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감은 내 아이가 자폐라서 생긴 것은 아니다.
이미 한참이나 오래전부터 이어진 불안, 강박, 그리고 불면이 내 삶에 큰 줄기였다.
삶에 미련은 없었지만, 죽을 용기 또한 없었다.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걸 극히 두려워했고,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했으며, 사람을 잘 믿지 못했다.
게임에 중독되어 매달 현질에 몇백만 원을 소비하기도 했다.
우울을 극복한 것은 아니지만, 게임 중독을 벗어난 것에 큰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게임에 더는 흥미가 없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공부가 재밌었고, 똑똑하신 아버지를 닮아 조금만 공부해도 성적이 잘 나온 덕에, 이후 삶이 잘 풀린 듯 착각하며 살게 되었다.
하지만 늘 사람이 힘들었다.
공허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우주의 자폐를 알고 충격을 받았다.
정신의학과는 나에게 사이비였다.
'내 정신을 누가 고쳐? 스스로 고쳐야지.'
오만했다.
타인에게 하소연하여 위로받는 타입도 아니었다.
그런 내가 정신과에 첫 문을 두드린 것은 다른 이유였다.
"우주가 asd가 아니라 adhd였으면 좋겠다.
adhd는 유전이라던데, (남편은 절대 아닌 것 같으니) 내가 혹시? 검사라도 받아보자."
이런 의도였다.
실제로 미취학까지는 asd와 adhd의 모습이 유사한 부분이 많아, asd 단톡에 속한 많은 엄마들이 아이가 단순 adhd이기를 기대한다.
asd는 근본적으로 약물 치료가 불가 하지만, adhd는 약물 치료가 꽤 효과적인 편이다.
슬프게도 asd가 adhd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보다 먼저였던 엄마의 정신과 초진.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재진부터는 약 처방 위주라 5분 안에 끝났지만, 첫 진료는 긴 상담으로 1시간이나 이어졌다.
여러 장의 설문을 미리 작성하고, 순서를 기다린 후 상담이 시작되었다.
의사는 본론부터 말했다.
"00 씨는 절대 adhd가 아닙니다. CAT 검사(주의력 검사)를 받을 필요도 없어요.
불안과 강박 점수가 높은데, 어린 시절 학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경험이 원인으로 보여요."
그리고 정색했다.
"당신은 보호받았어야 해요. 스스로 맞아도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맞았어야 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어요."
학창 시절, 아니 성인이 되어서도, 난 타인에게 내 가족의 욕을 한 적이 없다. 내 얼굴에 침 뱉기니까.
난 온실에서 자란 밝은 꽃인척 했다.
어디 가서 힘든 척을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건 돈이 아니었다.
돈이 부족한 게 아니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못 먹고 못 자는 삶을 사는 이도 많으니까.
(다른 이유로 불면이 있었지만..)
생각의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그래도 어느 순간 얕고 짧게 잠들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꾼 꿈의 내용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꿈이 아니라 생생한 상상 같았다.
괴물이 쫓아오고, 살인자가 쫓아오고, 어둠이 쫓아왔다. 마지막엔 늘 잡혀 죽음과 동시에 눈이 떠졌다.
하늘을 날다 추락하는 꿈, 전쟁 상황에 고립되는 꿈도 자주 꾸었다.
삶이 허무하고, 공허했다.
친구들이 연예인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죽음을 고민했다.
나는 내가 왜 우울한지, 그 이유를 얕은 철학에서 찾았다.
건강한 엄마를 두었음에도 '엄마가 죽으면 어쩌지? 그럼 난 어떡하지?' 이런 고민을 매일 했기에,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줄 알았다.
멋쩍게 웃으며
"제가 맞을 짓을 하긴 했어요."라고 하자
의사는 정색했다.
그리고 경험을 재해석하도록 도왔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지인 중에 5살 이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나는 또렷이 기억나는데..
울면서 도와달라고 뻗는 내 작은 손이..
엄마가 된 나는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우물 밖으로 빠져나온 덕에 내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약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초기 처방보다 약의 종류도 줄고, 용량도 줄었다.
부모님을 원망하며 치유한 것은 아니다.
내 과거를 들여다보며 지금의 나를 이해한 것이다.
나는 내 부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편의 소설로도 쓸 수 있는, 그 슬프고도 험한 삶의 굴곡을.
그럼에도 그들은 잘할 수 있었다.
내가 우주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처럼.
우주는 엄마인 내가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정신과적 문제도 감기처럼 다루게 되었다.
우주는 뇌의 조직 방식이 다수의 일반인(신경전형인)과는 다르다.
우주가 틀리고 우리가 옳은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기본 틀은 우주의 뇌가 고장난 것으로 간주한다.
엄마인 나는, 나와 같은 전형인들이 구축한 그 틀을 어렵지 않게 해석한다.
운이 좋게도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그럼에도 어둠 속에 살았다.
우주는 그럼에도 빛을 보며 살 수 있다.
내가 방향을 잡아 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