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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찬 상영중] 패터슨

쉽게 씌여진 시

by 김태혁

삶과 기억에서 일상성은 곧잘 경시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루하루는 비슷한 일의 반복으로 채워지고, 반복은 필연적으로 지루함을 소환하기 때문일 것이다. 간절히 행복하기를 원하면서, 매일 도돌이표처럼 우리를 찾아오는 생활의 물결을 흘려보내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일상을 무료하게만 느낀다면, 우리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기쁨을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영화 '패터슨'은 이 질문에 아름다운 답을 써 내려간다. 주인공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패터슨'에서 버스 운전사로 일한다. 마치 쌍둥이처럼 주인공의 이름과 거주지가 철자까지 동일한 'PATERSON'이다. 짐 자무쉬 감독은 장난스럽게 여러 쌍둥이들을 단역으로 출연시키기도 한다. 아무리 쌍둥이라 하더라도 살짝 다른 생김새를 가졌듯이 우리의 24시간도 반복과 변주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쌍둥이 모티브는 암시하고 있다.
패터슨은 근무일에는 항상 6시와 6시 반 사이에 일어나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고 출근한다. 승객들의 소소한 잡담이 귓전을 잡아끄는 23번 버스 운전석에 앉아, 그는 작은 도시의 이곳저곳을 누빈다. 일과가 끝나면 어김없이 아내와 저녁을 먹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동네 바에서 맥주 한잔을 한다. 언뜻 봐서는 단조롭기 이를 데 없는 나날들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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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패터슨은 시를 쓴다. 생활 속 작은 발견을 놓치지 않는 그는 일상적 깨달음과 감정을 한 글자, 한 글자 진중하게 쓴다. 그는 자신이 쓴 시를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잘 보여주지 않는다. 당연히 지인들도 그가 어떤 시를 쓰는지 알 턱이 없다. 패터슨은 등단과 출판 같은, 일말의 공명심이라도 결부된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에게 시작(詩作)은 그 자체로 온전하고, 완결성을 갖춘 목적이다. 감동적이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알렉스 퍼거슨 경의 명언을 따르는 양 스마트폰도 쓰지 않는 패터슨은 일상의 모든 것을 예민하게 감각한다. 패터슨의 인생을 차분히 바라보는 동안, 무미건조한 듯한 '오늘 하루'야말로 가장 깊은 창작의 샘이자 시원(始原)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일상과 시 사이의 흐릿해지는 경계, 겹쳐짐, 마침내 일상이 곧 예술이 되는 마법적 순간은 다층적이고 긴 디졸브와 음악의 힘으로 탁월하게 영상화된다.

우리가 시 혹은 예술과 마주하는 순간도 결국 하루 24시간 안에 오롯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삶을 지탱하기 위해 별도의 직업을 유지하면서도 창작에 매진하는 모든 예술가들을 위하여,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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