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y 21. 2016

영화의 게임화 - 스크린으로 즐기는 FPS

Movie Appetizer#04 하드코어 헨리

영화의 게임화, 게임의 영화화

테크놀로지의 진화, 그리고 영화의 미래

좁은 시점, 그리고 관점의 문제와 어지러움이라는 한계


인체의 해체를 보여주는 섬뜩한 오프닝이 끝나면, 낯선 공간이 눈에 보인다. 생경한 카메라의 시야에 적응하려고 할 때 즈음, 에스텔(헤일리 베넷)이 객석을 보며 말을 건다. 그녀는 관객을 헨리라 부르기 시작하고, 자신은 헨리의 아내란다. 이때쯤 명확히 파악하게 된다. 스크린에 보이는 시야가 헨리라는 한 남자의 시점이라는 것을. 그리고 하나 더. 오프닝에 난도질당한 인체가 헨리의 신체였다는 것을. 헨리의 몸이 기계로 재생되는 기괴한 과정이 끝날 때, 아칸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초능력을 사용하는 이 남자는 에스텔을 납치하고, 기억이 전혀 없는 헨리는 이유 없이 쫓기는 신세가 되는데…. 헨리는 아내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헨리는 어떤 인물이며, 관객이 보고 있는 이 새로운 세상은 어떤 곳일까.



영화의 게임화게임의 영화화

<하드코어 헨리>가 보여주는 1인칭은 완전히 낯선 시점은 아니다. POV(Point Of View)라는 용어로, 인물의 시야를 보여주는 시점이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1인칭만으로 찍은 사례는 없었다. 이 시점은 FPS(1인칭 슈팅게임)의 보편적 시점이다. <둠>, <하프라이프>, <콜 오브 듀티>, <서든어택> 등등 게임에서 볼 수 있던 그것이다.



그리고 <하드코어 헨리>가 보여주는 내러티브, 주인공이 지닌 소지품(아이템), 스마트폰을 통해 임무를 전송받는 설정, 다양한 총기류와 무기들, 그리고 인물 간의 대화 장면 역시 게임을 연상하게 한다. 1인칭으로만 이뤄진 이 영화의 문법은 기존 영화와는 조금 다를 것이고, 다른 만큼 게임의 문법을 따른다. 대표적인 예로, <하드코어 헨리>의 주인공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를 위해 영리한 설정을 배치해뒀는데, 왜 이 영화가 주인공의 목소리를 뺐었는지를 생각해보며, 영화와 게임의 간극을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영화의 미래

영화와 게임은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의 시각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3D 그래픽의 발전은 게임의 ‘영화 같은’ 연출을 가능하게 했고, 영화 CG의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3D, 4D 등의 발전은 게임을 영화처럼, 영화를 게임처럼 구현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영화의 미래일까. 테크놀로지는 관객의 관람경험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드코어 헨리>는 그 청사진을 보여주는 작품 격으로, 시도 자체가 모험이자 가치가 되는 작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영화가 영화 같지 않다면, 그리고 영화라고 말할 수 없다면,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시각 테크놀로지의 발달 아래, 영화란 무엇일까.



시점의 한계

<하드코어 헨리>는 96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관에서 이를 관람하는 것은 의외로 힘든 일이다. 스토리, 액션 등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 영화는 영화관을 거대한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이 영화는 지독한 멀미를 유발할 정도로 어지럽다. 늘 움직이는, 그리고 많은 떨림이 있는 카메라를 따라가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회전, 수평 운동을 감지하는 전정기관과 반고리관이 잘 작동하는지 알고 싶다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1인칭 게임을 거대한 스크린으로 즐기는 스펙터클. 그리고 광각 렌즈가 보여주는 화면의 왜곡 및 원근감은 영화에 몰입할수록 피로감을 몰고 온다.


그리고 1인칭 시점에선, 주인공의 내면을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영화는 게임의 문법을 따른다. 미션이 있고, 이를 향해 달려가는 시점만이 영화를 구성한다. 재미는 있지만, 감정이 실종되어버릴 한계가 있다. 기존 영화라면 클로즈업 등을 이용해 보여줬을 인물의 심리에 대한 접근 자체가 차단되어 있다. 샷의 크기가 고정되어있는 점, 그리고 구축할 수 있는 미장센도 한정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하드코어 헨리>는 후발 1인칭 영화에 과제를 남겨뒀다.


끝으로 <하드코어 헨리>는 주인공이 남성이기에, 거기에 맞춰진 시선으로만 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 여성이 이 영화에 이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기에, 여성 관객이 이 영화를 감독의 의도대로 온전히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역시 FPS를 즐기는 이용자가 남성이 더 많다는 데서 온 한계로 생각해볼 수 있다.


새로운 장르의 탄생인가, 영화산업의 미래 청사진인가. 아니면 영화가 아닌 게임의 ‘스펙터클’화라고 불러야 할까. 손에서 해방된 카메라는 또 어떤 새로운 영상으로 관객에게 찾아올지 <하드코어 헨리> 이후의 영화를 기다리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배우를 새로 발견하는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