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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Apr 19. 2018

[달세계 여행] 필름에 꿈을 새긴 예술가

조르주 멜리에스, 그리고 극영화의 시작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누구야?” 영화의 탄생 이후 많은 명작이 있었고, 그 영화를 연출한 많은 거장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으면 꽤 오래 고민한다. 잠깐 사이에도 데이비드 핀처, 클린트 이스트우드, 박찬욱, 봉준호 등 수많은 이름이 떠오른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누구야?
<달세계 여행>에 관한 잡다한 지식
영화를 꿈꾸게 한 조르주 멜리에스
여전히 꿈꾸는 영화를 기다리며


긴 영화의 역사 안에서 몇 편의 영화는 평가의 단계를 초월한 걸작이고, 몇몇 감독은 거장을 넘어 영화의 신이라 불릴 만한 분들도 있다. 이렇게 많은 위대한 감독들이 있다는 것 외에도 더 혼란스러운 건, 좋아하는 영화가 자주 바뀐다. 그만큼 영화는 저마다 다양한 매력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영화는 질릴 수가 없다.


20대에 특별히 좋아한 감독은 ‘어쩌다’ 관심이 생겨 필모그래피를 찾아봤던 이들 중에 있을 것이다. 이런 감독과 개인적인 취향에 관해서는 언젠가 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이번 글에서는 가장 고마운 감독에 관해 말하려 한다. 이 감독은 필름에 최초로 온기를 불어넣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을 감상하면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 영화라는 매체의 역사를 되새김질해봐도 이 감독을 책의 최전방에 배치하는 건 적절해 보인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언젠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극(픽션) 영화의 시초, 컷의 개념을 인지했던 감독. 영화와 마술(‘미술’이 아니다)을 접목해 편집과 특수효과를 보여준 감독, 그리고 최초로 우주를 필름에 담고, 영화를 상상의 매체로 재정립한 감독. 이 많은 걸 해낸 감독은 바로, ‘조르주 멜리에스’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르주 멜리에스에 관해 글을 쓰고 있음에도 그의 영화 전체를 다 본 건 <달세계 여행>이 유일하다. 하지만 그 한 편만으로도 조르주 멜리에스는 내게 완벽한 감독이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프랑스의 영화감독으로 영화가 탄생한 초창기에 활발히 활동했다. 앞서 언급한 <달세계 여행> 외에도 무수히 많은 영화를 만들었는데, 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5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은 많이 사라졌다. 다행히 살아남은 작품 중 하나가 <달세계 여행>이다. 1902년 작품인 <달세계 여행>은 2011년 칸 영화제서 복원된 버전이 공개되었고(손으로 필름에 색을 입혔고, 사운드도 추가된 버전) 지금은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글을 더 읽기 전에 유튜브에서 <달나라 여행>을 검색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10분 정도의 짧은 영화이니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어떤 작품을 만든 게 아니라, 영화 그 자체를 만들었다


<달세계 여행>에 관한 잡다한 지식

<달세계 여행>의 줄거리 이렇다. 한 무리의 사람들(천문학자)이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간다. 그들은 그곳에서 외계인을 만나 싸우고, 다시 지구로 돌아와 상을 받는다. 이게 전부다! <달세계 여행>은 환상적인 일을 담아내기는 했지만, 냉정히 말해 내러티브적인 면보다는 영상으로 보이는 마술, 즉 편집의 기교와 재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그리고 10 여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서 다양한 장르를 만날 수 있는 영화다. <달세계 여행>은 지구에서 달로 여행을 떠난 인물들의 이야기로, 최초의 어드벤쳐 영화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모험지가 달이라니, 시작부터 상당히 멀리 갔다.) 또한, 우주선과 외계인이 등장하는 최초의 SF 영화이며(이 영화는 그 유명한 과학 소설가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가 원작이다.), 외계인과의 전투까지 볼 수 있는 액션 영화이기도 하다.


다양한 장르 외에도 다양한 극 영화적 요소를 <달세계 여행>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속 외계인과의 전투 장면 최초의 특수효과가 등장한다. 천문학자들이 외계인을 공격하면, 외계인이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당시로는) 혁신적인 시각효과를 볼 수 있다. 더불어 조르주 멜리에스는 당시 기술로는 고정할 수밖에 없던 카메라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양한 배경을 만들어 화면을 풍성하게 꾸몄다. 이는 최초의 세트이면서 최초의 영화 미술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위대한 업적 중, 가장 인상적인 건 ‘컷’의 개념을 이해한 감각이다. 앞서 말한 특수 효과는 컷과 컷을 분리하고, 이어붙인 편집이 이뤄진 장면이다. 이런  컷 편집을 통해, 전직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는 필름 안에 마술같은 순간을 구현해냈다.  트릭은 생각보다 단순한데, <달세계 여행>에서 망원경이 의자로 ‘뿅!’ 하며 바뀌는 장면을 예로들 수 있다. 우선, 인물이 망원경을 들고 촬영한 뒤(컷1), 그 자에서 의자를 들고서 다시 촬영(컷2) 했을 것이다. 이후에 두가지 컷(컷1과 컷2)을 붙이면, 망원경이 의자로 ‘뿅!’ 하며 바뀌는 마술을 볼 수 있다.



영화의 역사를 조사해보면, 최초의 편집은 ‘애드윈 포터’의 <대열차 강도>(1903)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컷과 컷의 재조합을 편집으로 본다면, 조르주 멜리에스가 그 최초의 자리를 가져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는 컷과 컷 사이의 간격과 가능성을 이해했고, 그 사이의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해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 수 있던 감독이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1895)을 상영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영화의 탄생을 목격한 뒤, 7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그는 극영화의 문법과 편집, 그리고 영상 언어 대부분을 정립해냈다.


이 영화에 관해 몇 가지 덧붙이자면(예상했듯, 이 책은 영화에 관한 고품격 지식서다!), <달세계 여행>은 디졸브 등의 장면 전환 효과가 사용된 최초의 영화다. 그리고 우주선이 달에 부딪히는 장면은 최초의 스톱 모션이라고 한다. 또한, <달세계 여행>은 흑백에 무성 영화였다. 흑백 프린트에 색을 입힌 버전이 있고, 음악이 추가되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전도 있지만, 그 어떤 버전에도 대사는 없다. 그 어떤 대사와 자막 없이, 이미지만으로도 영화의 내용을 쉽게 전달한다. 그래서 영상 그 자체의 특성을 매우 잘 살린 영화라 할 수 있다.


무성영화에 관해 말할 수 있을 기회가 지금 뿐이기에 몇 마디 더 하자면, 흑백영화는 간혹 볼 기회가 있지만, 무성영화는 접하기가 힘든 편이다. 근래 영화관에서 봤던 작품으로는 2011년에 개봉한 <아티스트>가 유일했다. 소리가 없어 답답할 법도 하지만, 대사가 있기 전의 무성영화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영화로 생각되기도 다. 무성영화는 언어를 초월해서 모든 관객이 즐길 수 있고, 이미지만으로 영화의 의도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유성영화의 초창기엔 이런 무성영화의 완벽함이 깨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 유명한 찰리 채플린은 영화에 음성이 생김으로써 “사람들이 더는 상상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영화를 꿈꾸게 한 남자, 조르주 멜리에스

조르주 멜리에스는 1969년 아폴로호의 11호로 달에 간 암스트롱보다 무려 67년 일찍 달나라를 여행했다. 그의 영화부터 우주는 영화의 무대가 되었고, 인간의 상상력이 꽃피는 환상의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인간의 꿈을 담는 매체가 되었다. 지금 보면 조잡할 수도 있지만, 앞서 말한 잡다한 지식만 봐도 <달나라 여행>의 가치는 대단하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조르주 멜리에스가 더 엄청난 감독인 이유는 영화의 용도를 바꿨다는 데 있다. 그는 뤼미에르 형제가 사물과 사건을 기록하는 도구로 사용하던 영화를, 그 이상의 가치를 담아내는 매체로 확장했다. 조르주 멜리에스 덕분에 영화는 ‘이야기’를 담았고, 상상력을 품었으며, 관객을 꿈꾸게 했다.


그런 업적에 비해 조르주 멜리에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아쉽다. 비슷한 시기의 뤼미에르 형제가 대접받는 것과 비교하면, 찬밥신세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듯, 역사상 첫 번째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상영한 <열차의 도착>이다. 이렇게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를 최초로 만든 아버지서, 영상 발달사의 제일 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어쩌면 가장 고마워해야 하는 인물은 뤼미에르 형제일지도 모른다.


'필름'이라는 도화지를 건네준 뤼미에르 형제


그런데도 개인적으로는 뤼미에르 형제를 기술을 만든 선구자 정도로 생각한다. 뤼미에르 형제는 영상 기술, 눈앞의 현실을 기록하는 도구를 만들어 낸 발명가들이다. 그러나 뤼미에르 형제가 아니었을지라도 이 도구는 그 시기에 완성되었을 것이다. 사진과 영사기술의 끝엔 영상, 혹은 영화가 있었을 것이다.


에디슨은 1889년 ‘키네토스코프라’는 영사기를 ‘먼저’ 만들기도 했다.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이 상영 방식이 현대의 영화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영화의 아버지는 뤼미에르 형제가 되었다) 이처럼 영화라는 싹을 가진 발명품이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걸 보면, 영화라는 기술은 뤼미에르 형제가 아니었어도 비슷한 시기에 탄생이 되었을 것 같다.


에디슨이든 뤼미에르 형제이든 누가 먼저든 이번 글에서는 관계없다. 누가 뭐라해도 필름에 이야기를 담고,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을 불어넣은 것은 테크놀로지의 창시자들이 아닌,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였으니까. 영화의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기록 영화의 최상단엔 뤼미에르 형제가 있을 것이고, 극영화의 최상단엔 조르주 멜리에스가 있지 않을까. 뤼미에르 형제가 다큐멘터리의 뿌리라면, 죠르쥬 멜리에스는 상상력의 근원이다.


<열차의 도착> '열차'는 영화와 떼어놓을 수 없는 미장센이다


여전히 꿈꾸는 영화를 기다리며

<달나라 여행>은 지금 시대 화려한 영화를 기준으로 한다면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조르주 멜리에스의 어떤 벅찬 감정이 엿보여 지루하지가 않다. 그는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었을 것이다. 마술 같은 순간을 담아 관객이 놀라는 반응을 기다렸을 조르주 멜리에스의 모습을 그려본다. 그런 조르주 멜리에스를 상상하며 <달나라 여행>을 가끔 꺼내보면, 그의 설렘이 전달되는 것만 같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영화 속에서 우주로 떠나는 그 소동은 무척 귀엽게 보이는 동시에, 영화에 꿈이 이식되는 과정같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앞서 시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 가능성을 열어준 감독 중 하나가 조르주 멜리에스다. 시공간을 여행하는 최초의 시발점에 그가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영화관에 처박혀 무수히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20대에 맞이한 뜻밖의 수많은 공백을 스크린을 통해 여행하며 채웠다. 영화라는 매체는 당연히 태어날 기술이었지만, 조르주 멜리에스가 없었다면 내가 본 많은 극영화의 탄생이 뒤로 밀리지 않았을까. 그럼 난 대체 무엇을 하며 20대를 견뎌냈을까. 끔찍한 가정이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는 내 취향을 문제를 뛰어넘어, 가장 고맙고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나 외에도 많은 감독과 관객은 그에게 이런 비슷한 감정을 가지지 않을까. 역으로, 그가 짧은 시간 내에 영상 언어에서 너무도 많은 것을 정립해버려 질투를 하는 감독도 있었을 것 같다. 아무튼 그는 영화에 가능성을 심었고, 이후의 감독들은 그 가능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변주해 독특한 영상 언어로 관객과 소통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를 향한 애정을 담았던 <휴고>엔 조르주 멜리에스가 등장한다


가끔, 비평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영화의 죽음이라는 말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 ‘죽음’이란 의미를 완벽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저 추측하자면, 이 죽음이란 영화의 탄생 이후 무한할 것만 같던 표현의 가능성, 영화의 상상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미 모든 시도가 있던 시기를 지나왔기에 현대의 영화가 이제는 새로운 영상 언어를 발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혹은 새로운 시도 자체가 없는 모습을 꼬집었을 수도 있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정신이 실종된 시대라고나 할까.


현대의 영화는 소재와 장르가 다채로워지고, 이를 보여주는 테크놀로지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다. 하지만 영화가 컷을 조합하고 관객에게 보여주는 방식은 공식처럼 정립되어 버린 느낌이 있다. 그래서일까. <달세계 여행>에 보이는 아직 ‘어렸던 영화’의 몸부림이 너무도 좋다. 그 꿈틀거림을 보고 있으면, 영화가 무엇이든 보여줄 수 있을 것만 같다. 관객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줄 거라 굳게 믿고 있는, 영화라는 녀석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다.


<달세계 여행>은 영화가 자신의 가능성을 향해 무한한 꿈을 꾸는 것만 같다. 꿈을 꿀 수 있던 시기의 영화. 더불어 매번 꿈꿀 수 있는 객석. 이런 느낌을 앞으로 다가올 영화에서 다시 받을 수 있을까. 언젠가 그 한 편의 영화가 내게 온다면, 너무도 좋을 것 같다. 또 다른 <달세계 여행>을 기다리며, 그리고 조르주 멜리에스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보내며 이번 글을 마친다.


P.S <달세계 여행>과 조르주 멜리에스에게 관심이 있다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휴고>를 강력히 추천한다. 영화라는 매체를 사랑하는 관객, 그리고 시네필이라면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로 만든 동화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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