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un 21. 2017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가 명작인 이유

Appetizer#94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가 개봉한다는 소식’이 아니라, 이번 영화가 마이클 베이 감독의 마지막 시리즈가 될 것이라는 소식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보도자료에도 ‘파괴지왕’으로 소개되는 위대한 파괴자, 파괴의 장인이다. (물론, 시리즈조차 파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네 편의 시리즈를 통해 엄청난 흥행을 이뤄낸 감독의 업적을 마냥 깎아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마이클 베이는 시리즈 내내 일관된 영상 철학을 보여주며, ‘파괴의 미학’이라는 비평적 접근을 가능케 했다. (‘파괴’의 스펙터클은 <아마겟돈>, <진주만>부터 시작된 일관된 이미지다) 하지만 2014년에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를 보고, 좋은 시기에 떠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었고, <최후의 기사>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최후의 기사>라는 부제처럼 이번 편은 중세 ‘기사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영화의 시공간을 확장한다. 근래 부쩍 자주 보는 아서왕과 멀린이 시리즈에 맞춰 재해석되고, 그들의 신화와 함께 영화는 전개된다. 영국 신화를 모티브로 한 덕에 영국적인 색채가 많이 가미되었는데, 블레넘 궁전, 다우닝 스트리트, 그리고 스톤헨지 등의 공간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외에도 1900년대 초, 세계 대전까지 화면에 담는 등 다양한 시대를 ‘트랜스포머’화 된 이미지로 트랜스폼(transform) 해서 보여준다.


<최후의 기사>는 마지막 연출이라는 사명감 때문인지, 마이클 베이의 파괴 욕구는 정점을 찍는다. 육지, 바다, 하늘 곳곳을 무대로 전투가 펼쳐지는데, 싸울 수 있는 모든 공간에서 파괴의 스펙터클을 펼쳐 보이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질 정도다. 옵티머스 프라임을 중심으로 한 오토봇과 메가트론을 축으로 한 디셉티콘의 이번 전투는 전 시리즈에 등장했던 다수의 캐릭터가 총집합해 다양한 매력을 원 없이 뽐낸다. 그렇게 트랜스포머는 그들의 수장, 파괴지왕 마이클 베이의 마지막 전투를 빛낸다.



엄청난 파괴의 스펙터클만큼 늘어난 상영 시간의 스펙터클(150분), 이젠 새롭지 않은 전투, 신선함을 잃은 로봇들의 변신…. <트랜스포머: 최후의 기사>가 시리즈의 첫 편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룰지는 의문이다. 아니, 객관적으로 봐도 부정적이다. 이 수많은 부정적 요소 속에서도 마이클 베이가 곳곳에 심어둔 유머와 마지막까지 아껴둔 한 방, 그리고 여전히 “I am Optimus Prime”이라는 목소리엔 관객이 열광할 지점을 제공한다. 적어도 <사라진 시대>보다는 괜찮은 영화다. 또한, 마이클 베이가 떠날 시점을 정했다는 그 결심만으로도 <최후의 기사>는 괜찮은 영화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가 떠난다고 했기에 이번 편은 누가 뭐래도 명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셸을 이해하는 몇 가지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