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상처와 고독한 회복

영화 <세계의 주인> 리뷰

by 김태혁

반바지를 입은 아이가 천방지축 운동장을 뛰어다니다가 크게 넘어진다. 양 무릎, 오른 팔꿈치, 왼 손바닥에 피가 흥건하다. 표피가 너덜너덜할 지경이다. 아이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깜짝 놀란 부모가 아이에게 다가와 "아이고, 많이 다쳤네. 괜찮아?"라고 하자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부모의 존재에 안도감을 느끼며 마음 놓고 울어도 괜찮겠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아니, 본능적으로 그렇게 느낀다.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나 혼자가 아니라서 참 다행이야.' 그런데 이내 아이는 곧 깨닫는다. 자신의 몸에 생긴 상처는 결국 자신이 관리하고 치유해야 하고, 부모가 전해줄 수 있는 것은 위로의 말과 마데카솔(혹은 후시딘)뿐이라는 사실을.

몸에 난 상처는 타인의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타인이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타인은 내 마음의 고통을 온전히 감각할 수 없다. 특히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타인이라면 아무리 공감 능력이 탁월하더라도 나의 상처가 도대체 얼마나 깊고 넓은지 헤아리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각자의 고유한 상처는 각자의 고독한 회복 과정을 통해서만 아물 수 있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주인공 '주인'(서수빈 배우)이 삭여 온, 삭이고 있는, 삭여야 할 마음의 상처와 흉터를 스크린 밖의 관객이 함께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스크린의 경계를 넘어 이토록 여실히 감정이 전달될 수 있는 것은 정교하게 쌓아 올린 레고 블록처럼 견고한 이야기의 개연성, 윤가은 감독의 섬세한 연출, 주조연 배우들의 적정한 연기, 군더더기 없이 정확한 카메라워크 덕분인 듯하다. 특히 자동 세차장 신은 감히 올해의 롱테이크라고 말하고 싶다. 필자에겐 <세계의 주인>이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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