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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y 17. 2018

[머니볼] '빌리 빈'의 우승을 기다리며

나만의 방식으로, 뭔가 이뤄내기를 바라며

강민호 삼성 라이온즈와 80억 계약 작년 연말엔 롯데 자이언츠에 큰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 트레이드는 롯데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포항의 지진으로 두려웠고, 어수선했던 2017년 11월. 그 끝엔 롯데 자이언츠의 안방이 흔들리다 못해, 뿌리째 뽑혀나가는 소식이 있었다. 롯데의 기나긴 암흑기에 피어난 꽃 중 하나가 ‘롯데의 강민호’였는데, 그 꽃이 뽑혀 나가버렸다.     


빌리 빈의 ‘머니볼’ 이론
‘머니볼’ 이론의 우수함과 빌리 빈의 징크스
비리 빈, 그의 룰로 우승하기를


프로야구에서는 시즌이 끝나고 선수를 사고파는 시기를 스토브 리그라 한다. 이 시간을 통해 각 팀은 자신들의 컬러에 맞는 선수로 라인업을 구축하고, 1년 계획을 세운다. 근래 한국 프로야구는 스토브 리그에서 100억이 넘는 돈이 오가며 시장이 커졌다. 이렇게 시장이 커진 게 거품이라는 비판과 과열됐다는 우려의 소리도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에 얼마나 많은 돈이 오가는지에 별 관심이 없다. 누가 얼마를 받든 내 돈이 아니고, 내가 지출할 돈도 아니기에 괜히 열을 올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래도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우승? 그거 돈으로 사겠어!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구단 운영진에게 스토브 리그는 그들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시기다. 좋은 선수를 다 영입하고 싶지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운영진은 좋은 선수를 합리적인 가격에 보유하려 한다. 그렇다면 구단은 무엇을 기준으로 선수의 연봉을 책정하는 걸까. 연봉엔 많은 요소가 개입되는데, 지난 시즌 성적에 대한 보상, 내년에 해줄 것이라 기대되는 성적, 선수의 스타성에 따른 구단 이익, 그리고 우승을 바라는 기대 투자심리까지 다양하다.


선수의 성적을 평가하는 방법도 복잡하다. 통계의 스포츠라 불리는 야구엔 무수히 많은 지표가 있고, 계산 방식이 복잡한 새로운 지표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거엔 타율, 타점, 홈런, 방어율, 이닝 등으로 선수를 평가했다면, 요즘은 대체 선수 승리 기여도, 인플레이 타구의 타율 등 복잡한 기록이 선수의 능력을 가늠하는 데 적용된다. ‘아, 얘 또 왜 아는 척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번에 읽어볼 영화 <머니볼>과 관련이 있어 잡다한 지식을 풀어놓았다. <머니볼>은 선수의 연봉 및 통계와 밀접히 관련된 영화다.


빌리 빈의 머니볼이론

<머니볼>은 메이저리그 팀 중 하나인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빌리 빈’ 단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2002년 시즌이 끝나고 오클랜드의 주축선수였던 제이슨 지암비, 제이슨 이스링하우젠, 자니 데이먼이 팀을 떠난다. 거기에 오클랜드는 재정상태도 좋지 않아 팀을 구성하는 데 큰 위기를 맞는다. 그때, 빌리 빈은 새로운 이론을 적용해 부족한 예산을 가지고서도 독창적인 팀을 꾸렸고, 결국 오클랜드를 아메리칸 리그 서부 1위에 올려놓았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익숙한 팀인데, ‘코리안 특급’보다 이제는 ‘투 머치 토커’로 더 유명한 박찬호 선수가 텍사스에서 뛰던 시절 자주 붙었던 팀이다. (박찬호의 오클랜드 통산 성적이 1승 8패로 꽤 좋지 않았다) 그 인연 덕인지 <머니볼>에서 피터 브랜든(조나 힐)이 전력분석을 하는 장면에서 박찬호의 실제 모습이 TV 속에 잠깐 나오기도 한다. (61번이 적힌 등만 잠깐 나오기 때문에, 박찬호를 찾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2000년 초반 오클랜드는 영건 3인방(팀 허드슨, 마크 멀더, 배리 지토)이 있던 팀이고,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02년에는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 최초로 20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 최초이자, 여전히 한국 최고의 메이저리거 박찬호(통산 124승, 아시아 최다승)


그렇다면 빌리빈의 오클랜드는 어떻게 강팀이 될 수 있었을까. 그가 적용한 머니볼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빌리 빈이라는 사람을 먼저 알아야 한다. 빌리 빈은 초특급 유망주였지만, 프로에서 처참히 실패한 선수였다. 통산 301타수/타율 0.219/ 홈런 3개 등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영화에서도 나오는데, 그는 돈 때문에 스탠퍼드 대학교 대신 프로야구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선택을 평생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빌리 빈은 ‘돈’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런 경험 덕에 그는 프로 야구팀의 경영을 자본에만 의존하지 않았고, 기어이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단장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돈이 없는 구단이 돈 많은 구단과 같은 방식으로 전략을 짜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야구를 보는 관점을 바꾸고, 저평가된 선수를 저렴한 가격에 데려와 팀을 완성한다. 이때 빌리 빈이 사용한 방법이 머니볼 이론이다. 저비용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해 정규리그에서 우승할 수 있는 팀을 꾸리는 것, 그게 ‘머니볼’ 이론이다.


‘효율성은 모든 경영에서 적용하는 거 아냐?’라고 물을 수 있다. 때문에 머니볼 이론이 말하는 저비용 고효율에 대해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돈 없는 구단이 돈 많은 구단과 같은 방법으로 영입 전략을 짜면, 그들은 늘 차선책(즉, 돈 많은 구단이 영입하고 남은 저렴한 선수들)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늘 부족한 전력에서 시작하는 불공평한 게임이기에 결과는 뻔하다. 그들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없다. 그래서 빌리 빈은 없는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걸 찾지 말고, 돈 없이 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 그 기준은 모든 선수를 숫자(통계)로만 평가하고, 그 통계적 수치 중에서도 ‘출루율’이라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거였다.


오로지 득점과 관련된 데이터만으로 야구를 바라보는 이 관점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야구를 너무도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스포츠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선수의 잠재력, 투지, 열정 등의 인간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건, 140년간 선수를 평가하던 기준인 타율, 타점 등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데서 온 비난과 조롱이었다. 개인 기록이 좋은 선수 대신, 팀의 승리를 사려고 했던 빌리 빈의 영입 전략은 긴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위험한 도전이었다.


빌리 빈이 마주 해야 했을 장애물은 '머니볼' 이전에 전설이 된 선수와 감독, 그리고 팀이었을 것이다


‘머니볼’ 이론의 우수함과 빌리 빈의 징크스

분명, 통계만으로 야구를 말할 수는 없다. 관중은 스포츠에 드라마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 숫자놀음에도 장점은 있다. 통계는 그 어떤 선수도 차별하지 않는다. <머니볼> 속의 스카우트들은 선수의 외모, 폼, 심지어 선수의 여자친구까지 중요한 평가 지표로 삼는다. 그리고 현재의 기록보다는 선수의 개인적인 일과 과거의 부상 전력 등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빌리 빈은 그 모든 것을 과감히 무시하고, 출루율만으로 선수를 평가하고 뽑는다. 타인의 눈엔 오합지졸이자 한물간 선수들이지만, 빌리 빈에게 그들은 승리를 위해 필요한 자원들이자, 숫자들이었다.


계속 말하지만, 머니볼 이론의 핵심은 출루율이다. 야구는 잘 친다고 이기는 게 아니라, 주자가 나가고 홈으로 들어와야 이기는 게임이다. 많은 견해차가 있을 수 있지만, 빌리 빈은 이 점을 믿고, 1년 동안 지구 우승을 위해 필요한 총득점에 근거해 필요한 출루율을 계산하고, 그 출루율에 맞춰 선수를 뽑는다. 그는 홈런과 타점에 돈을 지급하는 게 아니라, 승리에 필요한 출루에 경제적으로 돈을 썼다. 즉, 선수 개개인에게 돈을 쓴 것이 아니라, 우승에 필요한 총득점을 위해 돈을 쓴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통계라는 과학을 믿는 빌리 빈마저도 미신을 믿는 복잡한 인간이었다는 거다. 그는 절대 경기장에서 직접 경기를 관람하지 않는다. 그는 경기장에서 관람하면 자신의 팀이 진다는 징크스에 사로잡혀 있다. 출루율이라는 숫자만 믿는 그가 미신을 믿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그도 이렇게 모순에 갇혀 있었다. 그는 대담하게 행동했지만, 내적으로는 초조했고, 통계를 완벽히 믿을 수는 없었다.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설정이었다. 이런 빌리 빈의 모순은 인간적이고, 그래서 이 인물에 정이 가고 이입하게 된다.


<머니볼>의 브래드 피트는 많이 고독해 보인다


<머니볼>은 이 징크스가 깨지는 순간을 극적으로 담는다. 3회까지 11-0으로 앞서는 경기에 승리를 확신한 빌리 빈은 경기장을 방문한다. 그런데 그가 온 이후로 경기의 분위기가 변하고, 11-11 동점이 된다. ‘머니볼’ 이론보다 더 강력한 징크스를 확인할 것만 같던 순간, 그가 머니볼 이론으로 영입한 스콧 해티버그(크리스 프랫)가 끝내기 홈런을 치며 오클랜드는 승리한다. 그리고 이 경기는 그가 만든 오합지졸 팀이 20연승을 달성, 메이저리그 연승기록을 깨는 경기였다. (이 연승기록은 2017년 클리블랜드의 23연승에 의해 깨졌다) 빌리 빈이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역사가 기억할 그 날, 그의 개인적인 징크스도 깨진다. 이는 통계가 미신을 이기는 상징적인 순간이며, 그의 신념이 그의 의심을 이기는 순간이다. <머니볼>의 절묘하고 재미있는 설정이다.


여담으로 내게도 길고 길었던 징크스가 있었다. 내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러 가면 항상 패배했다. 10년 동안, 약 15회 정도의 경기를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무려 10'년‘패다. 처음엔 웃어 넘겼지만, 나중엔 내가가서 진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누군가는 나를 빌리 빈으로 부르기도 했다.) 경기장을 나설 때, 내가 패전투수라도 되듯 위로를 받기도 했다. 지는 방법도 다양했는데, 끝내기 홈런, 말도 안되는 보크, 누의 공과(이건 TV로도 본적이 없어서 정말 충격적이었다) 등 온갖 불운을 다 목격했다. 다행인지 올해 이 지긋지긋한 10‘년’패는 끝났다. 최근엔 미신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리고 내 인생도 같이 잘 풀렸..겠지?


이 승리에서 저 승리로 가는 데, 무려 10년이 필요했다면 믿어줄까


빌리 빈, 그의 룰로 우승하기를

빌리 빈은 14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 절대다수가 중요시하던 룰을 깼다. 돈이 있고, 경험 많은 이들이 지켜온 방식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없는 자본으로 기존의 방식을 따르면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를 하느니, 새로운 방법으로 리그를 제패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런 혁신에는 많은 비판과 비난이 쏟아진다. 이 다윗은 자본과 메이저리그 역사, 그리고 대중의 편견이라는 골리앗과 싸워야 했다. 그래서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자신을 믿는 일이었을 것이다. 없던 길을 걸어갈 땐 불확신이라는 망령이 꼭 뒤따르는 법이다. <머니볼>은 한 인간의 신념이 대다수가 신봉하는 신화를 깨버리는 통쾌한 영화다.


빌리 빈은 우승을 목표로 하지만, 단순히 우승만을 인생의 목표로 두지 않았다. <머니볼>의 후반부, 보스턴 레드삭스는 엄청난 돈으로 빌리 빈을 영입하려 한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보다 더 많은 돈으로 더 강한 전력을 꾸릴 수 있는 강팀이다. 즉, 그가 그토록 원하던 우승을 할 가능성이 더 높은 팀이다. 통계적으로도 계산해도 그렇다. 하지만 빌리 빈은 그 제의를 단호히 거절한다. 그는 돈 때문에 하는 선택을 꺼린다. 대신, 그 돈을 압도하는 방법을 추구한다. 그에겐 돈으로 승리하는 일보다 자신의 룰을 증명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는 돈을 밟고 트로피를 들고 싶어 했다.


<머니볼>은 박찬호의 시대를 볼 수 있어 끌렸던 영화다. 박찬호가 투 머치 토커가 아니었던 시절, 그러니까 코리안 특급이었을 때, 몇 없던 취미가 메이저리그에서 좋아하던 선수들의 기록을 매일 확인하는 거였다. <머니볼>은 그 당시 알던 선수가 많아서 흥미를 느꼈지, 첫 관람 당시엔 사실 지루한 편이었다. 단순히 웃겨주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본 <머니볼>은 브래드 피트의 연기 하나하나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영화였다. 그리고 사회에 막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의 방법으로 우승하기를, 그래서 인생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를


이 영화는 사회의 편견과 오래된 룰에 맞서는 자가 가져야 할 자세와 전략을 보여준다. 상사와 부하가 있고, 사수와 부사수의 문화가 흔한 우리 사회에서 아랫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는 건 금기시되어 있다. 갑과 을이라는 권력 구조 내에서 을이 갑의 룰에 반기를 들기도 역시나 쉽지 않다. 그래서 <머니볼>이 실화라는 게 중요하다. 140년의 시간 앞에서, 실패했던 선수이자 유아독존인 한 남자가, 3배나 큰 자본을 뒤집은 진짜 이야기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 어려운 걸 빌리 빈이 해냈다. 실제 메이저리거들의 경기 영상과 영화 속 이야기가 교차하는 <머니볼>의 편집은 세련되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 아름다운 편집은 ‘머니볼’ 이론이 ‘실화’로 만든 드라마임을 계속 말한다. 그리고 우리네 삶에도 이런 반전이 진짜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출로 봐도 좋을 것이다.


우리 시대 앞에 서 있는 사회는 저마다 고유의 룰을 가지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상을 경영하고 있다. 그들의 룰에 맞춰 살 수 없는 사람이라면, 혹은 그들의 룰 속에서는 빛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룰을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유명한 용어, ‘패러다임’을 바꿔 도전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당신이 정말로 확고한 근거가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선택을 향한 확신이 있다면, 그걸 끝없이 의심하면서도 끝내 져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룰을 벗어나도 된다고 <머니볼>은 제안한다.


몇 번의 큰 면접에서 떨어지고서야 <머니볼>을 자주 꺼내본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면, 내 인생에 적용할 새로운 이론을 찾는다. 물론, 여전히 불안하고 확신할 수 없지만, 내게 맞는 룰이 있을 것만 같다. 참고로 ‘머니볼’ 이론은 성공했지만(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깬 보스턴의 우승), 빌리 빈은 여전히 우승하지 못했다. 그의 룰뿐만 아니라, 그의 우승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 내 인생도 나만의 방식으로, 뭔가 이뤄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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