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행복이 아닌 우리의 행복

by 다른우주

우리 부부는 우주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주변 ASD 부모들을 보면 다들 엄청난 노력과 희생을 한다. 스펙트럼이라 다 다르지만, 증 부모의 마음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우주는 기능이 좋음에서 오는 다른 고충이 있다.

자신이 '다름을 인지'하기에 오는 우울이다. 아직은 어려서 '우울'보다는 '공포'와 '불안'이 더 크게 나타난다.

전형인이 만든 사회의 룰을 자신의 인지만으로 자연스레 파악하는 것이 너무 어렵기에 이미 알고 있는 것, 통제가능한 것에 집착한다.

우주는 하루에도 수십 번 똑같은 질문을 던지며, 답을 들으려 한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게 맞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우주는 사회적 상황에서 자기가 아는 것에는 반응을 한다. 이미 배운 대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하지만 배운 적 없는 상황을 마주하면 회피 반응을 보인다. 반향어를 반복하며 자기만의 세계로 숨어버린다.


'미안해'를 배울 때, 연습 상황에서 자신이 피해를 입어도 상대에게 "미안해."를 외치던 아이다.

그럼 나는 조건 분기를 알려준다.

컴퓨터처럼 알고리즘을 입력하는 것이다.

상대가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와 네가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가 다름을..

상대가 미안하다고 하면 '괜찮아.'라고 해야 할 때가 있지만, 상대가 '일부러' 너를 괴롭힌 거라면 받아 줄 필요가 없음을...

아이는 묻는다. '몇 번'하면 일부러 한 거야?

일상에서 아이 자신의 행동을 통해 알려준다.

방금은 실수였지? 방금은 알고도 했지. 일부러 그랬잖아.


아직은 어려서 덜하지만, 친구들 사이 우주의 모습은 정말 짠하다. 마음이 아려온다.

아이에게 '친구'는 예상도 통제도 너무 어려운 존재이기에 혼자가 좋다며 자꾸 피한다.

그러다 보면 갭이 더욱 커질 것이기에 힘들어도 마주해야 한다.

'밖'에 나가면 친구가 있으니, '밖'에 나가는 것을 매일 거부한다. 그럼 아이가 좋아하는 것, 통제가능한 것으로 설득하여 이끈다. 힘들게 나가도 10분이면 돌아오지만 그것에 만족한다.


단톡에서 선배 부모의 사례를 매일 마주한다. 서로 경험담을 주고받고 조언을 나누는 것을 보며 감사하게도 마음 단련할 수 있다.


우주는 우리 부부에게 늘 희망과 행복을 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우주 덕에 웃는다. 아이가 안쓰럽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불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힘들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모든 부모들이 힘들다. 우리만 특수하게 더 힘든 것은 아니다.


아이의 행복이 곧 우리의 행복이다. 이건 모든 부모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 때문에 참고 희생하는 것에 스트레스가 없다면 그건 선인이거나 거짓말이다.


우리는 부모로서의 삶뿐 아니라 자신의 삶도 살아야 한다.

아이의 행복이 곧 내 행복이지만, 별개의 행복 또한 필요하다. 그래야 아이와 함께 장기전에 오래 힘을 낼 수 있고, 더 즐겁게 놀아줄 수 있다.


아이도 알아야 한다.

부모도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참고 기다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부모가 아이와 일상을 함께하는 것이 분명 중요하지만, 하루 종일 아이 곁에 붙어있을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예전 우리 부모세대는 (아니 나의 부모는) 거의 방치에 가깝게 나를 키웠, 나는 겉보기엔 나름 잘 자랐다.

물론 그건 절대 옳지 않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시간'이나 '심심한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세 돌도 안된 아기를 보고 엄마가 "언제 혼자 놀아요?"라고 묻는다면, 그건 좀 가혹하지만..

사회성이 자라는 세돌 이후에는 조금씩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모와 실컷 상호작용을 하고, 세상을 맘껏 탐색하고 나면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사고를 확장할 시간이 필요하다.

'심심해서' 스스로 재미를 찾는 시간도 필요하다.


지인 아이 중에 7살이 되었는데도 아빠가 너무너무 잘 놀아줘서 친구랑 노는 것을 거부하는 아이도 있다.

(물론 잘 놀아준 것이 잘못은 아니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ASD 아이들은 특히 스스로 놀이를 탐색할 줄 모르면 감각추구에 빠져들 수 있다.

우주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이제는 제법 혼자 있을 수 있다.

엄마가 읽어주었던 책을 혼자 다시 읽기도 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던, 관심 없던 놀잇감을 색하기도 한다.

조용히 관찰한 것을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분류했다가 설명하기도 한다.

음악 감상도 좋아한다.


육아에 정답은 없지만,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한 것은 당연하다.

과거의 나는 아이가 원하면 밥도 굶고 옆에 있어주었다. 너무 배고프면 대충 때우거나 급하게 먹기도 했다.

지금은 여유를 갖고 천천히 먹는다. 차까지 한 잔 마신다.

처음에 아이는 그런 엄마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엄마는 당연히 자기만을 위한 존재였다.

지금은 먼저 엄마를 배려해주기도 한다.

우러나온 느낌보다는 배운 대로 하는 듯하지만, 그게 어디인가.

엄마가 자신을 소중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이는 그런 가치를 일상에서 보고 배운다.


더 크게 보면,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처럼 나만의 시간이 늘었다. 예전에는 아이가 잠든 후에도 (그게 무엇이든) 아이를 위한 준비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그만큼 아이의 식단이 부실해졌을 수는 있다.

미리 준비하지 않아 엄마가 요리하는 동안 아이가 오래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 시간만큼 아이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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