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우리 뒤통수를 가격하는 방식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자전하는 지구 덕분에 우리는 일출과 일몰이라는 장관을 매일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짧은 주기로 반복되기 때문인지 1월 1일의 산 정상이나 여행 중의 서쪽 바다처럼 특별한 시공간에 있지 않을 때 오래도록 일출과 일몰을 응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해는 언제나 한곳에 머물러 있음으로 인해 오히려 소외당하는 대상일지도 모른다.
일상 속에서 해에 무심한 대다수의 사람과 달리 영화 '썬다운'의 주인공 닐(팀 로스)은 태양을 갈구하는 듯하다. 볕이 좋은 휴양지인 멕시코 아카풀코에 온 여행자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닐의 표정, 말, 행동을 보면서 세상만사를 긍정할 것 같은 여행자 특유의 밝은 에너지를 느끼기는 어렵다. 잠깐씩 희미한 미소를 띄우기도 하지만 많은 시간 동안 그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만을 보여준다. 그런 닐의 얼굴이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영화의 스토리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되뇌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닐 역을 맡은 배우 팀 로스의 호연은 인물의 표정을 곧 플롯으로 승화시킨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후 닐은 기이한 언행을 시작한다. 그는 여권을 호텔에 두고 왔다는 거짓말을 하며 여동생 앨리스(샤를로뜨 갱스부르)와 조카들을 런던으로 먼저 떠나보낸 다음 홀로 남아 멕시코의 바닷가에서 휴가를 이어간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살뜰히 챙기기는커녕 장례식에 불참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아들. 인륜까지 저버리는 듯한 이해하기 힘든 닐의 행동은 결국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연달아 일으키는 시작점이 된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휴가지에서 닐은 매력적인 젊은 여자 베레니세(이아주아 라리오스)와 함께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 수영을 하고, 일광욕을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고, 섹스를 한다. 너무나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지만 불안은 스멀스멀 닐의 현실에 침입하고 스크린 위를 기어 다닌다. 한량처럼 시간을 축내는 닐을 참을 만큼 참아줬다는 듯 인생은 마침내 닐의 뒤통수를 세차게 때리기 시작한다. 갈림길을 불과 50m 앞두고 갑자기 경로를 바꾸라고 지시하는 고장난 내비게이션처럼.
닐은 조용하게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의 마지막 일몰은 어떤 모양과 색으로 기억될까? 부디 평온하기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