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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Feb 24. 2019

[인피니티 워] 영화가 아닌, 영웅들의 콘서트

07화. 2018년 봄, 세 번째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About Movie. 한 편의 영화를 넘어, 전 세계를 기반으로 한 대중문화의 국가를 건설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장편 영화 18개를 묶어 거대한 종합선물 세트를 만들었다.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스파이더 맨 등 개별적인 시리즈를 가진 영웅이 모두 모여 화려하고, 스케일이 무척 크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2편과 3편)를 연출한 루소 형제는 마블 영웅들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그들의 개성을 살린 액션 장면을 스크린에 구현해내 관객의 호평을 받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만 천백만 관객을 동원했으며, 키노라이츠 지수는 95.1%를 기록 중이다. 이 뜨거운 관심은 19년 개봉할 <어벤져스: 엔드 게임>으로 이어져, 마블과 루소 형제가 이 시리즈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블이란 세계의 업적

영화의 역사엔 코미디의 시대, 서부극의 시대 등 한 세대를 대표하는 장르와 소재가 있다. 한 세대를 풍미한 가장 영향력 있고, 관객이 가장 사랑했던 장르에 주어진 특권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의 시대일까. 만약, 훗날 2010년대를 기록한다면 ‘마블’이란 이름이 쓰여 있을 듯하다.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는 오락 이상의 것으로 평가받기 힘들었던 히어로물의 가치를 올리고, 정치·사화·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근래 주목받는 업적 중 하나는 <블랙 팬서>의 성공이었다. 이 영화는 흑인 영웅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흑인 사회를 조명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했다. ‘와칸다 포에버!’라는 구호와 특별한 동작은 스포츠 경기의 세레머니로까지 활용되는 등 파급력이 엄청났다. 그리고 미국 아카데미 협회는 <블랙 팬서>를 작품상 후보에 올리는 파격적인 선택을 보여주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도 밟지 못했던 자리에 마블이 선 것이다.


영화 내적으로도 마블은 새로운 영화의 형태를 보여줬다. 시리즈의 연속성을 넘어, 통일된 세계관 안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내놓고, 나중엔 이들을 묶어 거대한 영화로 만들었다. 세계관이라는 게 없는 영화는 없지만, 공통된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캐릭터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영화를 목격한 적은 없었다. 이런 ‘유니버스’라는 개념을 영화에서 제대로 구현한 게 마블이다. 엄청난 제작비의 문제를 해결해낸 것이 자본의 힘이었다면, 각기 다른 영화의 영웅을 한 프레임에 담았을 때 생기는, 톤 앤 매너의 문제와 통일성 유지의 어려움을 극복한 건 그들의 뛰어난 감각이었다. 마블은 이 큰 그림을 잘 그려왔고, 이 덕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세계관 자체가 주인공인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이 유니버스라는 신화의 시작에 <어벤져스>가 있었다. 아이언맨 시리즈,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토르 시리즈가 한 편에 묶인 이 영화는 개별 영화들의 특색과 목표를 공유했다. 특히, 모든 캐릭터가 뭉쳐 각자의 특별한 장기와 능력으로 협동을 보여주는 마지막 전투 씬은 유연한 흐름이 아름다웠는데, 이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조화가 만든 시너지였고, 마블의 전능함을 각인시킨 장관이었다. 그리고 <어벤져스>는 개별 시리즈의 방향을 결정하는 분기점이 되는 다리 역할도 했다. 물론, <어벤져스>는 스스로도 시리즈가 되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인피니티 워>가 개봉했고, 올해 <엔드 게임>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였던 <인피니티 워>는 여러 가지로 대사건이었다. 먼지처럼 사라진 충격적 반전과 역대급 볼거리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한편, 우리가 알던 영화라는 개념에 도전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 영화의 사이즈와 서사의 구성은 여태 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비대해진 시리즈의 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이에 관해 차근히 이야기해볼까 한다.



역대급 스케일과 앙상블

<인피니티 워>는 타노스가 우주에 흩어진 인피니티 스톤을 수집하듯,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지난 18개 영화를 집대성해 만든 작품이다. 지난 10년 동안, MCU는 다양한 영웅이 서로의 영화에 간섭할 수 있는 통일된 세계관을 구축했고, 이 세계의 몸집은 계속 켜져 왔다. 당연히, 제작비도 3∼4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이런 18개의 거대한 조각을 안정적으로 한 편에 담은 스케일의 구현만으로도 <인피니티 워>는 영화사에 큰 이정표를 남겼다.


그렇다고 <인피니티 워>가 단순히 덩치만 큰 영화는 아니다. 수준 높은 볼거리와 액션이 영화의 속을 꽉 채우고 있다. 우선, 풀 아이맥스 촬영으로 시작해 시각적 스펙터클의 정점을 보여준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각효과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인상적인 비주얼이다. 그리고 <인피니티 워>는 수많은 영웅의 고유한 기술을 전시하는 것만으로도 풍성하다. 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아이언 맨의 비행과 무기는 더 화려해졌으며, 스파이디는 액션에도 유머를 불어 넣는다. 한편, 블랙 팬서와 캡틴 아메리카의 액션은 몸과 몸이 부딪히는 투박함을 보이고, 헐크 부스터는 <퍼시픽 림>에서 기대했지만 잘 느끼지 못했던 기계의 묵직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영웅들의 특색 있는 액션이 한 장면에 조화를 이루는 게 <인피니티 워>의 백미며, 다양한 영웅의 특색을 잘 살린 루소 형제의 관찰력이 빛나는 지점이다.


다만, 모든 영웅을 한 화면에 담아서 긴 시간 극을 끌고 가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루소 형제는 영웅들을 다양한 공간에 퍼뜨림으로써 이 한계를 극복한다. 그래서 <인피니티 워>는 모든 영웅을 한자리에 모아 힘자랑을 하는 올림픽처럼 보이며, 다양한 경기장에서 열리는 스포츠를 중계하듯 이야기가 진행된다. 서로 다른 종목의 선수들은 영화에서 저마다의 싸움을 펼치지만, 타노스와의 대결이라는 큰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뭉쳐있는 형태다. 누군가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영웅을 많이 모아주기만 하면 가능한 일이 아니냐고. 그러나 이미 옆 동네(DC)는, 단 여섯 명의 영웅을 조합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루소 형제가 보인 MCU의 앙상블은 분명, 박수를 받을 만한 연출이었다.



역대급 스케일에 생긴 균열

물론 이 구성에도 결함은 있는데, <인피니티 워>는 많은 공간에 흩뿌려진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오가며 흐름이 끊겼고,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인지하는 것도 버거운 면이 있다. <인피니티 워>에서 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하나의 시퀀스로 본다면, 시퀀스 별 완성도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이 시퀀스들이 하나로 이어질 때, 빈번히 바뀌는 시공간과 이야기가 혼란스럽고, 인물의 감정선에 이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자연스레 이야기의 전개를 산만하다 느끼게 한다. 루소 형제도 이를 걱정했는지, <인피니티 워>에서 영화의 무대가 바뀔 때마다 자막을 통해 공간을 설명하고, 관객이 준비할 시간을 주기도 했다.


그밖에도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더 남아있다. <인피니티 워>는 어벤져스의 입장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은 채 끝나버렸다. 가장 절박한 위기의 순간에 끝나버린 느낌이랄까. 너무도 비대해진 크기의 영화를 마무리하기엔 149분의 상영 시간은 너무도 모자랐다. <인피니티 워>를 미완성으로 생각하는 건, MCU에서 여태 보여줬던 트릴로지의 통일성과 완결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 MCU에서 3부작이 개봉한 영화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가 있고, 이들은 시리즈별로 큰 주제를 공유해왔다. 1편은 영웅의 탄생, 2편은 영웅의 성장, 3편은 영웅의 성숙으로 말할 수 있다. 특히, 3편에서 영웅은 중요한 무기나 고유한 힘을 잃고 자신을 돌아보며, 한 단계 더 성장해 나간다. <인피니티 워>는 타노스가 ‘어벤져스’ 구성원 일부를 먼지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큰 위기를 맞았지만, 결국 그를 이기지 못한 단계에서 끝나버렸다. 19년 개봉하는 <엔드 게임>에서 타노스와의 승부가 결말이 난다면, 이 두 영화를 하나로 묶여야 <어벤져스 3>이자 한 편의 영화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 편의 영화를 두 동강 내서 보여줌으로써 가져온 이 서사의 한계 앞에서 MCU가 너무도 뚱뚱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한 변명은 <인피니티 워>를 빌런의 시점에서 이해하는 거다. 이 영화는 적대자의 시점에서 완성된 영화다. 타노스의 시점에서 <인피니티 워>는 괜찮은 기승전결이 갖춰져 있다. 타노스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동기를 가지고, 무엇을 해내야 하는지를 <인피니티 워> 한 편만으로 온전히 보여준다. 특히, 그가 행한 우주 절반의 소멸이 우주의 평화라는 나름의 ‘정의로운 의미’에 서 출발했다는 건 충격적이다. 그냥 나쁘기만 한 악당이 아니었기에, 관객이 이입할 법한 지점이 있는 셈이다. 또한, 주인공이 가지는 장애물도 타노스에게 준비되어 있다. 타노스는 ‘어벤져스’라는 패배한 적이 없는 막강한 상대와 육체적으로 부딪혀야 했고, 가모라의 죽음이란 정신적인 상처도 극복해야 했다. 그렇게 <인피니티 워>는 그 어렵다는 진짜 주인공들을 물리치고, 정의의 화신 타노스가 승리하는 이야기로서 완결된다. <인피니티 워>의 동의어는 <타노스 1>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MCU의 영화, 그중에서도 ‘어벤져스’ 시리즈를 보며 기존의 영화와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영화의 설정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인물 및 이야기의 주요 설정을 다른 텍스트(영화와 쿠키)에서 얻는 게 당연시된다. 이는 오직, ‘시퀄’이 있는 ‘시리즈 물’에서만 용인되었던 부분이다. 그런데 ‘어벤져스’의 모든 편을 봐도 <인피니티 워>를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어벤져스> 관람 후에 바로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시리즈 임에도 연결성이 없다. 이 시리즈만으로는 ‘어벤져스’ 캐릭터들의 동기, 성격, 목표를 모두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어벤져스’를 제외하면, 여태 이런 건 없었다. 마블은 영화를 구성하는 단위를 바꿔놓았다. 혹은, MCU의 모든 영화는 ‘왕좌의 게임’같은 거대한 드라마의 서사 구조와 호흡을 스크린에 옮겨둔 것 같다.



서사의 비대해짐과 함께, 세계관에도 혼란이 있었다. 다양한 영웅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그들의 능력치 간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 듯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예로 들면, 그가 단독 영화 때 보여준 능력의 반도 못 쓴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시공간을 자유롭게 통제하던 능력이 실종됐다. 이는 ‘어벤져스’ 시리즈가 ‘물리력’을 앞세운 영웅들과 ‘마법’을 앞세운 캐릭터들을 조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어벤져스> 당시,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은 과학 기술과 관련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신이라 불린 토르도 번개 등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도 물리적(력)으로 보여줄 수 있었고, 덕분에 다른 영웅들과 이질감 없이 섞일 수 있었다. 이와 비교해 닥터 스트레인지는 과학적인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이 앞서 언급한 물리력과 섞일 때, 부자연스러웠다. 또한, 스칼렛 위치의 능력도 최초의 등장 때보다 너프되어 있었고, <인피니티 워>에선 활약이 미미했다. 타노스의 핑거 스냅으로 이 두 인물은 먼지가 되었는데, 후속편에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인피니티 워>는 분명 재미있다. 하지만, 이것이 기존의 영화에 기대하던 즐거움이라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이 영화의 재미는 영웅의 볼거리라는 물량에서 오는 재미가 대부분이며, 캐릭터들의 앙상블과 이야기의 완결성은 <어벤져스>이 첫 편만 못했다. 관객이 사랑했던 캐릭터들의 능력을 순서대로 펼쳐 보이는 콘서트에 가까운 새로운 형식의 영화고, 스타의 활약에 즐거워했던 쇼에 가까운 콘텐츠다. 물론, <엔드 게임>이 더해졌을 때, 또 다른 평가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영웅의 반을 날림으로써 덩치를 줄인 속편에서 <인피니티 워>의 부족한 완결성과 균열이 보완될 여지는 남아있다. 역으로, 그래서 이 영화가 한 편의 영화라기보다 거대한 예고편으로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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