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기#059 메가로돈
<메가로돈>에 관한 평은 (아마도) 제이슨 스타뎀과 관련된 게 많을 것 같다. 그가 중심에 있던 최근 영화는 대부분 서사의 빈약함을 자본과 그의 몸으로 채웠다. 너덜너덜한 개연성 속에서 익숙한 클리셰를 전시하다 화려한 액션 시퀀스를 보여주는 식이다. 전혀 무관할 수 있지만, 이는 몇몇 싸구려 에로 영화의 구성과 유사할 수도 있다. 그 헐거움 속에도 에로 영화와 제이슨 스타뎀의 영화가 계속 제작된다는 것까지도 말이다.
<메가로돈>은 제이슨 스타뎀의 영화를 꺼리는 관객, 그리고 열광하는 관객 모두에게 ‘역시’라는 말을 뱉게 한다. 영화는 수심에 따라 세 가지 무대를 준비했고, 무대마다 각기 다른 세 장르의 이야기가 있다. 초해저에서는 재난과 구조의 서사, 해저에서는 괴수를 유인하는 서사, 그리고 가장 얕은 해수욕장에서는 괴수와의 전면전이 펼쳐진다. 심해라는 공간을 다층적으로 활용했고, 거대 상어 ‘메가로돈’의 존재감 덕에 나름의 긴장감과 장르적 재미를 느낄 수는 있다. 역시나 제이슨 스타뎀의 영화처럼 말이다.
이 서사의 과정에서 동료의 희생, 인간의 탐욕, 가족의 사랑 등의 주제 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진짜 문제는 너무도 익숙한 클리셰들의 연속이란 점이다. 더불어 ‘메가로돈’의 모습은 <죠스>를 생각나게 한다. 해수욕을 즐기는 많은 인파를 바라보는 상어의 시점 등에서 말이다. 하지만, 관객은 테크놀로지의 진보가 영화의 품격을 높이지 못한다는 씁쓸한 사실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 및 익숙한 대중문화의 틀 안에서 여성 캐릭터 슈인(리빙빙)의 주체성과 강인함, 그리고 그녀의 서사에 신경을 썼다는 점은 칭찬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주류 영화에 깔린 ‘이데올로기’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역시 중국 자본과 연계된 일로 해석한다면, 마냥 긍정하기도 힘들다. 언젠가부터 중국과 관련된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서사 그 자체보다 영화 안에서 일어나는 주류 이데올로기(예를 들면 미국 중심의 이데올로기와 중국 자본의 이데올로기) 간의 충돌, 헤게모니를 목격하고 있다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