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읽남의 씨네픽업 - 91회 아카데미 시상식 특집(1)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영광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요? 시네마피아에서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10가지 관람 포인트를 두 편에 나눠서 준비했습니다.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10개 부문인, 작품상(알폰소 쿠아론), 감독상(알폰소 쿠아론), 여우주연상(얄리차 아파리시오), 여우조연상(마리나 데 타비라), 각본상(알폰소 쿠아론), 촬영상(알폰소 쿠아론), 미술상(유제니오 카발레로 외 1명), 음향믹싱상(스킵 리브세이 외 2명), 음향편집상(세르지오 디아즈 외 1명), 그리고 외국어영화상(알폰소 쿠아론) 후보에 오른 <로마>는 가장 강력한 다관왕 후보작입니다. 1970년대 초반, 혼란의 시대를 지나며 여러 일을 겪어야 했던, '멕시코시티'의 '로마' 지역에 사는 한 중산층 가족의 젊은 가정부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삶을 따라가는 영화인데요.
개봉 전부터 전미 비평가 협회상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촬영상 등 각종 비평가 협회상에서 수상 레이스를 이어갔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골든 글로브 시상식 감독상과 외국어영화상,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4관왕, 미국 감독 조합상 영화 부문 감독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등을 거머쥐며,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이변처럼 보이는 상황을 연출 중이죠. 시상식을 앞두고 미국 전문가들은 강력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수상자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예측 결과가 나오고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가장 흔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일상 소재를 사용하면서, 아픔을 겪으며 삶을 이어가고자 하는 한 개인을 보듬는 시선이 흑백임에도 아름답게 표현됐다고 입을 모으며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 개최되고 1년 후, 민주화를 열망하던 멕시코 학생 시위 중 일어난 '성체 축일 대학살'을 보여주면서, 마치 한국의 1980년대를 연상케 하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적절히 녹여내는 데 성공했는데요. 또한, 전문 배우도 아닌 교사를 꿈꾸던 얄리차 아파리시오를 '클레오'로 캐스팅했고, 꾸밈없으며 진솔한 연기는 관객의 마음을 더 울리게 하는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로마>를 통해 자신이 겪었던 유년 시절을 회상했는데요. 유년 시절 가정부인 '리보 로드리게즈'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작품의 마지막엔 "리보를 위하여"라는 멘트가 나오며, 직접 가족들이 사용한 소품들이 작품에 들어갔습니다. 또한, 그의 첫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수상 작품인 <그래비티>(2013년)의 제작에 영감을 줬던 영화, <우주 탈출>(1969년)을 극장에서 관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포함되기도 했죠. 그리고 좌에서 우로, 혹은 우에서 좌로 이동하는 시선의 흐름이 적재적소로 사용됐는데, 파도가 치는 장면을 향하는 마지막 '클레오'의 움직임은 인상적이었습니다.
993만(2019년 2월 14일 기준) 관객을 불러 모으면서, 약 천만에 가까운 한국 관객들이 즐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개봉 전만 하더라도 아카데미 시상식 잠재 후보군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이 영화는, 개봉 후 전 세계에서 8억 4,59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퀸 열풍'을 일으켰고, '시청률 하락세'로 위기에 빠진 아카데미 시상식에게도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줬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그레이엄 킹), 남우주연상(라미 말렉), 편집상(존 오트만), 음향편집상(존 워허스트 외 1명), 음향믹싱상(폴 마시 외 2명)까지 총 5개 후보에 올랐는데요.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부문은 남우주연상입니다. 라미 말렉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이변'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배우들이 직접 뽑는 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게 되며,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갈 것이라는 예측도 덩달아 높아졌는데요. 이는 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수상한 남자 배우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남우주연상을 받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데, 대표적인 예로 게리 올드만(<다키스트 아워>, 2018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2016년) 등으로 최근 10년 사이 덴젤 워싱턴을 제외한 모든 수상자가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죠. 또한, 라미 말렉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까지 가져가면서 '수상 분위기'를 한껏 올렸는데요.
실제 프레디 머큐리만의 제스처를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 무브먼트 코치의 도움을 받아 캐릭터 연구를 했던 라미 말렉은 "프레디 머큐리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퀸의 노래에 담긴 주제를 파악하고, 나의 인생에 대입해보는 등의 방법으로 그를 알아가려 했다"라며, "촬영 1년 전부터 보철을 끼우며 연습을 했지만 말하기도 쉽지 않았고, 익숙해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라고 인터뷰를 한 바 있죠. 여기에 '프레디 머큐리'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라미 말렉이 온전히 소화하는 데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퀸 모창'으로 유명한 마크 마텔의 목소리를 합성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보헤미안 랩소디>는 현재 미국 전문가들의 예측에서, 작품상 부문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로는 "프레디 머큐리를 중심으로 한 퀸의 여정을 보여줬지만, 내면의 깊은 서사를 담기보단 퀸의 음악적 힘을 빌려서 완성된 서사 구조가 아쉽다"라는 공통적인 지적이 한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음악의 힘이 주목받음으로 인해 완성된, '라이브 에이드' 장면에 대해서는 누구나 함께 흥얼거릴 수 있게 한 '체험의 장'으로 만들었다는 평을 받을 수 있었죠.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또 하나의 법칙이 있는데요. 배우들의 연기를 도와준 '분장상'을 받은 작품에서, 배우들이 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분장상 수상작인 <다키스트 아워>로 '윈스턴 처칠'을 연기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게리 올드만, 2014년 분장상 수상작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통해 매튜 맥커너히와 자레드 레토가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2013년 분장상 수상작 <레미제라블>에서 '판틴'을 맡은 앤 해서웨이가 여우조연상을, 2012년 분장상 수상작 <철의 여인>을 통해 '마가렛 대처'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메릴 스트립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올해 분장상 후보작 중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작은 <바이스>입니다. 이 영화는 <빅 쇼트>(2015년)를 통해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친절한 설명과 더불어, 그 상황에서 '대박'을 친 인물들의 이야기를 시각화하면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은 아담 맥케이 감독의 신작인데요. <바이스>는 미국의 제46대 부통령 '딕 체니'의 이야기를 담은 전기 영화로, 작품상(아담 맥케이), 감독상(아담 맥케이), 각본상(아담 맥케이), 남우주연상(크리스찬 베일), 남우조연상(샘 록웰), 여우조연상(에이미 아담스), 편집상(행크 코윈), 분장상(그레그 캐놈 외 2명) 등 8개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빅 쇼트> 당시 작품의 주연 '마이클 버리'를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이 '딕 체니'를 맡았는데, 이미 몸무게를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였다" 하는 캐릭터별 맞춤 연기를 보여주면서 '연기의 신'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나, 아직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적은 없는데요. 그는 14kg을 감량해 찍은 2011년 <파이터>를 통해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이후 20kg을 찌워 찍은 <아메리칸 허슬>(2013년)에서는 첫 번째 남우주연상 후보에,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온 <빅 쇼트>에서는 남우조연상 후보에, 그리고 다시 살을 찌우고 특수 분장과 함께 한 <바이스>로 남우주연상 후보가 됐습니다.
그는 '오스카 레이스' 초기만 하더라도, 골든 글로브 시상식 뮤지컬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 수상을 통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1순위에 이름을 올렸으나, 현재는 라미 말렉에게 다소 밀린 형국인데요. 다른 남우주연상 후보인 <앳 이터너티스 게이트>의 윌렘 대포, <그린 북>의 비고 모텐슨, <스타 이즈 본>의 브래들리 쿠퍼와의 대결에서 앞서 있는 두 배우의 경쟁 결과는 어떻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한편, 대통령 '조지 W. 부시'를 연기해 2년 연속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노리는 샘 록웰, 아직은 '오스카 트로피'가 없는 에이미 아담스가 '세컨드 레이디'인 '린 체니'를 연기하며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쇠락의 길을 걷는 남자 가수와 스타가 되어 가는 여자 가수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 <스타 이즈 본>은 네 번째 리메이크 작품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브래들리 쿠퍼), 여우주연상(레이디 가가), 남우조연상(샘 엘리어트), 촬영상(매튜 리바티크), 각색상(에릭 로스 외 2명), 음향믹싱상(톰 오자니치 외 3명), 주제가상(Shallow)까지 총 8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이는 과거 1937년 첫 번째 작품에 7개 부문에 올라 각본상을 받은 것과 1954년 두 번째 작품이 6개 부문에, 1977년 세 번째 작품이 4개 부문에 올라 주제가상을 받은 것보다 많은 후보 지명 결과입니다.
지난해 여름부터 베니스 영화제, 토론토 영화제 등에서 상영되면서 일찍이 <스타 이즈 본>은 작품상 등 주요 타이틀 수상 예상에서 앞선 흐름을 보여줬었는데요. 특히 전미 비평가 위원회에서 올해의 영화 10선에 뽑힘과 동시에,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커졌었죠. 그러나 앞서 언급한 <로마>의 등장,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미 말렉과 <더 와이프>의 글렌 클로즈가 치고 올라오면서 '선배' <스타 이즈 본> 영화들이 그러하듯 주요 부문 수상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부문 만큼은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상이 유력한 후보가 있는데요.
바로, 주제가상입니다. '앨리'(레이디 가가)와 '잭슨'(브래들리 쿠퍼)이 처음 만든 노래인 'Shallow'는 작품의 주제와도 잘 어울리는 명곡으로, 부드러우면서도 파워풀한 리듬이 일품입니다. 현재 주제가상이 있는 시상식인 골든 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해 그래미상에서도 2관왕을 차지해 아카데미 역시 레이디 가가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죠. 한편, 지난 1월 레이디 가가의 공연에서, 공연을 관람 중인 브래들리 쿠퍼가 무대로 올라와 즉석 라이브 공연이 펼쳐졌는데,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두 사람의 '듀엣 공연'이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해봐도 좋은 관람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레이디 가가는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받은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 중 한 명인데요. 화려한 무대 의상을 더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화장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수수한 모습을 볼 몇 안 되는 기회이며, 주차장에서 무반주로 펼치는 라이브 등 최고의 가창력을 유감없이 뽐냈습니다. 혹여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레이디 가가 155cm의 도발>(2017년)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그야말로 최적의 캐스팅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요. 물론, 이는 남우주연상 후보이기도 한 브래들리 쿠퍼 감독의 뛰어난 디렉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연기였습니다.
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시대극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로마>와 더불어 가장 많은 10개 후보를 배출한 영화인데요. 작품상(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상(요르고스 란티모스), 여우주연상(올리비아 콜맨), 여우조연상(레이첼 와이즈, 엠마 스톤), 각본상(데보라 데이비스 외 1명), 의상상(샌디 파웰), 촬영상(로비 라이언), 편집상(요르고스 마브롭사리디스), 미술상(피오나 크롬비 외 1명) 등이 후보에 올랐고, 작품 배경 무대인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영국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레이첼 와이즈), 각본상, 분장상, 미술상, 의상상을 대거 획득했습니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한 기술 분야부터 살펴볼까요? 피오나 크롬비 미술감독은 18세기 왕실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고자 실제 왕족들이 살았던 '햇필드 하우스 대저택'에서 세트를 구성, 철저한 고증을 통해 당시의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로비 라이언 촬영감독은 권력의 중심지인 왕궁을 어안 렌즈로 촬영하며 아픔을 지닌 여왕 '앤'의 고립감을 극대화하는 촬영 기법을 선보여 감각적인 영상미를 자랑하죠. 샌디 파웰 의상감독은 18세기 영국 전통 의상의 실루엣에 포인트들을 가미하고, 가죽, 데님 등 18세기엔 사용되지 않았던 소재를 활용하면서 현대적인 느낌까지 더한 독특한 의상들을 제작했습니다.
여기에 대부분의 시상식에 함께 이름이 들어가는 세 여성 배우는 누가 주연상이고 조연상인지가 실례일 정도로 골고루 좋은 연기를 펼치며, 막장 드라마처럼 보이는 영화에 품격을 높여줬는데요. 베니스 영화제, 새틀라이트 시상식, 전미 비평가 협회상, 골든글로브 시상식, 그리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여우주연상 타이틀을 수집 중인 올리비아 콜맨은 히스테릭한 여왕 '앤'을 완벽히 소화해내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여왕의 총애를 얻어 신분 상승을 노리는 하녀 '애비게일 힐'을 연기한 엠마 스톤은 생애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노리고 있습니다. 냉철한 판단력과 거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춘 권력의 실세 '사라 제닝스'를 연기한 레이첼 와이즈도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의 연기를 선보였는데요.
<더 랍스터>(2015년)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킬링 디어>(2017년)로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좀 더 대중적인 소재를 선택하면서 시상식의 다크호스로 떠올랐죠. 소재 자체는 국내 관객들에게는 드라마 <여인천하>나,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상황을 떠올릴 수 있으나, 결국은 인간의 욕망에 관한 실험을 계속해서 영화를 통해 보여준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이번에도 증명한 작품이 됐습니다. <로마>와의 결전에서 얼마만큼의 활약을 하느냐가 다관왕의 열쇠가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