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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 상영중] 라라랜드(2016)

꿈과 사랑의 윤회

by 김태혁
시간은 모든 것을 창조하고, 끝내 파괴한다.
광막한 우주에서 오직 시간만이 영원할 수 있다.


시간의 전능함 앞에 우리는 늘 무력하다. 시간은 예술도 좌우한다. 회화, 조소, 문학, 연극, 음악, 무용, 영화 등 다양한 예술 갈래 중에서 연극, 음악, 무용, 영화는 시간성(時間性) 없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장르로서 뮤지컬 영화의 위대함은 바로 연극, 음악, 무용, 영화 등 온갖 시간의 예술을 집대성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뮤지컬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 시간과 끊임없이 겨루는 일일지도 모른다.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 2016)>는 시간과의 혹독한 전쟁에서 승리한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연기, 음악, 춤, 영화적 성취까지 수준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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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라라랜드(La La Land)'는 기막힌 중의적 제목이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를 품은 도시, LA(Los Angeles)와 흥얼거림을 나타내는 의성어 'La La'의 데칼코마니.

영화의 공간적 배경을 드러내면서 뮤지컬 영화임을 암시한다. 멋진 조어다.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 자신의 재즈 철학을 반영한 재즈 라이브 바를 열고 싶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각자의 꿈을 좇아 라라랜드에서 산다. 꿈을 이루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응원해 주며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진다. 맞다. 여기까지는 케케묵은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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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플롯을 가진 이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역시 눈과 귀를 화면에 달라붙게 만드는 춤과 음악이다. 빼어난 안무와 카메라 워크를 바탕으로, 일상적 공간에서 펼쳐지는 춤은 넋을 나가게 하는 오프닝에서부터 탭댄스를 유도한다. 영화 <위플래쉬(Whiplash, 2014)>에서 다미엔 차젤레 감독과 환상적 콤비 플레이를 선보인 저스틴 허위츠(Justin Hurwitz)가 작곡한 음악은 몸에 딱 맞는 수제 양복처럼 영화에 입혀진다.
그런데 낡은 이야기를 가진 이 영화의 '영화적 성취'는 무엇인가? 엠마 스톤과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가 한 축을, 오직 영화에서만 구현 가능한 환상적 비주얼이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라라랜드>는 기우뚱하지 않고, 바로 섰다.
이 영화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엠마 스톤은 혈혈단신 배우 지망생으로서 15세에 할리우드로 건너온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미아'라는 캐릭터에 충분히 녹여냄으로써 캐릭터와 하나가 되었다. 잘생김을 연기하는 배우의 반열에 오른 라이언 고슬링은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 역을 맡기 위해 독하게 피아노 연주를 연습했다고 한다. 그 노력이 흘린 땀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추는 그의 손에서 느껴진다. 그는 뛰어난 가창은 아니지만 진심을 담아 노래한다.

오프닝 크레디트와 요소요소에 자리 잡은 고전 뮤지컬 영화에 대한 오마주, 야외 공간과 세트를 넘나들며 한결 같이 아름다운 미장센, 마법 같은 화면 전환, 철저한 사전 준비와 계산으로 이룩한 롱테이크가 전하는 최상의 미감(美感)... 어쩌면 이 영화는 음악보다 영상이 더 대단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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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의 제목으로. '라라랜드'에서 '랜드'는 땅이다.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관객의 기대를 배반한 전개를 보여준 이 영화의 결말을 고려하면 '랜드'라는 단어는 제법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영화를 보며 환상에 빠질지라도 우리는 결국 현실이라는 땅 위에 발 딛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마무리. 너무나도 영화다운 영화가 제시하는 너무나도 건조한 결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엔딩에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간의 불가역성은 모든 슬픔의 원천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우리는 어김없이 또 슬퍼지고 시간 앞에 무력해진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시간에 맞서 불후의 명작이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미아'와 '세바스찬'은 쉼 없이 별을 향해 손을 뻗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나의, 그래서 우리의 꿈과 사랑은 영속하는 시간 속에서 윤회를 거듭한다.

당신도, 나도, 모두가 미아와 세바스찬이다.



영화 <라라랜드> 예고편

https://youtu.be/Dt5hFexM5BI


'Another Day of Sun' - 영화 <라라랜드> OST

https://youtu.be/lPS2mjlBmTw?list=PLfFHwNSh-aJfAfS4wcugZ-Q6gSQD3ekjU


'City of Stars(Humming)' - 영화 <라라랜드> OST

https://youtu.be/tNXaSc8PGYI?list=PLfFHwNSh-aJfAfS4wcugZ-Q6gSQD3ek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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