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 히로코에겐 허락되지 않은 공간

영읽남의 벌책부록 - 러브레터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 그리고 그에게서 온 답장. 이들을 연결하고 있는 이 편지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겨울이 되니 어김없이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들려옵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 한국 멜로 영화들의 첫사랑 같은 영화, 그리고 “오겡끼데스까”로 기억되는 영화. 오늘 함께 읽어볼 영화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입니다. 이번 글은 간략한 줄거리 소개를 다룬 ‘리플레이’와, 영화의 미장센을 살펴보는 ‘씬 바이 씬’이라는 코너로 구성해 봤습니다.


REPLAY - 러브레터

<러브레터>는 영화의 제목처럼 편지를 주고받는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로코는 죽은 연인 이츠키를 그리워합니다. 그가 죽은 줄 알면서도, 그리고 그의 옛집이 없어졌다는 걸 알면서도 그 주소로 한 통의 편지를 보내죠. 그리고 놀랍게도 죽은 이츠키로부터 편지가 도착합니다.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던 히로코는 이 편지가 이츠키와 이름이 같던 여자에게서 왔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여자 이츠키에게 연인의 과거를 묻죠.


두 사람의 과거에 관해 듣던 히로코는 한 가지 의심을 하게 되는데요. 자신의 연인이 편지를 보낸 이츠키라는 여자를 좋아했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츠키는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히로코의 직감은 사실로 드러나는데요. 히로코는 이츠키가 어떻게 마음을 표현하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편지에 묘사된 남자 이츠키가 여자 이츠키를 좋아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도착하는 한 권의 책으로부터, 과거의 이츠키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이 두 사람이 보낸 편지의 중심엔 죽은 이츠키가 있습니다. 편지를 보낸 이츠키는 그와의 추억이 몇 가지 있지만, 그의 속마음을 전혀 모르죠. 그에 비해 히로코는 죽은 이츠키를 잘 알지만, 그의 과거에 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히로코가 연인의 과거를 묻는 과정은, 오히려 여자 이츠키가 남자 이츠키를 기억하게 하고, 그 과거의 행동을 히로코가 해석하게끔 유도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넘어 도착한 책엔 이츠키의 진심이 그러져 있었습니다. 그 책은 가장 명확한 러브레터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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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by Scene #1 이와이 슌지의 멜로

<러브레터>에서 보인 몇몇 도구와 공간, 그리고 이와이 슌지의 연출은 일본 멜로 영화의 주요한 특징이 되었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창이 많은 공간을 선호하는데, 영화에서는 창밖에서 빛을 강하게 주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연출은 공간을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만들고, 렌즈에 빛이 들어가면서 서정성이 극대화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실, 도서관 등은 일본 멜로에서 너무도 자주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최근 개봉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도 <러브레터>와 유사한 공간과 도구, 그리고 빛의 연출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러브레터>가 한국 멜로의 첫사랑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러브레터>가 알려진 이후 한국엔 멜로 장르가 붐이었던 시기가 있습니다. 물론, <러브레터>만의 영향은 아니지만, 그 당시 이 영화의 영향력은 꽤 크다고 알려져 있죠. 2000년을 전후로 수많은 멜로 영화가 있었고, 드라마에서도 윤석호 PD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멜로 드라마가 많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겨울연가>를 말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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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by Scene #2 타임 루프

<러브레터>에서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히로코입니다. 그는 이츠키의 과거를 알고 싶었는데, 얄궂게도 그의 첫사랑 같은 인물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과거를 보고 싶은 히로코에게 도착한 편지는 과거로부터 온 편지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츠키와 히로코가 주고받는 편지는 시간을 넘나든다는 느낌을 주죠. 이와 관련해 <러브레터>는 재미있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히로코와 이츠키의 편지 사이에 가장 뚜렷한 차이는 작성하는 도구의 차이입니다. 히로코는 펜으로 편지를 쓰고, 이츠키는 컴퓨터로 편지를 씁니다.


뚜렷한 이 대비는 <러브레터>를 타임 루프 영화처럼 보이게도 합니다. 이 도구의 차이는 인물들이 어떤 시간을 사는 지를 보여줍니다. 손편지를 쓰는 히로코는 과거에 묶여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죽은 이츠키에게 벗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그와 함께한 과거에서 살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에 비해 이츠키는 현재를 사는 인물이죠. 현대의 도구에 잘 적응해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런 걸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도구의 차이는 두 인물이 보내는 편지가 어떤 시간으로 가고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히로코의 손편지는 과거의 도구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쓰는 편지는 과거로 향하는 듯한 느낌을 주죠. 그에 비해 이츠키의 전자 편지는 현대 혹은, 미래의 도구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편지는 미래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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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by Scene #3 경계

히로코는 과거에 집착한다는 것 외에 독특한 행동을 하나 보입니다. 히로코는 이츠키‘들’의 공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과거의 이츠키‘들’이 있던 공간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츠키와 관련 있다고 생각되는 공간에서는 경계에서 발을 멈추죠. 우선, 히로코는 진짜 이츠키의 집이 있던 곳에 갔을 때, 이미 사라진 집이라는 걸 알면서도 문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멈춥니다. 다른 인물들이 터널 안까지 가는 것에 비해 그녀는 그 경계에서 움직이지 못하죠.


편지를 보낸 여자 이츠키의 집에 갔을 때도 히로코는 문 앞에서 서성입니다. 아키바가 쉽게 들어가는 것과는 대비가 되죠. 왜 히로코는 이 경계를 넘지 못하는 걸까요. 어떤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요. 현재의 이츠키 집엔 쉽게 들어가면서 말이죠. 이런 설정은 현재의 이츠키는 자신의 연인이지만, 과거의 이츠키는 자신이 아닌, 여자 이츠키를 사랑한 사람이라고 구분하는 듯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혹은, 과거의 이츠키‘들’의 추억과 사랑이 있는 공간에 히로코가 허락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설정으로 보이기도 하죠.


이츠키의 그림.bmp


Scene by Scene #4 러브레터

영화의 진짜 러브레터가 무엇인지에 관해 의견이 다양할 것 같습니다. 이츠키의 마음이 담긴 수많은 도서카드일 수도 있고, 여자 이츠키가 히로코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도 그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녀들의 편지는 가장 편지다운 형태를 지니고 있죠. 그리고 여자 이츠키는 몰랐겠지만, 그녀가 쓴 이츠키의 기록은 남자 이츠키의 과묵한 사랑을 기록한 글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간엔 하얀 눈을 보면 생각나는 영화, 그리고 겨울이면 한 번쯤 재개봉 하는 영화 <러브레터>를 읽어 봤습니다. 지난 시간,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이어 일본 멜로 영화를 연이어 읽었는데요. 당분간 이 장르를 더 살펴볼 예정입니다. 혹시나 보고 싶은 영화를 알려주시면, 참고해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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