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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r 22. 2019

[우상] 우상, 그 매혹과 위험에 관하여

Appetizer#129 우상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대상을 뜻하는 ‘우상’은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누군가에겐 절대자의 이름으로, 누군가에게는 꺾을 수 없는 신념으로, 누군가에겐 포기할 수 없는 물질로서 존재한다. <우상>은 이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인물들이 가지는 각각의 우상을 위해 움직이고, 그것이 인간을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보게 한다. 하나의 교통사고, 거기서 사라진 시체와 목격자를 추적하는 ‘스릴러’라는 장르의 탈을 쓰고 있지만, 이 장르의 끝에 서 있는 건 그들의 우상에게 시험받고 망가진 인간이다.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우상을 쫓은 자들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몇 가지 의문은 끝내 풀지 않은 채 사라진다. 예고편에서도 볼 수 있는 사고 가해자 요한(조병규)의 뜻 모를 미소, 그리고 교통사고가 있던 밤의 행적 등은 모두 설명되지 않은 채 끝난다. 이 미완의 요소 앞에 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떠올리는 관객도 있고, 관람 이후 영화의 내용을 추측하며 이야기를 완성하려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영화인가’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퇴장한 관객을 위해, <우상>에 다가가는 몇 가지 관람 포인트를 준비했다.


우선, 영화에서 ‘우상’을 어떤 형태로 표현되는지 봐야 한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이수진 감독은 <우상>의 인물들이 가지는 우상을 명확히 정했다고 한다. 명회(한석규)의 우상은 ‘꿈’이었으며, 중식(설경구)의 우상은 ‘피의 우상’ 즉, 혈육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리고 련화(천우희)는 ‘생존’ 그 체가 우상이라고 한다. 이렇게 각 캐릭터의 중심에 있는 우상을 파악하고, 인물의 동기와 고민을 바라보면 영화에 좀 더 이입할 수 있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감독은 ‘극장의 우상’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권위자의 말을 무조건 수용하는 편견을 뜻하는데, 영화 속 대사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을 믿게 허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등을 통해서 뚜렷하게 표현된 메시지다.



또한, <우상>은 두 남자의 대비를 통해 주제를 드러내는 영화다. 명회와 중식은 사회적 지위와 계급부터 극명하게 다른데, 명회는 사회 지도자이고 중식은 사회 하층민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건 가해자의 아버지와 피해자의 아버지라는 신분으로 서로의 반대편에 서 있다. 두 남자는 아들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명회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아들을 대하는 반면, 중식은 뜨겁고 감성적으로 아들을 돌봤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수진 감독은 명회는 차갑게 시작해 뜨거워지며 이야기가 계속 앞으로 진행되는 인물로, 중식은 뜨겁게 시작해 차가워지며 자신을 돌아보는 인물로 묘사했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대비되는 인물의 변화를 통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따라가야 한다.


러닝 타임 내내 <우상>은 자신의 우상을 따라간 인간들이 마주한 벽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서로 다른 결과가 두 남자를 기다리고 있지만, 모두 웃을 수 없다는 게 중요했다. 서로를 가로막은 장애물을 넘을 때마다 상황은 점점 돌이킬 수 없으며, 우리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우상>은 말하는 듯 했다. 그렇게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고,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으로 인지되는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그렇게 ‘우상’의 모순과 위험성을 경고하는 영화였다.



묵직한 메시지와 좋은 배우들의 연기에 비하면, 너무도 진한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끝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모호한 이야기지만, ‘우상’ 및 ‘명회와 중식’의 선택과 결과를 통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건 꽤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이걸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표현했어야 했을까. 감독 역시, 자신이 쫓은 ‘영화’라는 우상에 잡혀, 뭔가를 놓친 듯했다. 그런 점에선 영화의 만듦새조차 주제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다. 우상이란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하다는 걸 몸소, 그렇게 보여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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