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기#065 베놈
관객마다 <베놈>을 기대한 지점은 다를 것이다. 원작 코믹스의 팬이라면 그래픽 노블이 얼마나 충실하게 영상으로 탄생했는지 궁금했을 것이고, 마블 영화의 팬이라면(비록 소니라 할지라도) 히어로 영화(비록 빌런이 주인공이라 할지라도)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을 것이다. 혹은,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3>에서 봤던 ‘베놈’에 관한 추억으로 설렜을지도 모른다. 더 많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만약 당신이 앞의 이유로 <베놈>을 기대했다면, 많은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원작의 팬들은 이 영화의 수위가 더 강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피가 튀는 등의 잔혹함이란 문제가 아니다. <베놈>이란 영화와 캐릭터의 톤 앤 매너가 더 어두워야 함을, 그래야 영화가 가진 메시지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음을 뜻할 것이다. 애초에 강하게 표현할 생각이 없었던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베놈’은 순해졌고, 덕분에 이 영화에서 기대할 법한 볼거리와 갈등은 희석됐다.
하나의 예로, 우리가 이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던 건 ‘베놈’과 ‘에디 브록’(톰 하디)의 간격에서 오는 재미가 아니었을까. 한 몸에 두 존재가 공존하며 일어나는 갈등과 이중성, 그리고 비범한 힘을 가지고 폭력에 물드는 한 인간의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베놈>은 둘을 아주 간단히(베놈은 갑자기 브록이 좋아졌다며 고백을 했다) 한 편에 세우고, 하나의 인격과 이를 보조하는 도구로서 ‘심비오트’를 이용했다.
마블 코믹스 및 ‘베놈’에 관한 지식 및 관심이 없다면 넘길 법도 하지만, <베놈>은 너무도 명백히 원작 팬을 겨냥해 만든 영화다. 그렇기에 이런 분위기의 변화는 비난과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이런 변화는 ‘아이언맨’과 ‘자비스’의 구도 혹은, ‘스파이더 맨’ 시리즈 보다는 미국판 <기생수>라는 기시감마저 가지게 한다. 때문에 <베놈>은 최근 개봉한 블룸 하우스의 <업그레이드>보다 긴장감과 완성도가 떨어지고, 메시지도 약했다.
이런 점들이 있음에도 개인적으로는 무난히 봤는데, 이는 온전히 톰 하디 덕이다.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는 <디스 민즈 워>마저 재미있게 즐긴 관객으로서, <베놈>의 톰 하디의 망가지는 모습을 미워할 수 없었다. 그가 묵직하고 무거운 영화에서 주로 활약해서인지, 이런 여백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가 좋았고, 그래서 즐거운 관람이었다. 그래도 속편에서는 더 탄탄해진 영화로 돌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