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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혁 Nov 05. 2016

[절찬 상영중] 닥터 스트레인지

닥터 스트레인지? 닥터 마인드!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것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이것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김지운 감독, 이병헌 주연의 영화 <달콤한 인생> 도입부는 이 이야기를 읊조리는 이병현의 내레이션과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가 수놓는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만들어 낸다'는 뜻을 가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다. 

'마음'을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고, 생각을 관할하는 시스템'으로 정의해 보자. 그러면 '모든 것은 결국 마음에 달려 있다'는 말이 분명히 와 닿는다. 동일한 외부 세계라 하더라도 각자의 '마음'에 따라 충분히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새의 지저귐은 행복한 연인에게는 사랑의 멜로디로, 이별한 사람에게는 슬픈 발라드로 들릴 것이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는 우리가 마음만 제대로 다스리면 얼마나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교통사고로 두 손의 신경이 크게 손상된 신경외과 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그는 치료법을 찾아 네팔의 카트만두에 있는 '카마르-타지'로 간다. 그곳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스승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을 만나 엄청난 각성을 한다. 우리가 인식하고 존재할 수 있는 현실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즉 세상은 유니버스가 아니라 '멀티버스'라는 것이다. 

각성 후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예전처럼 하나가 아니리니, 깨달음을 얻어 수련한 자는 수많은 차원(디멘션)과 우주를 넘나들 수 있다. 깨닫지 못한 자가 하나의 현실만 있다고 믿을 때, 깨달은 자는 진짜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세계관과 철학의 토대가 <매트릭스>와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면, <닥터 스트레인지>의 비주얼은 다분히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과 닮았다. <인셉션>은 꿈과 생시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호접지몽' 고사를 상기시키며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 진짜인지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며 여러 번 기시감을 느낀 것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듯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등장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기존의 물리 법칙들을 파괴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흥미로운 우주가 될 것이다.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는 최첨단 과학 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영웅, 아이언맨에게 비과학적 신비주의 신봉자로 폄하당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익숙한 인식의 틀을 깨부수는 닥터 스트레인지, 아니 닥터 마인드가 있어야만 아이언맨이 이끄는 어벤져스는 최강의 적과 상대할 수 있다. 과학과 비과학이 서로를 인정해야만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니, 퍽 낭만적인 전개다. 


* 부록 : 2016년 11월 4일의 일기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았다. 

4D 상영관의 유난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인상적인 대사는 선명히 들렸다.

그것은 주로 틸다 스윈턴이 연기한

'에인션트 원'의 입에서 나왔다.  


"죽음은 삶의 의미를 결정하지"


이런 여러 철학적 질문들 가운데

"무엇이 현실인가?"

라는 문장이 또렷했다.


영화에서 자유자재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마법사들의 모습이, 

과거로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넘어온 것처럼 

한국 사회를 전근대식으로 작살낸 인물들과 묘하게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정말 스트레인지, 에인션트 원.

(슬링 링 빼앗고 미러 디멘션 안에 가두고 싶다)



*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예고편

https://youtu.be/xNcJ0lIDP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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