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발과 ASD, 둘 다 속하기 어려운 아스퍼거

by 다른우주

도제, 대화법..

가정에서 모와 아이가 함께 시간을 보내면,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 부모와 놀고 대화하며, 함께 속한 세상의 규칙과 문화를 연스럽게 배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회성 치료의 핵심이다.


집에서 엄마가 해줄 수 없는 것은 또래와의 핑퐁이다. 역할놀이를 통해 여러 캐릭터를 지닌 친구 역할을 해주어도 분명 한계가 있다.

기관에서 생활하는 동안 여러 아이들 틈에서 규칙과 제한선을 배우겠지만, 상호작용의 질을 늘리려면 한두 명의 친구와 관계를 오래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 부부는 용기를 내어 자폐 가족 모임에 참석했다.

첫 모임은 고기능만 따로 모인 곳이 아닌, '자폐'라는 대분류 아래 묶인 큰 집단이었다.

모임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과 행동은 하나하나 다 너무나도 달랐다. 자폐 별자리란 말이 딱이구나 싶었다.

무발화부터 말을 너무 잘하는 아이, 움직임이 큰 아이부터 한 곳에 가만히 있기만 아이, 겁이 많은 아이와 겁이 없는 아이, 자꾸 때리고 다니는 아이와 맞아도 반응 없는 아이...


나에게는 처음으로 '집 밖에서 보이는' 아이의 이상한 말투와 행동이 신경 쓰이지 않는, 그런 편안한 날이었다.


그런데 우주는 그곳에서 다른 의미로 튀는 아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 모인 아이들 중에서는 눈에 띄게 기능이 좋았기에....


지나고 알았다.

너무 행복한 날이었지만, 모두가 내 맘 같지는 않았음을..


오프라인 모임 이후, 단톡에서 말을 주의해야 했다.

당시 우주의 기관 선택을 고민하다 질문을 올리니, 오프에서 만난 중증 아이의 엄마가 답을 했다.

"왜 걱정을 해요? 우주는 잘하잖아요. 말도 잘하고."

"나는 말도 못 하는 우리 00 이가 더 걱정인데?"

나는 글을 썼다 지웠다 했다..

이후로도 위로를 건네거나, 공감을 나누기는 어려웠다.

'더' 힘든 아이들이 있었기에...

'채팅방 조용히 나가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후에는 #에 '고기능', '아스퍼거'가 들어간 곳에 참여하게 되었고, 우주와 주기적으로 만나는 비슷한 asd 친구가 생겼다. 서로 투명인간 취급하던 단계에서 서로를 의식은 하는 단계, 이제는 인사까지는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두 가족은 장기 전이라 생각하기에, 둘을 억지로 붙여놓지는 않는다.

아쉬운 점은 거리가 멀어 자주 볼 수는 없다는 것...


하원 후, 정발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며, 부모들은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기도 한다.

우주는 놀이터에 친구들이 많으면, 애초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엄마인 내가 우주의 베프이다.


정상 발달을 보이는 아이들과 오랜 친구관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아마 우주에게는 최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나의 욕심일 수 있다.

아이가 1년간 기관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많은 엄마들을 사귀었지만, 아이는 친한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또래'에게 무관심하다.

우주는 올해 어린이집 장애통합반으로의 입소를 앞두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사회성 치료 센터에서도 '짝' 친구를 찾고 있다.


'짝'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비슷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고 한다.

상대가 너무 잘하면 비교하여 우울해지고, 상대가 너무 못하면 우리 아이가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나만 괜찮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어렵다.


아이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인지, 정발 아이들의 부모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


정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도 아이의 친구 관계는 정말 중요한 사안이다.

애초에 '친구 풀(pool)'을 선별하려는 부모의 심리가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좀 더 배울 것이 있는 친구와 만나길 바란다. 아이의 친구가 나쁜 말을 쓰지 않길 기대한다. 우리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이면, 아이의 친구 탓을 할지도 모른다.


아이는 친구를 만날 때, 즐거우면 된다.


세상은 부모가 보는 '더러움'과 '깨끗함'이 공존하는 곳이다. 아이에게 '깨끗함'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나라고 모르겠는가.

허구지만, '비질란테'나 '데스노트'가 보여주듯이, 도덕적 경계가 확실한 세상 또한 아니다. 세상에 흑백이 존재하는 한, 아이는 회색의 세상을 직접 경험해야 한다.


아이는 부모의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부모가 자신에게 직접 하는 말뿐 아니라, 은연중에 드러내는 말투와 행동까지도.

아이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늦은 일탈보다 빠른 일탈이 나을 수도 있다.

부모가 '바라는' 모습이 무엇이든, 강요할 수는 없다.

아이가 '스스로' 옳은 판단할 수 있도록, 아이의 내면이 단단해지도록, 지원해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의 줄기에 주사기로 물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뻗어있는 토양에 물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단순하지 않기에...

이론보다 실천이 복잡하고 어렵다.


일반 아이들에게도 어려운 '사회성'을 asd 아이에게 알려줘야 한다니.

그게 내 아이라니, 막막하기도 하다.

하지만, 비교할 필요도, 비교할 대상도 없다. 우주만 보면 된다.

어제보다 성장한 오늘에 감사하며, 내일을 위해 행복을 쌓을 것이다.


이전 07화엄마의 정신과 상담과 약 복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