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D 가족들의 잠 못 드는 밤
3월이 시작되고, 우리 아이들의 단톡방은 다른 날보다 더욱 불타오른다.
등원 전 부모들은 긴장과 설렘,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고, 등원 날 아침, 아이들의 등원 거부로 진땀을 뺀다.
어린이집 장애통합반와 특교자 유치원 모두 첫 등원이 대부분 5세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우주처럼 22년생 asd 아이를 둔 나의 동지들은 등원 후 다들 우울감을 토로했다.
다시 한번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고, 다수의 정발 아이들과는 다른 길로 들어서는 모습을 짠하게 지켜보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래선지 겨우 9일 전 힘들게 끊은 우울증 약에 자꾸 손이 가는 걸 참아야 했다. 부작용으로 brain zap을 아직 겪고 있기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담임 선생님이 어떤 분인가에 따라 아이의 1년이 결정되기에 부모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교사를 판단하고자 정보를 모으기도 한다.
우주의 선생님은, 이미 1년을 겪은 선배 어머니께서 극찬을 하셨고, OT에서의 인상 또한 좋아 큰 걱정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담임교사의 자질을 의심하고 지도 방식을 지적하는 글들이 보인다.
전년도 담임교사와 비교, 형제자매의 담임교사와 비교, 옆반이나 친구반, 다른 기관과 비교...
교사의 표정이나 말투가 무뚝뚝한 경우, 처음부터 선을 긋는 경우, 뒷담화의 강도는 조금 세진다.
다정함을 바라는 마음은 이해한다.
게다가 앞에서 하지 못할 말이고, 문제 삼으려는 의도는 없으며, 그저 걱정과 불안에 위로와 공감을 받고자 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국 힘든 건 그 말을 하는 자신이다.
교사가 엄마에게 다정하지만 아이는 귀찮아할 수 있고, 엄마에겐 차갑지만 아이에게는 상냥할 수 있다.
예전에 어떤 원장 교사의 인터뷰를 보았다.
"엄마들 사이에서 정말 인기 있는 선생님이 있다. 내년에도 자기 아이를 맡아달라는 요구가 많은 선생님인데, 그 사람이 아이들을 교묘하게 학대한다."
원장으로서 딜레마에 빠진 듯해 보였다.
어떤 사람을 단정하여 판단한다는 건 정말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만약 '학대' 흔적이 보이고 아이의 상태가 나빠진다면 당연히 교사를 의심하고 아이를 보호하는 게 맞지만, 그전부터 그런 걱정이 디폴트 값이 되면, 삶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물론 엄마가 걱정하는 것이 극단적으로 '학대'는 아닐 것이다.
그저 우리 아이가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까 봐, 교사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그래서 우리 아이가 상처를 입을까 봐, 그 정도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 걱정은 의미가 없다.
교사도 사람이다. 완벽할 수 없다.
어떤 점에서는 다른 교사보다 잘할 것이고, 어떤 점에서는 못할 것이다. 다 잘할지도, 아님 전반적으로 미숙할 수도 있다.
인생은 운칠기삼이라고 했던가.
세상은 본래 공평하지 않다. 아니, 공평함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것을 받아들이자.
이미 알고 있고, 그것이 진리이다. 아이들이 그것을 깨닫는다고 해서 슬퍼하지 말자.
우리는 아이가 그것을 깨닫고는 '좌절하지 않도록' 도와주면 된다.
“사람마다 가진 상황이 다르고, 모두가 똑같이 되지는 않아. 중요한 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거야.”
'세상'에 공평함을 기대하지 말자.
그 기대가 크면 당연히 실망도 크다.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에 기대자. 아이가 상처를 입더라도 금방 털어낼 수 있도록,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돕자.
내면이 단단해지도록 옆에서 지지해 주면 된다.
그 과정에서 '건전하게' 배우고 깨닫는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자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