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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Aug 07. 2019

세련된 액션 영화와 올드한 선전 영화 사이

Appetizer#132 봉오동 전투


일본을 향한 감정이 좋지 않은 시기에 항일 영화 한 편이 도착했다. 건조한 유해진의 이미지가 강렬한 인상을 줬던 <봉오동 전투>는 국내 영화로는 최초로 독립군의 전투를 담았고, 의도치 않게 가장 뜨거운 시기에 관객과 만나게 된다. <용의자>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의 액션 세계가 어떻게 확장되었는 지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데, 우리는 이 영화에서 무엇을 목격할 수 있을까.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를 담은 <봉오동 전투>는 훌륭한 액션 영화다. 나무가 울창한 숲, 험준한 산악 지형을 활용한 액션엔 긴장감이 넘친다. 여기선 영화의 각본을 맡은 천진우 작가의 전작 <사냥>이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산악 지형을 활용한 액션은 하나의 이정표가 될 만했다.


인물의 동선을 쫓는 역동적인 카메라와 드넓은 자연을 담은 <봉오동 전투>의 샷들은 서로 다른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 더불어 이 샷을 채운 캐릭터들도 서로 다른 무기로 액션을 풍성하게 했다. 총을 든 저격 씬은 객석을 숨죽이게 하고, 칼로 베는 씬은 시원스러운 맛에 탄성을 내지르게 하는 쾌감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가 <봉오동 전투>의 액션을 돋보이게 했고, 원신연 감독은 <용의자> 이후 걸출한 액션 영화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봉오동 전투>는 결코 좋은 전쟁 영화는 아니다.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이미지로 풀어낸 영화가 아니며, 그렇다고 한 인간이 전쟁 앞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내지도 못한다. 화려한 액션과 그 액션 사이를 채우고 있는 유머와 제국주의의 폐단 등이 나열될 뿐 하나의 영화로 뭉치지 못한다.

<봉오동 전투>는 시놉시스에 나와있듯 승리의 서사를 보여주기 위한 영화다. 하지만 그 승리로 가기 위한 전략과 전투의 상황 등을 관객과 공유하지 않는다. 그저 일본군과 독립군의 쫓고 쫓기는 과정이 이어지는데, 독립군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전쟁 영화에 기대했던 전략의 유기성이 보이지 않으며, 전술과 전략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영웅들의 도주를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다 영화는 주인공이 지칠 때쯤 분노라는 동기를 연료처럼 채워주고, 다시 뛰게 한다. 이는 원신연 감독의 전작, <용의자>에서 지동철(공유)가 쫓기던 신세였던 것과 유사하다. 전작과 비교해 스케일이 커지고 스타일이 세련되었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전쟁 영화에서도 <용의자>처럼 소수의 인물들이 보여준 구도를 유지했다는 건 안타까운 자가반복이다.


전략적 묘사가 떨어짐과 동시에 <봉오동 전투>는 인물에게도 무관심하다. 참혹한 전쟁에 뛰어든 인간보다는 '승리'라는 결과에 집중하는 선택을 했다. 이를 위해 사악한 적과 뚜렷한 동기를 가진 인물을 중심에둔 이분법의 시선에서 과거의 역사를 바라본다. 제국주의의 악랄함과 그 속에 피해를 받은 아픈 역사를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 이분법적 세계를 구축한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 시대가 국가와 국가의 대등한 싸움이 아닌, 제국주의의 횡포에 맞섰던 영웅들의 이야기이기에 일본이라는 국가를 절대악으로 단편적으로 그린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여기까지 이해한다해도, 영화 속 황해철(유해진), 이장하(류준열), 마병구(조우진)의 성격을 단순하게 묘사했다는 건 그냥 넘어가기 힘들다. 황해철의 전사 정도만 설명되고,(이 마저도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데 충분하지 않다.) 그외에는 분노만 보일 뿐, 인물들의 깊이가 없다. 여기에 심각한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설정된 유머는 묵직한 영화의 무드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런 불협화음 덕분에 <봉오동 전투>의 인물은 절대악에 반작용으로 존재하는 기계적 존재로 설정되었고, 그들의 고민도 잘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영화는 폭력과 폭력의 부딪힘만 남고, 인물은 증발한다. 이는 고전 프로파간다 전쟁 영화의 구도와 유사하고, 원신연 감독이 보여준 액션의 성취와 비교하면 올드한 결과물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고지전> 이후에 도착한 전쟁 영화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고, 딱 그만큼 아쉬운 영화다.


 믿을 수 있는 <봉오동 전투>의 평점을 보고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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