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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y 05. 2019

[보헤미안 랩소디] '웸등포'에서 본 영화의 미래

17화. 2018년 겨울, 첫 번째 <보헤미안 랩소디>

<보헤미안 랩소디>와 관련된 10가지 잡지식


지난 연말, 방송계에서 가장 뜨거운 노래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와 ‘라디오 가가’였다. 송년회와 신년회 장소에서 끝없이 흘러나왔고, 프레디 머큐리처럼 입고 행동하던 이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메아리처럼 퍼졌던 ‘에오’도 빼놓을 수 없다. 그해 겨울 퀸은 누구보다 뜨거웠으며, 수십 년간 잠들어 있던 프레디 머큐리가 우리 앞에 서 있었다. 마치, 그를 몰랐던 것처럼 지냈던 시간의 벽이 무너지는 데엔 한 편의 영화면 충분했는데, <보헤미안 랩소디>는 여전히 영화가 강력하다는 걸 그렇게 증명하고 있었다.


<완벽한 타인>에 밀려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했던 <보헤미안 랩소디>는 순위권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역주행을 거쳐 1위에 올랐다. 나중엔 <완벽한 타인>의 관객 수를 넘어 천만 관객까지 넘봤다. 이 영화가 보여준 역주행은 놀라웠고, 여태 한국영화계에서 잘 볼 수 없던 신드롬이다. 영화계에서 방귀 좀 꼈다는 이들도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렇게 흥행할 거라 예상하지 않았다. 잠깐의 우연으로 끝날듯했던 이 열기는 퀸의 음악을 사랑한 관객의 n차 관람으로 꺼지지 않았고,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영등포의 한 영화관은 라이브 에이드가 열렸던 ‘웸블리 스타디움’의 이름을 붙여 웸등포로 불렸다. 이곳은 영화관인 동시에 콘서트 장이었고, 콘서트를 주도하던 관객은 직접 소품을 제작해 관객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들은 영화를 거의 다 외웠고, 음악이 등장할 타이밍마다 앞장서서 관객을 지휘하기에 이르렀다. 웸등포에 다녀온 한 기자는 ‘땀 냄새가 진동하는, 그런 열정적인 체험은 처음’이라고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관객이 직접 관람 문화를 만든 영화다. 대중의 취향을 저격했고, 덕분에 영화계에 이정표를 세웠다. 동시에 이 놀라운 인기가 많은 것을 가리고 있기도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대중의 열광 속에 평가가 이뤄졌고, 때문에 다 말해지지 못하거나 말해질 수 없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었다. 하나의 업적이 끝난 순간, 퀸의 음악을 끄고 이 영화에 관해 좀 더 생각하려 했다.



퀸이라는 치트 코드

<보헤미안 랩소디>는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민자로서 사회에 섞이기 힘들었던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는 사회 변두리에서 전전하다 밴드에서 꽃을 피운다. 하지만 완전한 인사이더가 되지는 못했다. 프레디 머큐리는 그 시대가 품기 힘들었던 성 정체성을 가졌고 상처 받았다. 연출을 맡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록 밴드 퀸이 다양한 모습 중에 프레디 머큐리의 아웃사이더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엑스맨 시리즈부터 돌연변이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봐왔던 감독이기에 필연적인 선택으로도 보인다.


브라이언 싱어는 소수자들이 받은 외면, 사회와의 마찰과 그 과정에서 얻은 상처를 엑스맨 시리즈에 담아왔다. 그리고 그 상처를 딛고 세상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서사를 보였다. 그런 싱어의 세계 안에 <보헤미안 랩소디>가 있고, 이용철 평론가는 “싱어이기에 가능했을, 머큐리와 그의 시간에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라는 평을 남겼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싱어’의 영화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브라이언 싱어는 제작 중간에 하차했고 영화를 마무리 하지 못했다. 개봉 이후, 그의 이름도 잘 언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불만을 토로한 배우들의 말이 떠돌 뿐이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분명 감독의 부재가 느껴지는 영화다. 시퀀스와 시퀀스의 연결은 헐겁고, 덕분에 인물의 감정선도 들쭉날쭉하다. 뮤직 비디오의 나열 정도에 그치는 구성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는 음악이 보완하고 여기서 관객은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가 축 늘어져 땅에 끌릴 때 쯤, 퀸의 음악이 긴급 투입해 영화를 움직인다. 이 음악은 게임에서의 치트 코드처럼 작동한다. 앞서 말한 결점들을 장점으로 바꾸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는 퀸의 음악이 등장할 무대만 마련해 주기만 하면 됐다. 나머지는 퀸의 노래에 담긴 우리의 추억과 우리가 기억하는 프레디 머큐리의 신화와 아우라에 맡기면 그만이었다.



확장된 관객의 영향력

<보헤미안 랩소디>는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전문가들에겐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해외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도 61%라는 지수를 기록했다. 같이 후보에 오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96%를 기록한 것과는 비교되는 부분이다. 국내의 한 포탈의 평점을 봐도 <보헤미안 랩소디>는 6.14점, <로마>는 8.8점으로 역시나 차이가 크다. 국내외 전문가들 기준엔 <보헤미안 랩소디>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를 급의 영화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도 <보헤미안 랩소디>는 편집상과 남우주연상, 음향 믹싱, 음향편집상을 받으며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목받았다. 음향 부문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영화의 이어짐에서 헐거움을 느낀 한 명의 관객으로서 편집 부문 노미네이트 자체가 의문이었다. 물론, 영화의 설계도를 만든 감독(브라이언 싱어)의 이탈 속에서도 꽤 매끄러운 영화로 묶어냈다는 점에서 <보헤미안 랩소디>의 편집은 박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아카데미급의 다른 영화와 비교해 특별히 놀랍거나 인상적인 편집을 보여줬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다.



편집상만큼은 아니지만 라미 멜렉의 남 주연상도 의아했다. <바이스>의 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을 본 뒤엔 더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카데미가 준 남우주연상이 라미 말렉이 아닌, 프레디 머큐리에게 주는 상이란 생각을 할 정도였다.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남자가 프레디 머큐리를 대신해서 공로상을 받는 듯한 느낌이랄까. <보헤미안 랩소디>를 재미있게 봤고 좋은 영화라 생각하지만, 아카데미의 선택은 고민거리를 잔뜩 던져줬다. 왜 비교적 전문가들의 평가가 좋지 않았던 <보헤미안 랩소디>가 시상식에서 주목받을 수 있던 걸까.


아카데미 시상식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인기상’ 부문을 새로 개설하려 했었다. 끝내 실현되지 않았지만, 현재 아카데미 시상식이 고민을 알게 하는 부분이다. 미국 아카데미 협회는 대중의 의견을 반영하고 싶어 한다. 이는 해마다 고전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지만, 동시에 지금 이 시대의 영화는 비평가만큼이나 관객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이 연장선에서 비평가와 팬의 평가가 갈렸던 <보헤미안 랩소디>의 수상을 이해하려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노래와 함께 대중의 사랑을 잔뜩 받았고, 미국 아카데미 협회는 이를 영화의 평가에 반영했다. 즉, 미국 아카데미 협회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수상으로 대중의 취향과 지지가 영화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임을 인정한 것이다. 비평가와 기자 등 전문가들이 독점하던 영화 비평의 영역이 무너져 내렸다.



영화관의 가치를 말하다

미학과 취향 등의 고민을 떠나 <보헤미안 랩소디>는 고마운 영화다. 이 영화는 OTT 서비스가 활발히 진행되는 ‘넷플릭스’의 시대에 영화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냈다. TV, 태블릿, 스마트 폰 등으로 원하는 시간에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영화관은 고전적이고 답답한 플랫폼이다. 그리고 넷플릭스 등과 비교해 가격이 더 비싸고, 접근성도 떨어진다는 영화관의 단점은 점점 더 부각될 것이다. 이런 시기에 <보헤미안 랩소디>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며 영화관의 가치를 높였다.


우리 시대의 영화관이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건 독특한 관람 경험에 있다. 암실에서 스크린을 응시한다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관람 경험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런 영화관의 특성을 너무도 좋아한다. 더불어 영화와 관련된 학문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런 고전적 의미의 관람 경험은 지금의 관객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


지금의 영화관은 좋은 스피커를 통한 음향 기술과 3D, IMAX, 스크린X 등의 시각 기술, 더 나아가 영화와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4D 기술 등을 내세운다. 관객이 집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환경이다. <보헤미안 랩소디>도 음악 영화이기에 사운드가 중요했고, 웸등포가 주목받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퀸의 음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이자, 콘서트홀의 대체재로서 영화관은 기능했다.



이런 기술적 요소보다 중요한 매력 하나가 <보헤미안 랩소디>엔 있다. 이 영화는 많은 관객이 ‘함께 즐기는 관람’ 경험의 가치도 보였다. n차 관람 신드롬을 주도한 ‘웸등포’의 관객들은 함께 소리치고 어울리는 공간으로 영화관을 활용했다. ‘싱어롱’ 상영이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이렇게 관객을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뭉치게 한 영화는 없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른 관객을 위한 아이템을 준비했던 관객, 프레디 머큐리처럼 입고 분위기를 달궜던 관객에게 영화관은 홀로 영화만 보는 곳이 아니었다. 함께 뛰고 즐기는 공간이었다. 조용한 관람이 기본 에티켓인 영화관의 새로운 가치와 가능성을 목격했다고 하면 과장일까.


이렇게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 그 자체만큼이나 관객에게 주목해야 했던 영화다. 비평가만큼이나 관객도 영화평을 주도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영화관이 여전히 매력적인 곳이란 걸 목격했다. 퀸을 외치는 관객의 모습에서 변화하는 영화의 얼굴을 봤고, 영화의 미래를 조금 더 긍정할 수 있었다. 전성기가 있었고 힘이 셌던 영화는 아직 최고의 순간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관객과 늘 최고의 순간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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