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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y 10. 2018

[퍼펙트 게임] 기록에는 없는 퍼펙트 게임

롯데 팬에게 더 특별한 영화, <퍼펙트 게임>

야구는 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치열함이 있는 스포츠다. 긴 역사만큼 명언도 많으며 개개인의 철학도 깊다. 일구입혼(공 하나에 혼을)이란 말부터 드라마를 통해 더 유명해진 메이저리거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반전을 꿈꾸는 사람들의 부적 같은  ‘야구는 9회 말 2아웃부터’ 등 이 녹색의 그라운드와 다이아몬드는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유독, 부산에 있는 다이아몬드엔 많은 한이 있다고 한다.                         

롯데 자이언츠의 팬으로서
‘퍼펙트’ 없는 ‘퍼펙트 게임’
무승부에서 찾은 ‘퍼펙트’
롯데 자이언츠라는 죄(?)


내게 태어날 때부터 지은 죄가 있다면... ‘롯데 자이언츠’의 팬으로 태어났다는 거다. 구도 부산에서 롯데 자이언츠는 종교라 할만한데, 롯데가 이기고 지는 것에 따라 도시 분위기가 달라지고는 했다. 야구 시즌엔 택시만 타면 중계를 들을 수도 있다. 택시 기사분들은 그 어떤 전문가보다도 롯데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 한숨이 반, 욕이 반이었던 것 같다.


한 많은 롯데 팬의 글에 흥미가 없다면, 이 영상만 봐도 좋을 것 같다


‘모태신앙’을 가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며 온갖 못 볼 걸 보고, 실망하고, 심지어는 욕을 하면서도 기어이 야구를 보겠다고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나 자신을 보며, 모태 신앙도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마, 앞으로도 이 종교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프로야구 원년 팀으로 롯데 자이언츠는 돋보이는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82년 프로야구가 시작된 이후, 36년 동안 단 한 번도 정규시즌 1위를 못해본 팀(리그가 쪼개졌을 때, 반쪽짜리 왕좌엔 앉은 적이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92년 이후 우승을 못 해본 팀 등 좋지 않은 쪽에서 ‘현재 진형형’인 업적이 많다.


1992년이 얼마나 까마득한 시간이냐면, 개인적으로는 야구공을 본 적조차 없던 때다. 더 극적인 표현을 빌려온다면, 강산이 두 번 바뀌고 세 번째 바뀔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 당시 태어난 아기가 서른을 바라보고 있다. 또, 그 이후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무려 여섯 번이나 바뀌었고, 미국은 아버지 부시에 이어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도 남은 시간이다. 북쪽의 정권도 세 번이나 바뀌었다. 이러다가는 남북의 완전한 화해가 롯데의 우승보다 더 빠를 수도 있다.


이런 롯데 팬의 한(?)은 대중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천만 영화 <해운대>에서 최만식(설경구)이 이대호에게 욕하는 장면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작년에 개봉한 <보안관>엔 “롯데에서 NC로 갈아타”라는 대사가 나오는 등 롯데 팬의 수난은 끝이 없다. 사실, 현실이 영화보다 더한 경우도 있는데, 실제로 경기장에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분들도 있고, 때로는 그보다 더한 분들(예를 들면 올해 퇴근하는 이대호를 향해 치킨을 던진)도 있다. 이렇게 온갖 걸 다 목격하며 롯데 팬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길고 길었던 한풀이를 끝내고 이제는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당연히 ‘롯데’와 관련된 영화다. 이번에 이야기할 영화는 1987년 5월 16일 부산에서 있었던, 롯데와 해태의 치열했던 경기를 바탕으로 한 <퍼펙트 게임>이다.


'호날두 vs 메시'처럼 절대 끝나지 않을 논쟁 '최동원 vs 선동열'


최동원 대 선동열

Perfect는 완벽한, 완전한 등의 뜻을 가진 형용사다. 야구에서는 투수가 1루에 단 한 명의 주자를 내보내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하는 걸 뜻한다. 글을 쓰는 시점(2018년 5월)을 기준으로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딱, 스물세 번 있던 기록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1군엔 단 한 번도 없었고, 2군에서만 한 번 있었다. (롯데 자이언츠 투수 ‘이용훈’의 기록이다!)


<펴펙트 게임>은 한국 야구의 전설 철완 최동원과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의 대결을 담은 영화다. 워낙 압도적인 투수들이기에 퍼펙드 게임을 한 번쯤 해봤을 것 같다. 하지만, 앞서 ‘퍼펙트 게임’이 한국 프로야구에 없었다고 말했듯, 당연히 이 경기는 기록상 ‘퍼펙트 게임’이 아니었다. 두 투수는 모두 2점을 실점했고, 안타도 많이 맞았다. 사실과 다른 이 ‘퍼펙트’란 수식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동원과 선동열 중 누가 더 위대한가?” 두 투수는 지금도 토론하기 좋은(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자들이 밤새워서 얘기해도 결국 답이 나오지 않을 그런 이야기) 비교 대상이다. ‘누가 더 위대한 투수인가’에 관해 끝도 없는 논쟁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에서 메시와 호날두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처럼 말이다.


야구 게임만 해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투수였는지 알 수 있다


프로야구 통산 기록만 살펴보면 선동열이 한 수 위다. 그는 KBO에 불멸의 기록을 많이 남겼다. 예리한 슬라이더를 주 무기로 정규 시즌 MVP만 세 번 올랐다. 역대 통산 최저 방어율도 기록하고 있는데, 그의 방어율은 대학 학점에서 ‘선동열 방어율’이라는 용어를 만들 정도로 낮았다.  방어율만큼의 학점을 받았다면, 학사 경고의 위기를 면치 못할 것이다.


최동원이 전성기가 지났을 때, 프로야구가 생겼다는 게 롯데 팬으로서는 아쉬울 뿐이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이전, 최동원은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및 실업 야구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했다.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 많은 메달을 목에 걸었고, 많은 상을 들었다. 그의 기록 중 눈에 띄는 건 단연 이닝에 관한 기록이다. 엄청나게 많은 공을 던지던 그의 별명은 ‘무쇠 팔’이었고, 자신의 경기는 팔이 부서져도 끝까지 책임진다는 근성과 아우라가 있었다.


두 선수와 야구에 관해 더 많은 걸 말하고 싶지만, 이글은 명백히 '영화에 관한 품격이 있는 지식'을 담아야 하기에 이쯤에서 그친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의 제목 <퍼펙트 게임>에 있는 ‘퍼펙트’의 의미에 관해 생각해볼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야기할 최동원과 선동열은 실제 인물이 아닌 영화 속 캐릭터에 바탕을 둔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최동원은 역동적인 투구폼과 함께 금테 안경으로 기억된다


완벽한 선수가 되는 과정

<퍼펙트 게임>에서도 최동원(조승우)은 성실함과 투지, 근성을 가진 투수로 등장한다. 그는 혼자서 야구를 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그게 고독한 에이스의 길이라 믿는다. 그와 비교해 선동열(양동근)은 엄청난 재능을 가진 천재형 투수로 그려진다. 그 재능만 믿고 야구를 하기에 독기가 부족하다는 게 그의 단점이다. 이렇게 <퍼펙트 게임>은 두 선수에게 극단적인 속성을 부여해 노력형 투수 최동원과 천재형 투수 선동열이라는 대결 구도를 만들어 간다.


이런 투수의 성향은 경기장 밖의 행동에서도 볼 수 있다. 경기가 끝난 후 최동원은 이동 중에도 상대 팀을 분석하고, 공부한다. 그리고 규칙적으로 러닝을 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 하지만 선동열은 경기 후에 술을 마시며 느긋한 시간을 보낸다. (경기장에서 술에 깨지 않고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선동열이 동료들 속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은 홀로 러닝을 하는 최동원과 대비된다.


이런 두 투수는 한국 최고의 투수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변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우선, 최동원은 팀과 함께하는 선수가 된다. 선동열과의 경기 중, 마운드 밖을 바라보고 자기 뒤엔 동료들이 있다는 걸 보게 된다. 최동원이 동료를 위해 사구를 던지는 장면은 공 하나를 버려서라도 팀과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런 최동원의 모습에 동료들도 반응한다. 김용철(조진웅)이 그를 위해 경기에 뛰겠다는 정면은 최동원과 롯데 자이언츠가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선동열은 최동원을 이기기 위해서 근성과 독기가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경기장 밖에서 술만 마시던 그가 상대를 분석하고, 성실히 훈련한다. 그리고 경기장 안에서는 더없이 진지하고 투지를 불태운다. 이렇게 두 투수는 자신에게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 더 완벽한 선수가 된다. 그래서 이 영화엔 ‘퍼펙트’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


'승리와 패배'를 넘어, 승부 그 자체의 가치를 말하는 영화라 좋았던 <퍼펙트 게임>


패자가 없는 게임

두 선수의 경기를 앞두고 경기장 밖에서도 뜨거운 설전이 오간다. 미디어는 최동원과 선동열을 두고 비교하는 걸 즐긴다. 두 선수를 놓고 누가 더 강하고, 한국 최고의 투수인지를 말하려 한다. 이런 비교는 자극적이고, 시청자들도 흥미를 느낀다. 대중과 미디어는 최동원과 선동열의 승부가 이런 논쟁의 종지부를 찍어주기를 기대한다.


최동원과 선동열의 투혼은 이 욕구를 완전히 차단해 버린다. <퍼펙트 게임>의 무승부는 두 선수의 우위를 가릴 수 없게 했다. 두 선수의 가치를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아마도 두 선수 중 누군가 이 경기의 승자가 되었다면, 후세는 그 사람을 더 강하고, 위대했던 투수로 기억했을 수도 있다. 이 무승부는 그 누구의 명성에도 흠을 내지 않았고, 모두를 승자로 만든 완벽한 결과다. 그래서 ‘퍼펙트 게임’이다.


두 명의 전설 외에도 승리하는 선수가 있다. 무명의 선수 박만수는 선수로서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는다. 그에 그치지 않고, 최동원이라는 대투수에게 홈런을 치며 야구 선수로 인정을 받는다. 그리고 그를 믿어준 가족에게도 기쁨을 준다. 이렇게 박만수까지 이 경기의 승자가 된다. 사실, ‘박만수’의 승리는 <퍼펙트 게임>에서 조미료가 가장 많이 들어간 부분이기도 한데, 이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그리고 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 관중도 승자다. 그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경기, 후대가 기억할 만한 전설적인 된 경기를 봤다. 그리고 그들은 승부를 넘은 가치를 목격한다. 이렇게 <퍼펙트 게임>은 최동원과 선동열의 무승부 속에서 두 선수뿐만 아니라, 무명 선수와 동료들, 그리고 관중 모두가 뜨거운 승부의 일부가 되며 ‘승자’가 된다. 모두가 승자인 완벽한 경기, 그래서 영화 속 그 경기는 ‘퍼펙트 게임’이다.


<퍼펙트 게임> 초반의 악수와 경기 후의 악수는 분명 느낌이 다르다


지역 통합을 이뤄낸 승부

영화엔 ‘야구는 카카가 만들어 준 거에요!’ 라는 대사가 있다. 프로야구는 정치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한 3S(Sex, Sports, Screen) 정책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그런 뿌리 탓에, 연고지에 따른 지역감정이 응원 문화에도 남아 있었다. 최동원과 선동열은 영남과 남을 대표하는 팀의 에이스였고, 지역감정 덕분에 이 두 팀(롯데와 해태)은 프로야구 원년부터 서로에게 원수 같은 팀이었다. 그래서 두 투수의 대결은 개인적인 승부이면서 두 지역의 충돌이었고, 정치성을 가질 수 있는 경기였다.


<퍼펙트 게임>에서도 이 경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팀의 과격한 충돌과 응원문화도 꽤 노골적으로 묘사해뒀다. (구단 버스가 불타는 건, 놀랍게도 종종 있던 일로 영화적 상상력만은 아니다) 승부가 나는 순간은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순간이고, 희열과 분노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이 섞이기 힘든 감정은 충돌하고,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동원과 선동열은 그들의 대결을 무승부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두 지역의 갈등을 애초에 봉쇄했다. 그럼으로써 스포츠가 정치에 이용되는 것까지 막아버렸다. 모두가 승자가 된 게임에 갈등은 없었다.


영화의 엔딩엔 팬들이 상대 팀 선수를 인정하고, 환호하는 장면이 있다. 작위성이 보이는 장면 같지만, 실제로 관중이 두 선수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는 인터뷰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장면은 대립하던 팬들이 하나가 되는 장면이다. 이기는 것에 집착하던 팬들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즐기고 감동하고 있었다. 두 선수의 투혼이 만든, 영남과 호남의 일시적 화해와 통합, 이 경기는 분열된 지역을 완벽히 하나를 만들었고, 그래서 완벽한 경기라 할 만하다.


마동석을 좋아하지만, 이 캐릭터는 <퍼펙트 게임>의 큰 반칙이었다


신파 코드가 만든 반칙

지금까지 ‘퍼펙트’ 없는 <퍼펙트 게임>에서 이 수식어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봤다. 야구라는 스포츠로 승리 이상을 보여준 시도가 좋았던 영화다. 롯데 팬으로서 최동원 덕에 뜨겁고 재미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도 아쉬움은 있다. 그중 가장 큰 아쉬움은 ‘작위성’이고, 이것이 실제 경기의 기록을 훼손하면서까지 작동하고 있기에 야구의 팬으로서는 좋게 보기 힘들다.


<퍼펙트 게임>에서 논란이 될만한 건, 가상의 인물 박만수다. 영화는 실제 경기와 실제 선수들의 이름을 다 가져다 쓰면서, 그 사이에 교묘히 작위성이 넘치는 캐릭터를 중심에 끼워 넣었다. 이건 반칙이다. 이 인물은 가족애를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다. 박만수는 한국 상업영화가 목메는 신파 코드를 보강하기 위한 도구로 볼 수 있다.


몇 번을 봐도 박만수가 9회 마지막 공격 헬멧 안쪽의 가족사진을 보고 홈런을 치는 장면은 손발이 오그라든다. 너무도 뻔한 신파의 작동이고, 구시대적 연출이. 심지어 실제 경기에서 최동원은 홈런을 맞지도 않았다. 박만수의 홈런은 극적인 순간을 위해 나온 허구의 장면이다. 너무 과한 설정이었다.


차라리 그날의 경기에서 영화적 요소를 좀 더 찾았다면, <퍼펙트 게임>은 더 세련되고 야구팬들이 더 많이 좋아할 영화가 됐을 것이다. 혹은, <스카우트>처럼 그 시대를 담았다면,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묵직한 영화가 되었을 수도 있다. 좀 더 좋은 한국 야구 영화를 만나고 싶다. 그런 영화가 먼저일까. 롯데 우승이 먼저일까. 그래서 롯데는 언제 우승하는 거죠?


조진웅이 한국 시리즈 마운드에서 시구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퍼펙트 게임>의 명대사
나는 오늘 롯데의 4번 타자가 아니고 최동원이의 1루수로 시합을 마칠끼다 - 김용철(조진웅)

P.S 최동원의 1루수로 뛴다는 김용철의 대사처럼, 최동원의 팬으로 이 영화에 관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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