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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Nov 29. 2020

[콜] '시간'의 의미보다 인상적인 '전종서'의 표정

Appetizer#157 콜

<콜>은 2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소통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과거의 특정 요인이 미래를 바꾼다는 점에서 <터미네이터> 같은 SF 영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콜>은 시시각각 변하는 두 인물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 스릴러다.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살인마와 그 살인마에게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는 인물이 대립하면서 서로의 운명이 바뀌는 걸 볼 수 있다. 시간의 인과성과 함께 이충현 감독이 소환한 1999년이 의미심장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기억에 남는 건 단 하나. '전종서'라는 배우의 표정이다.


<콜>이 소환하고 전시한 시간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좌우로 길게 뻗은 수평의 길과 상하로 곧게 뻗은 수직의 길을 보여준다. 수평의 길은 1999년 혹은, 2019년이라는 특정 시간을 깊게 다루겠다는 의지로 읽히며, 수직의 길은 이 20년이라는 시간을 오가는 두 인물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콜>에서는 전화로 인물들에게 큰 변화가 있을 때, 이 수직의 길을 자주 보여준다.)

영숙(전종서)에게 1999년 세기말에 있던 일이 2019년에 있는 서연(박신혜)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건, '우리에게 1999년이 어떤 시간으로 기억되고 기록되고 있는가?"다. 한국에 있어 1999년은 새천년으로의 입장을 앞둔 설렘보다는 IMF 외환위기로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와 마주했던 암울한 시기다. 이런 분위기는 90년대 후반을 소환했던 <기억의 밤>, <국가부도의 날>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콜>은 원작 <더 콜러>와 유사한 소재를 다룬 <동감>보다는 앞의 영화들과 함께 봤을 때 더 많은 걸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다.


*개봉을 앞둔 다큐멘터리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한 '일랜시아'라는 온라인 게임을 다룬다는 점에서 <콜>과 유사한 시간을 공유하며,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90년대 후반의 문화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함께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콜>이 담아낸 전종서의 시간

근래 한국 스릴러 중에서 <콜>만큼 몰입도가 높았던 영화는 찾기 힘들다. 20년을 오가는 집의 미장센, 인물의 감정에 따라 변화하는 빛, 시시각각 달라지는 인물들의 처지와 반전 등이 영화에 눈을 못 떼게 한다. 여기에 캐릭터 하나하나가 시간의 인과율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데,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안정적으로 연기를 소화해냈다. 박신혜, 전종서를 시작으로 김성령, 이엘, 이동휘, 오정세까지 모두가 각자의 연기로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시간의 나비효과를 표현해냈다.


하지만, <콜>이 끝난 뒤 가장 뚜렷히 기억에 남는 건 영숙이 보여준 광기 어린 미소와 살벌한 대사다. 그 정도로 전종서의 연기가 빛났다. 모처럼 즐겁게 몰입하며 본 영화임에도 <콜>에 조금의 아쉬움이 있었던 건 영숙이 조성한 분위기보다 중후반부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 탓이다. 이렇게 섬찟하고 빈틈없는 공포를 준 캐릭터를 짧은 연기 경력을 가진(물론 다른 한 편의 영화가 이창동 감독의 <버닝>였지만) 배우가 해냈다는 건 놀라우면서도 행복한 일이다.


결국, <콜>이 가장 잘 담아낸 건 전종서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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