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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Apr 28. 2019

[도어락] 안식할 곳 없는 청년들의 지옥도

16화. 2018년 가을, 네 번째 <도어락>

정적을 깨는 벨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에 예민해진 적이 없던가. 자취 중 무수히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다. 1인 가구 시대의 자취생은 내 집의 경계에 누군가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 내 공간이 침범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건 꽤나 큰 공포다.


<도어락>은 ‘내 공간’에 대한 도전이며, 영화가 끝나면 더 섬뜩함을 느낄 수 있다. 영화관을 떠나 집 앞의 문을 여는 순간, 영화는 다시 시작된다. 스크린의 공포는 대문을 뚫고, 집 안까지 잠식한다. 하지만 <도어락>엔 더 끔찍한 사실이 있다. 영화는 이 도시의 청년들에게 허락된 것이 없다는 걸 일관성 있게,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다.



무기한 계약직의 삶

<도어락>은 경민(공효진)을 통해 한 계층이자 세대의 삶을 비춘다. 그녀는 취직에 성공해 서울에 사는 여성이다. 홀로 지내기에 넉넉해 보이는 집이 있을 만큼 부족함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상황을 뜯어보면, 이들이 빛 좋은 개살구였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그녀는 비정규직이다. 계약이 끝나갈 때면, 다음 계약은 할 수 있을지 가슴을 졸여야 한다. 정규직 동료가 눈앞에서 실적을 낚아채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이런 경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제안은 ‘무기 계약’이라는 이름의 노예 증서였다. 이는 평등하다는 사회가 감춘 보이지 않는 계급이다.


점심시간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따로 어울리는 장면을 통해 계급의 벽을 볼 수 있다.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는 경민과 효주(김예원)가 창밖으로 과장(이천희) 일행이 몰려다니는 걸 바라본다. 두 계층 간의 거리감이 유리 장벽으로 시각화되어 있는 장면이다.



그녀에게 허락된 공간

서울이 경민에게 허락하는 공간도 한정적이다. 그녀가 집을 구하러 다니는 장면을 유심히 보면, 봉천동 일대에 산다는 걸 알 수 있다. 서울에서 집을 구해본 이들이라면, 이 동네가 익숙할 수 있는데, 월세가 저렴한 구역 중 하나다. 이 동네는 비정규직의 불안정한 수입으로 서울에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도어락>은 이 일대를 을씨년스럽게 표현하며, 경민이 처한 각박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 공간엔 무엇 하나 내 것이 없고, 맘 편히 누릴 수 없는 세대의 초상이 있다.


영화의 중반부, 괴한에게서 달아나던 공효진이 길 한가운데 있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그녀에게서 멀어진다. 직 부감의 버드 아이 샷으로 그 지역을 담은 장면은 지도처럼 보인다. 여기서 경민은 사방이 뚫려있지만,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이는 그녀가 서 있는 땅에서 도망갈 공간, 그리고 안전을 느낄만한 공간이 어디에도 없다는 걸 드러낸다. <도어락>은 헬조선이란 땅 위에 그녀와 그녀가 대표하는 계층이 발 디딜 곳이 없음을 그렇게 보여주고 있다.



넘실대는 혐오의 정서

<도어락>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혐오’의 정서를 담아냈다. 안타고니스트와 그의 맥거핀을 자처하는 두 남성은 여성을 집요하게 따라다닌다. 그리고 여성이 거부의 표현을 보이면, 과격한 행위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둘 다, 시작은 경민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라 말하는 섬뜩함도 보였다. 특히, 기정(조복래)은 과장의 직장과 차를 언급하는 등 자격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캐릭터들은 최근 문제가 되는 여성 혐오를 연상하게 한다. 혹은, 이런 캐릭터를 극한으로 전시하는 <도어락>의 카메라가 남성 혐오의 시선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 속 남성은 과장을 제외하고는 형사, 그리고 단역까지도 ‘혐오’의 정서를 역겨울 만큼 뿜어냈다. 있을 법한 캐릭터이고 주인공들에겐 당위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표현해야 했는지, 그 정도와 방법엔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그래도 의의는 있다. 이런 ‘혐오’의 살인마는 과거의 영화와는 달라진 시대상과 한국 영화계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추격자> 등의 흥행으로 남성 가해자와 사회적 약자 계층에 있는 여성 피해자의 구도는 자주 반복되어 왔다. 이때, 남성은 주로 사이코패스로 묘사되었다. 그들의 개인의 성향과 가정환경 등에서 살인의 원인을 찾거나, 혹은 살인의 이유 자체를 묻지 않기도 했다. <도어락>은 다르다. 범죄자를 현대 사회가 만든 괴물로 묘사한다. 경민보다 소외된 처지의 청년으로 추측되는 두 남성을 통해, 혐오 및 살인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보게 한다. <도어락>은 우리가 혐오의 시대를 통과 중이라 말하고 있다.



무심한 세상과 공권력

첫 씬부터 여성을 따라가는 CCTV의 시점이 있다. 이 시선은 지하철을 시작으로 주택가까지 따라간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문 앞의 CCTV는 꺼져 있다. 집주인이 모조품만 설치했다는 대사가 있는데, 비용의 문제였을 것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 했지만, 이들은 세입자들의 안전에 무관심했다.


혹은, <도어락>이 경민을 비롯한 유사 계층이 있는 공간을 이 사회에서 배제된 곳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지하철을 비롯해 시민들이 오가는 공간은 CCTV가 그들을 보호해주지만, 경민의 집은 '시민이 없는 곳'이라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카메라마저 외면한 것은 아닐까. 최근에 발생한 '종로의 고시원 화재'를 생각해보면, 영화가 그리 먼 곳의 이야기도 아니다.



더불어, 공권력마저도 경민에게 관심이 없다. 이 형사(김성오)를 비롯해 모든 공권력은 경민에게 ‘불친절’하거나 무관심하다. 증거 불충분으로 수사할 수 없다면 그녀를 안심시켜야 했지만, 그 누구도 거기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경찰은 그저 짜증을 내거나 귀찮음을 표현할 뿐이다. 헬조선엔 경민의 입장에서 걱정해주는 공권력은 어디에도 없다. 혹은, 앞서 말했듯 그녀가 공권력이 챙겨야 할 시민의 범주에 속하지 못한 계층이었을 수도 있다.


영화의 내용과는 별개로, 한국 영화에서 공권력을 반감을 가질 만한 악역으로 만들어 버리는 연출은 늘 아쉽다. 경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만 보여줘도 경민의 위기는 충분히 부각될 수 있다. 작위적으로 악역을 맡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도어락>은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잠정적 용의자가 풀려났음에도 경찰이 대비를 세우지 않는 모습은 <목격자>에서도 마음에 걸렸던 부분이다. 이런 설정들은 공권력을 바보로 만듦으로써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비겁하고 게으른 연출이다.



안식처가 없는 세대

<도어락>은 현재를 살아가는 세대 청년들의 삶을 다층적으로 비췄다. 불안정한 고용 및 주거 문제, 이런 상황들이 만든 혐오의 정서, 그리고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 공권력까지 담아냈다. 영화 속 경민은 어디에도 기댈 수가 없다. 헬조선이란 땅 위에 그녀가 안식을 취할 곳은 없다. <도어락>이란 제목은 이 세상에 그녀를 위한 공간의 문이 모두 닫혀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재미있게도, 한 주 일찍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이 만든 시대가 <도어락>이다. <국가부도의 날>의 에필로그와 <도어락>은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도어락>은 IMF가 만든 세상의 최신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버전의 지옥도를 더 보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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