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D 아이가 엄마에게 준 선물

by 다른우주

우주를 낳고 산후 우울증을 겪었다.

자폐라는 건 상상도 못 하던, 우주가 생후 한 달도 안 되던 때다.

남편은 그런 내가 산책을 다녀올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산책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에도 나는 울고 있었다.

무서웠다.

너무나 작고 여린 아이를, 내가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데, 지켜주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후회되는데 되돌릴 수 없었다. 너무 큰 일을 저질러버린 것 같았다. 이럴 줄 몰랐다.

이렇게까지 책임이 무겁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내가 사고라도 나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

삶에 미련 따위 없었는데, 죽음이 두려워졌다. 부담만 가득한 삶의 족쇄에 묶인 기분이었다.


이후 '뉴스'는 나의 안을 더욱 자극했다.

기후, 환경, 사회 문제, 전쟁까지... 부정적 미래를 토로하는 기사를 보면 죄책감에 어깨가 짓눌렸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허락도 없이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너무 슬펐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예전에는 관심도 없던 이들에 대한 기사가 내 손을 떨게 하고, 내 심장을 어짰다.

제목만 봐도 눈물이 어졌다.

정인이를 떠올리면 분노가 치밀어 내장이 뒤틀리고 구역질이 날만큼 고통스러다.


정신뿐 아니라 몸도 지쳐갔다.

아이에게 세균이 옮을까, 아이가 화학물질을 먹을까 싶어 계속 물건을 닦고 매일 바닥을 닦았다. 설거지가 끝난 젖병은 늘 생수로 다시 헹궜다. 손은 너무 자주 씻어 부르트고 피가 나는데, 로션도 바르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잘 때면, 매일 무언가를 샀다.

아이에게 필요한 생필품 외에도 장난감, 교구, 책 등이었다. 한참이나 후에 쓸 것 같은 물건도, 강박처럼 사들였다.

막상 우주는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공기청정기, 변기, 월패드, 리모컨.... 이런 것들을 좋아했으니까...

결국 사들인 물건은 아파트 단톡에 나눔글로 올라가곤 했다.


여리고 말도 못 하는 아이를 학대할까 무서워 기관에도 보내지 못했다. 우주가 "자신의 경험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야 했다.


여러 불안과 걱정에도 아이는 나에게 행복을 주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감정과 느낌이었다. 이가 날 보고 미소만 지어줘도 세상을 다 가진 듯했으니까.


아이를 낳기 전, 해외여행에 더 이상 감흥이 없었고, 친구와 놀러 간 스위스에서는 피곤하다며 호텔에서 잠만 자기도 했다.

그런 내가 지금은 근교만 놀러 가도 설레고 새롭다. 우주와 함께 할 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벌써 즐겁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 숨 쉬는 매일이 지겨웠고, 늘 웃으며 인사해야 하는 사람들, 같은 공간에서 계속 봐야 하는 사람들,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나에게 최고의 행복과 극한의 슬픔을 준다. 삶이 다채워졌다.


처음 아이의 asd를 확신했을 때 충격이긴 했다. 아이에게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핸디캡이 있음을 알았으니까.

그럼에도 진단이 바뀐 것이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우주의 특성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아이는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안개가 걷힌 듯 맑아졌다.


asd의 신경다양성이 신경전형인보다 능력이 부족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형인이 다수이기에 그들이 만든 룰을 따르기에 어려움이 있을 뿐이지..

같은 전형인 내에서도 힘듦은 존재한다.

혼자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아이가 수능 성적에 맞춰 협력적으로 일해야 하는 학과를 택하거나, 창의력이 뛰어난 아이가 반복 업무를 하는 직종을 택하거나 한다면 말이다.


아이의 asd를 깨닫기 전까지, 나는 아이에 대한 과한 걱정과 불안으로 남들이 한다는 건 다 해댔다.

놀이 교육으로 kci 논문 써놓고, 언행불일치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길이 다를 뿐 육아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주 혼자 다른 길을 걸어 튀어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행여 무시받을 일이라면 더더욱...

내 머릿속은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늘 걱정과 불안을 안고 있었다.

나의 주관은 주변에 휘둘린 지 오래였다.


영어유치원?

변질되기 전 나의 육아관은 아이가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이었다. 자연에서 맘껏 뒹굴고 뛰어놀며, 스스로 호기심을 느낀 데서 배움을 시작하길 바랐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면 말이다.


"언니, 정신 차려요. 여기 초등학교에 영유 안 나온 애들 없어요. 영유 안 나오면 그룹에도 낄 수 없어요. 친구도 못 만들어요."


우주가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길 바랐던 나는 자연스레 영어유치원을 준비했다


여름철 폭염은 유난히 길었고, 겨울엔 기온이 좋으면 공기질이 나빴다. 밖에서 매일 뛰어놀다 되려 건강을 잃을까 걱정되었다.


나는 돈을 써댔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쇼핑을 해댔다.

걱정과 불안을 돈으로 해결하려 했으며, 아이의 경험을 돈으로 샀다.

1시간에 3-4만 원 정도면 미술, 체육, 영어, 심지어 실내 자연까지.. 온갖 체험이 가능했다.

우주 명의로 주식 계좌도 개설하여 증여 신고까지 마쳤다.


아이의 전집만 산 것이 아니라 이임숙, 조선미, 이나미 저서 등 온갖 육아서적도 사고, 밀리의 서재도 구독하여 틈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댔다.


그럼에도 만족이란 없었다.

늘 부족했고 불안했다.

그러던 중에 아이의 ASD를 알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아이가 100명 중 1등에 들길 바랐다면, 지금은 100명 중 그래도 꼴등은 되지 않도록 달려야 하는 줄 알았다.

짧은 순간 좌절했다.


똑똑하다고 부러움과 질투를 사던 아이가 장애를 지니고 있음을 밝히면, 주변에서 겉으로는 걱정해도 속으로는 좋아할 것만 같았다.

주위를 자꾸 의식하다 보니 피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아이를 위한 줄로만 알았던 정신과 상담을 통해 엄마인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불안'을 메타인지로 다루게 되면서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달라졌다.

가식은 버리고 진심을 드러내면서 인간관계에서 고수하던 '을'의 입장은 버리고 미움받을 용기를 갖게 되었다.

약의 도움도 컸다.


예전에는 무나도 먼 미래,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느라 현재를 보지 못했다.

영유에서 국제학교 졸업까지 총 얼마가 들 것인가를 계산하고, 그게 끝이 아닌 부수적인 교육비에 골치가 아팠다.


이제 아이는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고기능이기에 국가에서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대처 상황이 백만 가지라면 백만 가지를 다 암기하면서 신경전형인들이 만든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학습보다 사회성이 더 중요하다. 사회성 없이 쌓은 지식은 모래 위에 세운 누각과 같으니까.


20년 사이 유비쿼터스는 우리의 삶과 문화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지금은 다들 AI 맞춰 아이들을 교육하려 애쓴다.


AI 시대에 무엇이 유리할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나름의 많은 예견들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성공하고자 할수록 ai의 대체 표적이 될 것은 확실하다. 꿈이 클수록 좌절도 클 것이다. 삶의 목표가 어떤 '거대한 성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음악을 전공한 학생이 이름을 날리지 못한다고 해서, 1등을 한 적이 없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그저 그런 위치라도 '자기가 만족하면' 된다. 그만큼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이 중요해진다.


아이의 미래를 계산기로 두들길 필요는 없다.

시간이 흘러 내 마음은 훨씬 홀가분해졌다. 더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지금, 여기에서,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면 된다.

답이 이렇게 간단한 줄... 정말 몰라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니까.


집에 널브러진 쓸데없는 것들을 치우자 넓은 공간이 생겼다. 그 공간에서 우주와 나는 서로 놀고 교감하면서 행복을 나누고 가치를 공유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대도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할 것이다.

ASD를 지닌 우주와 함께 하는 삶을.

나는 예전보다 지금 더 행복하다.

우주 덕분에..

우주는 나에게 다른 세상을 선물해 주었다.


이전 08화정발과 ASD, 둘 다 속하기 어려운 아스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