로 녹색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언덕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들만 있다. 길 옆 푸른 잔디에서 뛰노는 소들은 보너스다. 그림 같은 풍경은 사진 속을 여행하는 엘리스의 모험을 떠올리게 한다. 정신없이 아름다움 사이를 누비던 자전거는 이윽고 목적지에 다다랐다.'인터라켄', 아담하지만 대단한 것들을 가지고 있는 이 마을이 오늘의 목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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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같은 도시에서 제일 중요한 곳은 바로 알프스 산맥의 3대 봉우리 중 하나인 융프라우다. 높이 4158m 알프스의 삼대 봉우리 중 하나로, 빼어난 경관 덕에 알프스 최초로(2001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4158m라니... 한라산의 두배가 넘는다. 동네 뒷산도 싫어하는 내가, 무슨 수로 4158m에 올라갈까마는... 기차가 있다!! 말도 안 돼!! 이름하야 등산열차. 해발 3454m 높이의 관측소까지 열차가 다닌다.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역. 융프라우요흐 역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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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열차가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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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숙소는 해발 2000m 고지인 클라이네 샤이덱이다. 장장 네 시간이 넘는 업힐을 해야만 한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앞이 아득하다. 이미 두 시간을 오른 후다. 헬스장에서 허벅지 운동만 네 시간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윽, 단언컨대 이날의 내 허벅지는 웬만한 헬스 쟁이보다 두꺼웠으리라. 다행히 심장은 계속 뛰고 있다. 분명 숨이 쉬어지질 않는데, 왜 심장은 뛰는 걸까. 태양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휴식의 시간도 다가워 온다! 비포장 도로의 업힐 4시간이라, 오늘따라 이렇게 '짐'이 원망스러울 수가 없다. 정말 최소한의 최소한만 가지고 다닐 뿐인데,,, 다 버리고 기차에 오르고픈 마음이다. 젖 먹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의 힘까지 끌어다 쓴 건 분명하다. 으랏찻차!! 나중엔 아무도 없는 이 적막한 산 한가운데 소리를 빽빽 지르며 올라갔다. 노루도, 늑대도 아닌 무언가가 산 중턱에서 빽빽거림을 듣는다면, 필시 업힐에 지친 자전거 여행객일지도 모르니 따뜻한 마음으로 냉수 한잔을 준비해보자...^^



1428681904mt4ekFzA7rwRPmIgvH.jpg 묵은 숙소의 모습~^^ 숙소는 최악이었지만, 나의 존재를 우습게 만들 만큼 장어함 자연과 함께하고 있는 숙소.


도착했다!! 드디어 도착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인터라켄 서역에서 출발해 예약한 산장까지, 무려 4시간이 넘는 업힐로 착했다. 숨을 쉴 때마다 체력장으로 오래 달리기를 한 것 마냥 헛구역질이 나온다. 체크인을 해야 하는데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알프스 산맥 한 가운데 이런 산장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대 자연 안을 두 바퀴와 두 다리로 올랐다는 사실에 나 조차도 감격이다. 그런데 더 감격스러운 건 바로 숙박비다. 물가가 하늘을 찌르는 이 스위스에서 쌀밥 한 끼 먹으려면 2만 원이 우습다. 그런데 하루를 묶는 숙박비가 고작 만 오천 원이라니! 물론 호스텔이지만, 스위스에선 어느 곳에서도 이런 가격에 호스텔을 얻을 수가 없다. 만 오천 원이라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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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랬다. 안에 들어서자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그 가격은 아주 '후한' 가격이었다. 이 호스텔 정말 최최최악이다. 최악. 이런 호스텔은 난생처음이다.


더도 덜도 딱 요런 모양이다. 땀이 가득한 여행객들과 ^^ 이렇게 살을 맞대고 잔다. 유럽에 이런 호스텔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정확히 내 군대 시절 쓰던 침상이 생각났다.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유럽에서 이런 숙소라니... 이불은 각자 주니 그것이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지 심히 고민스럽다. 개인 락커도 없다. 자기 머리맡에 자기 짐을 놓아야 한단다. 심지어 씻는 곳도 지하다. 하... 따뜻한 물은 ^^ 기대도 안 했다. 2000m 고지니... 그러려니 해야지. 돈 받고 군생활을 했던 곳을 돈 내고 쓰려니 괜스레 손해 보는 느낌이다. 오늘은 모든 걸 제치고 잠에 든다. 얼른 내일이 되어 이곳을 탈출해야지.





사실 나는 천문학도다. 천문학과에 재학하며 어릴 적부터 별을 보며 꿈을 키워온 나름 꿈꾸는 청년이다. 대자연의 스위스라니, 밤하늘이 궁금해 미치겠다. 해발 2000m를 자전거로 오르느라 다리가 천근만근 무겁지만 평생에 한 번일지도 모르는 하늘을 보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산 위에서 별을 보겠단 일념에 기어코 네 시간쯤 자다 일어났다. 몸이 '뭐하는 짓이냐'며 욕을 하는 듯하다. 별은커녕 아침도 고사하고 양껏 휴식을 주어도 되겠만 오늘만은 이성이 본능을 이겼다. 꿈이 현실을 넘었다. 시큰한 무릎을 부여잡고 한발 한발 숙소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고개를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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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숨이 확 막힌다. 어이가 없어 나오는 헛웃음. 은하수다. 은하수가 보인다. 여름철 대삼각형 사이로 지나가는 은하수. 천문학도지만 생에 처음 보는 은하수에 너무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은하수 사진만 수 백장은 봤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것들은 사진과 달랐다. 우주 그 자체다. 너무 아름답고 예쁘다. 예쁘다. 너무 예쁘다. 그냥 아름답다. 굉장히 많은 수식어가 생각나지만, 이들을 다 포용할 수 있는 단어는 그저 진심이 담긴 '아름답다'뿐이다.


평생 이 하늘을 기억할 것이다.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별로 가득 찬 하늘, 흐르는 은하수, 달빛에 비친 웅장한 산들, 홀로 서있는 나. 이 아름다움을 누구와 나눌 수 있다면, 이 장면을 사진으로 그대로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다. 하지만 행복하다. 그저 행복하다.


순간 최악이었던 호스텔은, 인생 최고의 호스텔로 변한다. 5성급 호텔에 묵어 보진 못했지만,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여행지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그곳에서 겪게 될 추억이 그곳의 평가를 대신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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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요흐 역 관측소에서 한방 ^^ 필자가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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