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ul 09. 2017

봉준호의 성취와 상실

Appetizer#100 옥자

올 칸 국제 영화제에서 홍상수‧김민희 커플만큼 뜨거웠던 이슈는 <옥자>였다. <설국열차> 이후 모처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란 점과 함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 제작 영화였다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온라인 송출을 기본으로 하는 업체에서 만든 콘텐츠가 영화제에 초청되는 건 특이한 일이었고, ‘영화’의 기준에 관해 토론이 오갈 정도로 문화/영화 산업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일이었다.


이런 문제는 국내 배급에도 영향을 줬고, <옥자>는 멀티플렉스가 아닌 소수의 관에서만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넷플릭스가 바란 것일 수도 있는데, 관객으로선 <리얼> 같은 영화가 멀티플렉스에 암세포처럼 퍼진 것을 목격하면서 유통/배급의 질서에 대해 무언가 느낀 게 있을 것이다.



봉준호는 <옥자>를 통해, <설국열차>에 이어 대규모 자본으로 작품을 만드는 데 무리 없이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엔 넷플릭스와 손잡으며 미디어 시장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을 펼치기에 좁았던 국내의 영화 시장을 벗어나 세계관을 확장하고, 더 큰 영화를 만들었다. 제작비의 규모와 함께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릴리 콜린스 등 봉준호의 프레임 안에 할리우드 스타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며, 자랑스러운 광경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공간 활용도 돋보인다. <옥자>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연기를 펼치는 건, 어벤져스 영웅들이 활약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옥자>의 촬영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비해 상당히 조용히 진행되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홍보 목적을 위해(그 효과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한국 로케이션을 쓴 것과 달리, <옥자>는 이야기 자체를 소화하기 위한 공간으로 한국이 선택되었다는 걸 뜻한다. 진짜 사람이 살고, 이야기가 있는 공간으로서 한국을 볼 수 있기에 뜻깊은 영화다.



대규모 자본, 할리우드 스타, 한국적 색채의 확장 등 봉준호가 <옥자>로 이룬 것들은 너무도 많다. 하지만 그만큼 잃어버린 것도 있다. 디테일이 살아있기에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색깔과 그만의 영화적 재미가 조금 옅어졌고, 그래서 무언가를 상실한 느낌이다.


<옥자>도 봉준호 감독 특유의 재미와 사회성이 짙게 묻어 있다. 순둥이 옥자를 통해 자본주의의 피폐함을 보여주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스티븐 연 등이 보여주는 깨알 같은 유머도 여전했다. 하지만 <설국열차> 때부터 조금씩, 아기자기한 영화적 재미가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심리를 흔들어 놓던 작은 디테일보다 거대한 볼거리에 집중하는 듯한 인상도 있다.



물론, 어떤 결과물이든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비범하고, 상당히 재미있으며, 늘 관객에게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기에 앞서 아쉬운 점들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적 성취에 관해서도 걱정할 필요도 없고, 그는 더 좋은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그래도 다음 작품엔 그의 특색이 자본보다 더 두드러졌으면 좋겠다고, 한 명의 열렬한 팬으로서 바라며 글을 마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파이더맨의 귀환과 마블 스튜디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